독감 예방 주사 맞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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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의 일이다.
미국에 있는 아내가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다면서 날더러도 맞으란다.
드라이빙 뜨루에서 팔을 내밀고 맞았단다.
예방주사 맞는데 5분도 안 걸린다. 운전면허증만 보여주면 그냥 놔준다.

한국에 있는 나는 일산 병원에 알아봤더니 한 달 후인 10월 15일부터 고령자와 장애자
우선으로 시작한단다.
그러면서 무료 독감 예방주사를 말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면 유료 독감 예방 주사도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있고 말고요” 한다.
나는 유료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한 번도 독감 예방 주사를 맞고 돈을 냈다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면서 돈을 내다니 다른 예방 접종이겠지 하고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예방 접종을 받던 날 번호표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번호표도 본인이 직접 뽑아드는 게 아니라 어떤 봉사요원이 서서 일일이 뽑아준다.
기다란 테이블에 뒷면만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 4개가 설치되어 있으니 앉아 있는 직원이
4 사람이다.
맨 오른쪽 모니터 뒷면에는 ‘접수’라고 쓰인 커다란 사인이 붙어 있고 그다음 모니터 뒷면에는

‘간호’ 사인이 그리고 다음 모니터들은 ‘등록’이란 사인이 붙어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내 이름을 부른다. 일어나서 접수 모니터 쪽으로 몇 발짝 걸어가는 동안 이름을 두 번 세 번 연거푸

불러댄다. 왜 빨리 나오지 않고 꾸물대느냐는 것처럼 들린다.
‘접수 모니터’의 아가씨가 주민등록증을 보고 이름을 묻는다.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서류 한 장을 주면서 작성해 오란다.
“예” “아니오” 대답하는 물음에 모두 “아니오”라고 적고 사인해서 주었다.
접수 모니터 아가씨는 퉁명스럽게 가서 기다리란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내 이름을 부른다.
이번에도 몇 발짝 걸어가는데 이름을 큰 소리로 세 번이나 부른다.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듣기 싫다.
한번 불렀으면 어련히 알아서 올까마는 유치원생 부르듯이 큰 소리로 자꾸 불러대는 게
세련미가 없어 보인다.
‘간호 모니터’ 앞에 섰다. 주민등록증과 얼굴을 대조하더니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이름을 대 주고 왜 자꾸 큰 소리로 호명해 대느냐고 짜증 섞인 말로 물어보았다.
내 물음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힐끔 쳐다보더니 자리에 앉아 기다리란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또 내 이름을 불러댄다. 한 번만 불렀으면 좋겠는데 이 사람들은 규정이 그래서 그러는지
자기 앞에 와 설 때까지 몇 차례 반복해서 불러댄다.
그것도 모두 들어보라는 식으로 큰 소리로…….
‘등록 모니터’ 앞에 섰다. 하도 내 이름을 불러대니까 나도 창피하고 화가 났다.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등록 모니터 사무원이 내 이름을 묻는다.
이름은 대답해주지 않고 서류에 적혀 있지 않느냐, 보면 모르느냐고 따지듯이 되물었다.
뭐,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오”라고 체크해 놓는 문구들을 되풀이해서 묻는다.
“거기 체크해 놓은 거 보면 모르느냐”고 톡 쏘아주었다.
내가 화내는 걸 알아차렸는지 옆 등록 모니터로 서류를 넘긴다.
서류를 받아 든 아가씨가 내 얼굴을 보더니 겁이 났는지 아무 말하지 않고 독감 주사 놓는
간호사에게 데려다준다.
간단하게 5분이면 끝날 예방주사를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복잡하게 굴다니…….
이래서 인력이나 시스템에 구조조정이 필요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간호사 두세 명이 서서 오는 사람들 줄 세워놓고 확인과 동시에 예방 주사를 놔주면 될 것을.
자주적 교육을 받지 못한 노인들은 인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찾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하나하나 이끌어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발전하는 과도기가 돼서 앞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 변화가 올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유료 예방주사는 무엇이며 내가 맞는 예방주사와는 어떻게 다른지.
유료는 4과이고 내가 맞는 무료는 3과란다.
“3과는 뭐고 4과는 뭐냐?“
독감 바이러스는 종류가 많은데 4과는 더 많은 독감 바이러스 예방 접종이고,
3과는 금년에 유행할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러스 예방접종이란다.
그러면서 4과를 맞으려면 예약하고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하며 4만 원을 내야 한단다.

나는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국에서 맞는 독감 예방 주사는 무엇인가 알아보라고 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65세 이상에게는 독한 독감 예방 주사를 무료로 놓아주고
65세 미만에게는 일반 독감 예방 주사를 놓아준단다.
그러면서 아내는 독한 예방 주사를 맞았단다.
나는 독감 예방 주사는 다 똑같은 줄로만 알았다.
어쩐지 작년에 미국에서 병원에 갔더니 주치의가 예방주사 왜 안 맞았느냐고 야단이다.
한국에서 맞았다니까, 내게 직접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린다.
올해도 일산 병원에서 독감 예방 주사를 맞기는 했으나 개운치 않은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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