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천국에만 있겠지

20190928_191912

늦은 저녁인데도 해가 한참 남아 있을 것처럼 보였다.
반바지에 러닝셔츠 바람으로 나섰다.
일 년이나 넘게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을 택했다.
오래간만에 걷는 길이 생소하지는 않았으나 새롭게 다가왔다.
농수로와 길 사이의 자투리땅에 아무것도 심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으나
경고문은 있으나마나 사람들은 무엇이든 심어 먹으려고 빈 땅이 없다.
고구마, 콩, 배추, 무, 파, 깨, 고추, 가지, 호박 없는 게 없다.
밭으로 일구느라고 풀을 뽑아 길옆에 쌓아놓았다. 뽑아도, 뽑아도 끝없이 자라나는 게 풀이다.
아무도 환영하는 이 없어도 풀은 쑤시고 나와야 하고, 빨리 자라 종자를 번식해야 한다.
대우받는 금수저로 태어난 무, 배추 파가 볼 때 흙수저만도 못한 풀은 귀찮고 보기 싫은 존재이리라.

하지만 원래는 흙수저 동산인데 인간의 욕심이 주인인 흙수저를 뽑아내고 금수저를 심었다는 게 아니냐. 이에 흙수저는 최소한의 저항을 하는 거다.
발단은 사악한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마치 광화문 풀뿌리 저항처럼.

길이 일직선으로 뻗어있어 곧바로 가면 한길과 맞닥뜨려 더는 갈 수 없다.
다시 되돌아서 걸어온다.
오면서 풀숲에 섞여 피어있는 꽃을 꺾어 들었다. 안개꽃 같으나 확실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아름다워서 꺾어 들었다.
구색을 맞추려고 노란 꽃도 한 송이 꺾어 들었다.
집에 다 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까지 올라와서야 생각이 났다.
꽃 꽂을 작은 병을 주워 올 걸. 다시 일층으로 내려가 분리수거함으로 갔다.
작은 박카스 병이라도 있나 해서 둘러보았다.
박카스병처럼 생겼는데 박카스병은 아니고 파이팅 파워다.

나는 처음 보는 병 이름이지만 이름이 무슨 상관이냐.
꽃병으로 쓰기에 접합하면 됐지.
가위로 줄기 끝을 잘라버리고 작은 파이팅 파워 병에 꽂아놓았다
보기에 예쁘고 테이블 분위기가 살아난다.
스마트 폰으로 꽃을 비추어 꽃 이름을 찾아보았다.
내 폰은 미국에서 쓰는 폰이어서 꽃 이름이 영어로 나온다.
작고 하얀 꽃은 ‘Frost Aster’ 노란 꽃은 ‘Jerusalem Artichoke(해바라기과 꽃)이란다.
다시 사전을 들춰 꽃 이름을 번역해 보았다.
‘Frost Aster은 미국 쑥부쟁이’ 꽃이다.
‘Jerusalem Artichoke는 뚱딴지 돼지감자’ 꽃이다.
뚱딴지같은 꽃 이름이지만 아무튼 꽃은 예쁘고 아름답다.
한결 마음이 부드럽고 평화롭다.
꽃은 천국에만 있지 지옥에는 없다. 나는 천국 같은 방에 머물고 싶다.
작은 꽃이 방안을 환하게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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