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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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as 날 눈 구경하러 선자령에 왔는데 여기도 그 많던 눈이 없네요.“
한국에 있는 친구가 사진과 함께 보내온 카톡이다. 사진을 보았더니 선자령이 대관령이다.
사진 속에 눈은 조금만 보이고 맑은 하늘에 경치가 좋아 보인다.
캘리포니아는 크리스마스 날, 막 날이 밝으려고 하는 여명에 비가 내린다.
창밖 가로등 불빛에 겨울 빗줄기 나리는 게 오래된 흑백영화 돌리는 것처럼 줄기차게 선을
긋는다.
이미 일기 예보에서 크리스마스이지만 온종일 비가 올 것이라고 했으니 올 수밖에.

어제 이브 아침에 볼일이 있어서 나가 봐야 하는데 아이들이 오겠다고 했으니 시간이
어긋날까 봐 막내딸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냥 무턱대고 ”언제 올 거냐?” 하고 묻는다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 앞에다가 슬쩍 아기 소식부터 끼워놓았다.
“아기가 열이 난다더니 어떻게 됐니? 너희들은 언제 올 거냐?”
아무리 기다려도 회신이 없다.
나도 볼 일이 있는 사람인데 너만 바쁘냐? 하는 오기도 발동하면서 아무려면 와도 저녁
늦게 오겠지 하고 길을 나섰다.
내일 크리스마스에는 상점 문을 닫는다. 일 년 중에 딱 하루 닫는데 그게 바로 크리스마스
날이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쇼핑센터마다 손님들이 들끓는다.
하다못해 식료품 상점도 악마 거리 끓듯 야단법석이다.
하루 가게 문 닫았다고 굶어 죽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상추 한 단 사러 멕시칸 식료품점을 위시해서 중국 식료품점 두 곳을 들렸으나 상추는 없다.

이 사람들은 상추 안 먹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미국 식료품점 주차장에 비비고 들어가 막 빠져나가는 차를 기다렸다가 겨우 자리 하나 얻어 코를 박았다.
여기는 싱싱한 상추가 얼마든지 있다. 한 단 사 들고 집으로 오는 발길이 가볍다.

뒤늦게 막내딸한테서 문자가 왔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 오후 3시에 가겠단다.
아무려면 일찍 좀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나 하면서 부아가 났으나 참았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멎었다. 온종일 아이들만 기다리다가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집안 온도를 높여 훈훈하게 해놓고 아이들 맞을 준비를 했다.
모두 양손에 선물이 든 종이 가방을 몇 개씩 포개 들고도 모자라서 여러 번씩 들락거린다.
가족이 다 모이니 왁자지껄한 게 사람 사는 집 같다.
각자 마련해온 음식들도 다양해서 아내가 있을 때보다 더 푸짐한 것 같다.
파스타, 스프게리, 돈가스, 셀몬 찜, 햄, 브로콜리가 들어간 사라드, 애플파이 등 너무 많아
기억이 안 난다. 누가 뭘 만들어 왔는지 모르겠으나 대부분 며느리가 해 온 거지 싶다.

저녁 늦게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이 반짝이는 리빙룸에 모여 앉아 선물을 열었다.
자질구레한 선물이지만 이번 해에는 선물이 넘쳐나는 것 같다.
아이들은 긴장하고 흥분해서 참지 못한다.
나도 자식들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네 살 먹은 손녀가 지가 포장을 뜯겠다며 앙증맞은 손으로 온 힘을 다해 벗겨낸다.

보온 커피 컵이 나왔다. 손녀는 마시는 시늉으로 컵의 기능을
대신 설명하면서 내게 준다. 가족 수가 많다 보니 선물 여는 시간도 꽤 길다.
그동안 자식들은 선물 고르느라고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까?
쇼핑센터를 드나들면서 하나씩 고를 때마다 선물 받을 사람을 생각해 보고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행복해할까 그려보았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열지 못한 선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한국에 나간 아내 선물도 그렇고, 친구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간 큰 고모 선물도 그냥 있다.
아내가 오면 1월 1일 설날 다시 모이기로 했다.
무엇보다 한해를 보내면서 건강한 가족이 내 곁에 있어주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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