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희생자 플로이드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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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플로이드 추모식으로 온종일 떠들썩한 하루다.
뉴욕 시장 블라시오가 브루클린의 조지 플로이드 기념식에 참석하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시위대는 “숨을 쉴 수 없다” “물러나라” “경찰에게 지급되는 돈줄을 차단하라”라고 외쳤고
통행금지를 철회하라고 부르짖었다.
시장 블라시오는 군중들을 향해
“우리 모두는 백인의 특권의식을 알고 있으며 이 특권의식은 변해야 한다.
왜냐하면 특권의식이라는 게 인종차별을 야기하고 인종차별에서 오는 고통 조차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플로이드의 동생 테런스 플로이드는 단상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시위가 자랑스럽지만 파괴가 자랑스럽지는 않다. 조지 플로이드는 그런 게 아니다.”
청중 중의 한 사람 윌리암스는 단상에 올라
“우리는 잘못된 대통령을 가지고 있고, 잘못된 주지사를 가지고 있으며, 잘못된 시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우리는 지난 열흘 동안 미국에서 일어나는 폭동을 목격했다.
근본 원인은 이종차별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한국에서는 같은 언어, 같은 피부, 같은 인종이 함께 살기 때문에 인종차별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들린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세계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편견과 갈등 내지는 차별이 심한 편이다.
국가에서도 이 문제를 최우선시해서 초등학교부터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이
철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인종차별에 물들어간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것은 인간 본능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보이게 보이지 않게 한국인들도 많은 인종차별에 시달린다.
LA에 거대한 한인 사회가 형성된 까닭도 인종차별을 피해 캘리포니아로 모여들었기에 생겨난 현상이다.
독일 광부 출신과 간호사 부부도 토론토 캐나다에서 복스웨곤에 짐을 싣고 LA로 향했다.
1972년의 일이다.
한인 의사 조동준 씨도 그의 자서전에서 생애에 제일 잘한 일은 미국으로 건너온 일이고
다음으로는 뉴저지에서 LA로 이사한 일이라고 했다.
그나마 캘리포니아는 아시아인에게 인종차별이 덜한 주이다.
인종차별이라고 하는 것은 묘해서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면서 억압인지 장벽인지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존재하고, 똑같이 보호 받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쥐어짜는 스트레스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한국인은 무엇을 해도 열심히 하기 때문에 대부분 잘 사는 편에 속한다.
상중하로 나눈다면 중산층에서도 상에 속하는 편이어서 주로 백인들이 사는 지역에 가 보면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은 아이들 교육을 중요시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대학 교육을 마치게 한다.
세계 어느 나라 민족보다 교육에 열정이어서 결과적으로 더 낳은 직장에 더 낳은 보수를 받게 되고

더 낳은 동네에서 살게 된다.
한국인이 백인 동네에서 산다고 해서 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은 더 낳은 장래를 보장 받게 된다.

한 사람이 희생당했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내가 바뀌어야 한다. 십분 노력하던 것을 십일분 노력함으로서 한 스텝 위로
올라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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