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뜩 떠오른 여드름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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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철 하나만큼은 자랑할 만하다.
깨끗하고, 소음도 적고, 흔들림 없어서 책을 읽어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도 바트라고 해서 서울의 전철과 같은 시스템이 있기는 하다.
1976년 개통할 때 최첨단 기술이라면서 닉슨 대통령까지 참석해서 테이프를 끊었다.
그러나 서울의 지하철과는 비교가 안 되리만치 허술하다.
소음이 너무 커서 이어폰을 끼고도 음악이 안 들릴 정도에, 흔들리기는 왜 그리 흔들리는지.

종로를 향해 달리는 토요일 오후의 전철은 한산했다.
노인이 되다 보니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일반석 앞에 가서 서 있기도 미안하다.
마치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은연중의 압력 같기도 해서다.
서서 갈망정 노인석 앞에 서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서로 모르는 사이인 여성 노인 두 분이 자리에 앉아 있다.
한 사람은 백팩을 무릎 위에 얹어놓고, 또한 사람은 바퀴 달린 쇼핑백을 앞에 놓고 있다.
쇼핑백 핸들을 쥐고 있던 여성 노인이 지퍼를 열더니 강냉이를 한 주먹 꺼낸다.
혼자 먹기에는 미안했던지 옆에 백팩을 끼어 안고 있는 노인에게 먹으라고 준다.
그리고 자기도 한 주먹 꺼내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금세 친해지는 습성이 있어서 두 사람은 강냉이를 매기 체로 같이 웃으며 맛을
즐긴다. 강냉이라는 게 맛은 없어도 한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어야 하는 성질이 있다.
둘이서 신나게 먹느라고 손이 쇼핑백을 분주히 드나든다.
분주히 드나들다 보니 바닥에 흘리기도 한다.
바닥을 어지르면 안 된다는 건 알아서 바닥에 떨어진 강냉이를 주워서 먹기도
여러 차례다.
강냉이 주인이 대곡역에서 내렸기에 망정이지 멀리 가기라도 했다면 강냉이는 동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승객은 점점 많아지면서 학생들부터 어른까지 늘어만 간다.
요새 학생들은 여드름이 없다. 여드름 난 학생을 보지 못했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얼굴 때깔도 허여멀건 게 모두 부잣집 애들 같다.
그러면서도 여드름 하나 없고 여드름 났던 자국도 없이 깨끗하다.
여드름 없는 학생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수업 사이사이 쉬는 시간이면 뒤에 앉은 아이들은 네모난 작은 거울을
꺼내놓고 여드름 짜는 게 일이었다.
그때 학생이라면 너나없이 양면이 거울인 작은 네모난 손거울은 필수품인양 들고 다녔다.
여드름은 인정사정없이 생겨 나와 속을 썩였다.
경쟁하듯 삐지고 나오는 여드름 때문에 민간요법이라는 건 다 따라 해 보기도 했다.
소금물로 세수도 해 보고, 알카홀로 닦아도 보고 별 짓을 다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여드름만 없어도 한 인물 나아 보였을텐데….
흔해빠진 게 여드름이어서 남학생은 당연히 여드름이 있어야 하는 거로 치부했다.
그러나 어떤 여학생은 못 봐주리만치 여드름이 많았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추억의 네모난 작은 손거울이 영영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
만물상이나 다이소에 들러 봐도 작은 네모난 손거울은 보지 못했다.
여드름 없는 학생들이 자신은 복 받은 청춘이라는 걸 알기나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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