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 만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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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같은 잉어가 기다린다.
일산 호수 애수교에 가면 돼지 같은 잉어가 기다린다.
반갑다고 앞에 와서 아양도 떨고 덩실덩실 춤도 춘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말이 하고 싶어서 입을 쩍쩍 벌리며 말을 건다.
소리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말하는 거 맞고 나는 알아듣는다.
네이셔널 지오그라픽 TV를 보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면서 보여 준다.
동물들은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언어가 있다.
그런데 동물언어가 인간의 귀에 소리로 들리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들리지 않는 언어도
있다는 사실이다.
동물 중에서 코끼리는 많은 언어를 구사한다.
코끼리는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인간은 들을 수 없는 소리로 소통한다.
음향 주파수에 나타나는 과학적 기법을 이용해서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잉어도 인간에게 들리지 않는 언어로 소통하고 있으리라.
강아지가 주인을 보고 반가워 꼬리를 흔들며 덤비듯이 잉어도 나를 알아보고 반긴다.
내가 저를 귀여워해 준다는 것을 알고 모여들어 앞에서 알짱대며 아양 떤다.
잉어는 내가 좋아서 멀리 가지 않고 내 앞에서만 맴돈다.
잉어가 물속에 있어서 그렇지 만일 물밖에서 산다면 고양이나 강아지보다 더 귀여움 받는
애완동물이었을 것이다.
물속에서도 저렇게 반길진대 물밖에 있었다면 얼마나 재롱을 피우며 덤비겠는가?
잉어가 물이 아닌 공기에서도 헤엄쳐 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구태여 멀리 잉어를 만나러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14층 창 밖에서 돼지처럼 뒤룩뒤룩한 살찐 잉어가 공기 속을 헤엄쳐 다니면서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창문을 열면 입을 쩍쩍 벌리면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할 것이다.
나는 라면을 부셔서 손바닥에 얹어 놓으면 잉어는 그 커다란 입으로 뻐끔 뻐끔 먹겠지.

애수교에는 “잉어에게 밥을 주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밥 주지 말라는 바람에 나는 흰쌀밥을 떠올렸다. 잉어도 쌀밥을 먹나?
열 살은 먹어 보이는 소녀가 잉어를 바라본다.
소녀가 이리로 가면 잉어들이 우르르 따라가고
소녀가 저리로 가면 잉어들이 우르르 따라간다.
알고 봤더니 소녀가 무엇인가 던져주고 있다.
“잉어에게 밥 주지 말라고 했는데……”
하면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라면 봉투를 보여주면서
“이거 밥 아니에요. 라면이에요.”
잉어도 군것질이 필요하다. 라면은 군것질일 뿐이다.
팻말 쓰는 직원이 잘 못 썼나보다. ‘밥을 주지 마시오’가 아니라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고
썼어야 할 것을…….

잉어는 배가 큰 모양이다. 먹어도, 먹어도 더 달라고 따라다니면서 보챈다.
커다란 입을 쩍쩍 벌리며 넙적넙적 잘도 받아먹는다.
나는 잉어가 배불러서 고만 먹겠다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열흘 굶은 비렁뱅이처럼 늘 배가 곱아서 죽겠다면서도 살은 피둥피둥 졌으니
배고프다는 것도 다 거짓말인 것 같다.
잉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잉어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말을 할 줄 안다면 나 같은 거 속여 먹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게다.
라면 얻어먹기 위해서 배고프다고 엄살떠는 정도는 귀엽게 봐주고 넘어가야지…….
잉어도 그렇지 나 같은 거 속여먹는 재미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나.
세월이 좋다 보니 잉어가 재미도 보고 호강도 하며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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