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고 하지만 아직 여름의 끝자락처럼 덥다.
오늘부터 월드 시리즈 야구 경기가 벌어진다.
오후 5시 반부터라고 했으니 야구 경기를 보려면 저녁에는 걸어 나갈 시간이 없을 것이다.
아침저녁 두 번 걷는 것을 한 번으로 줄여야 한다. 운동길을 긴 코스로 잡았다.
화요일 오전 일찌감치 나섰더니 별로 사람이 없다.
코비드로 집콕을 하게 되면서 너나없이 공원으로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공원에 사람들이
들끓었다. 사람이 많아지면 무엇이든지 험악해지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운동길, 한 줄로 걸어야 할 만큼 좁은 동산길이 사람들 발길에 들볶이면서
점점 넓어지더니 드디어 대로처럼 변했다.
들풀이 다 사라진 동산길이 대머리처럼 번들번들한 맨 흙길이다.
공원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자연을 파괴하고 길을 괴롭히더니 드디어 황폐에 가깝게 만들었다.
인구가 늘어나면 인심만 야박해지는 게 아니라 자연환경도 닳고 달아 삭막해진다.
내가 차를 몰고 인구밀도가 낮은 오리건 주나 워싱턴 주를 여행할 때면, 그쪽 사람들은
자동차 뒤 범퍼에 붙어있는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보고 흉본다.
“캘리포니아 운전자들은 정지 표지를 보고도 서는 척하다가 그냥 지나치는 얌체족들”이라고,
우회전하기 전에 일단 정지했다가 돌아야 하는데 정지하는 척하다가 그냥 돌아버린다고 흉을 본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뉴욕 번호판을 단 차를 보면 흉본다.
뉴욕 번호판을 달고 가는 차가 교통법규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뉴욕커가 돼서 그래 하고
흉본다.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딘가 남보다 한발 앞서야 하기 때문에 요리조리
요령을 피우게 되고, 요령은 곧 비위로 이어진다.
정직에는 완벽 정직, 완벽에 가까운 정직, 정직, 정직에 가까운 부정직, 부부정직이 있는데,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으로 갈수록 완벽 정직에 가깝고,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갈수록
부정직해진다.
2020년은 코비드 때문에 특별한 해로 꼽아야 한다.
미국 야구 경기는 팀당 일 년에 160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올해에는 엉성하게 흉내만 내다가 말았다.
경기마다 무관중으로 치르면서 팬들에게 관심도 끌지 못하는 바람에 적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명색일망정 챔피언십이나 월드시리즈까지는 치르게 되었다.
금년 월드시리즈는 LA 다저스와 탬파베이 레이스가 맞붙는다.
경기는 공평하게 두 팀의 중간 지점인 알링턴 텍사스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서 열린다.
야구 경기에 관중을 25%까지 입장시켜도 좋다는 허가가 나왔다.
글로브 라이프 필드로서 25%의 관중이라면 11,500명이 된다.
관중들이 드문드문 엉성하게 앉아 있을망정 가짜 관중을 놓고 벌이던 경기보다 보기에 좋다.
예년 같았으면 월드시리즈 인기가 높아서 각 TV에서 경쟁적으로 중계방송을 하겠다고
덤벼들었겠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첫날 경기 시청률이 10%도 못 미쳤다.
아쉽게도 첫날은 1루 수비수 최지만이 결장했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의 월드시리즈 수비수로
출전하는 선수인데 탬파베이 감독이 최지만을 선수명단에서 빼놓았다.
첫날 경기는 다저스가 승리했다. 7전 4승제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에서 태어난 최 선수가 동료 선수들과 영어로 일반적인 소통은 하지만, 인터뷰라든가
감독과의 대화에는 통역관을 동반한다. 최지만 선수가 뛰는 바람에 TV 중계 도중에 아나운서가
“안녕하십니까”하고 자신이 아는 한국말을 과시하기도 했다.
둘째 날은 최지만이 1루수로 선발됐다.
6회 초 최지만의 안타가 작렬했다. 후속타가 이어지면서 최지만은 홈인했다.
한국 선수로서 월드시리즈에 출전한 박찬호, 류현진, 김병현 선수가 있었지만 모두 투수였다.
최지만은 월드시리즈에 출전한 한국 선수 최초의 포지션 선수라는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식당도 야구 경기장처럼 손님 25%만 입장이 허락됐다. 25%가 어디냐고 좋아하는 식당도
있고, 웨이트리스를 고용하느니 차라리 투고만 하겠다는 식당도 있다.
11월 3일부터는 50%로 상향조정된단다.
막내딸이 사는 동네의 컴뮤니티 수영장은 넓고 쾌적하다. 자구찌도 있어서 몸을 녹이며
마사지를 하다가 수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코비드 사태로 수영장을 닫았었다. 요즈음 다시 열었는데 한 가족이 한 시간씩
예약제로 이용할 수 있다. 가족이 전세를 내는 식이다.
딸네도 아이들을 데려가 놀면서 갓난아기 수영하는 걸 영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관인 것은 코비드 사태로 돈줄이 마른 영화관 체인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싼값에 극장을 개인에게 빌려주는 고육지책을 내놓았다.
미국 최대의 영화관 체인 AMC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원하는 고객을 위해 99달러에
100명 입장이 가능한 극장 상영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주겠다고 나섰다.
AMC는 1회 극장 임대에 가족과 친구 등 최대 20명까지 입장이 가능하고,
가족용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와 ‘슈렉’을 비롯해 핼러윈 시즌 공포 영화,
최신 개봉작 가운데 1편을 골라 관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 개봉작 임대료는 최소 가격인 99달러이고,
테넷’ 등 최신작 임대료는 149달러 이상으로 책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