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별 희한한 세상을 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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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격리 생활을 하다 보면 딱히 해야 할 일이 마땅치 않다.
하루에 한 번 나가던 산책도 두 번으로 늘켰다.
동네 어귀에서 예전에는 안 보이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리라.
이심전심이라고 악수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집에서 밥만 먹는 것도 지겨워서 가끔은 사다 먹는다.
월요일엔 켄터키 프라이 치킨을 사다먹고, 그것도 가장 적은 치킨 투 피스짜리면 된다.
세일할 때는 3.99달러다.
모처럼 오늘은 인 앤 아웃(IN-N-OUT)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 드라이빙 드루에서 사야 하는데 줄이 얼마나 길까
은근히 걱정이 됐다. 정 오래 기다릴 것 같으면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일렀다.
아내가 사 가지고 와서 들려준다.
긴 드라이빙 드루 줄에 섰더니 오더 받는 여자가 와서 오더 먼저 받더란다.
장사꾼은 돈 버는 일이라면 머리가 팍팍 돌아간다.
긴 줄이 금방 줄어들더란다.

맥도널드나 버거킹 햄버거는 먹어본 지가 10년도 더 넘었다.
가끔 햄버거가 먹고 싶으면 인 앤 아웃 버거를 먹는다.
가격도 착하고, 맛도 착하기 때문이다. 맛이 좋아서 한 달에 한 번은 먹고 싶어진다.
인 앤 아웃 버거가 맛있다는 소문은 한국에까지 퍼져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별걸 다 안다.
지난해 가을, 서울 강남 어느 식당에서 인 앤 아웃 햄버거를 1일 세일했다.
왜 하필 1일이냐? 한국에서 인 앤 아웃 상호를 지키려면 등록은 물론이려니와
등록이 만료되기 전에 2년마다 적어도 하루는 제품을 팔아야 한다나 뭐라나.
해서 강남의 어느 식당을 빌려서 인 앤 아웃 버거를 판매한단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벌써부터 그 사실을 알고 맛있는 오리지널 햄버거를 먹겠다고 아침부터
줄을 서서 오전에 하루치가 다 팔려나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제 맛이 날까?
인 앤 아웃 버거의 진솔한 맛은 얼린 재료를 쓰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고기도 즉석에서 만든 고기에다가 감자도 즉석에서 깎아 썰어서 튀긴다.
인 앤 아웃 버거를 광고하자고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집에서 만드는 햄버거처럼 정성을
다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 앤 아웃 햄버거는 가족이 하는 매점이어서 여러 군데 있기는 하지만 후렌차이즈는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휘셔 먼스 워프에는 어떤 프랜차이즈 식당도 개점할 수 없다.
하지만 인 앤 아웃만큼은 제발 열어달라고 해도 열지 않는다.
인 앤 아웃 매점 매니저의 연봉이 맥도널드 매점 매니저의 두 곱이라는 것만 봐도
인 앤 아웃이 얼마나 착한 햄버거라는 걸 알 수 있다.
347개 매점을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기업이지만 프랜차이즈가 아닌 가족 비즈니스다.

집에서 인 앤 아웃 햄버거로 점심을 먹으면서 자가 격리의 하루를 즐긴다.
TV는 보나 마나 코로나바이러스 뉴스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귀가 아프게 듣는 똑같은 뉴스이지만 그래도 매번 솔깃한 까닭은 전염병이 내게도 옮겨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리라.
새로운 검사 기술이 적용되는 내일부터는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겁을 준다.
사는 게 뭔지? 죽는 게 뭔지?
건강할 때는 그까짓 거 죽으라면 죽지 하다가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떨리고 망설이는 게
인간이다.
옛날 나의 할머니는 속상한 일이 생기면 늘 “죽어야지, 죽는 게 상팔자다”하셨다.
속상한 일이 많던 시절, 죽는 게 상팔자란 말만 듣고 자라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죽는다는 걸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살아 보았더니 죽는다는 건 끝이라는 뜻이다. 함부로 말할 게 못된다.
갑자기 생명을 빼앗아가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내 근처에서 휑 휑 날아다닌 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바이러스가 실내 공기에서 3시간 동안 살아 있다고 하지 않더냐.
집에만 있고 다른 곳에 가지 말라는 충고 새겨들을 만하다.
살다 보니 별 희한한 세상을 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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