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괴롭히던 친구

IMG_200-0001 (2)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괴롭힌 동급생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른 고교생이 항소심에서 감형
받았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다.
<A군(18)은 초등학교 때 같은 영어 학원을 다니면서 자신을 괴롭힌 B군을 고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만나게 됐다. A군은 과거 괴롭힘에 대해 사과 받을 목적으로 B군의 집을 찾아가
과거 네가 나한테 한 일에 대해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B군은 무슨 일이냐며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화가 난 A군은 흉기로 B군의 가슴과 복부
등을 11차례 찔러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범죄의 심각성과 위험성이 매우 크다면서 특수 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1심의 형량이 너무 무겁다면서 항소한 A군을 항소심 재판부는 A군이 괴롭힘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우울증 등을 겼었을 가능성이 상당한 점과 B군이 괴롭힘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자

화가 나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범행 후 B군의 동생에게
119 신고를 요청한 점 등을 들어 A군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함과 동시에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160시간 명령도 내렸다.>

이 기사를 읽는데 공교롭게도 카톡이 울린다.
카톡을 열어보았는데 멀리 LA에서 사는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온 문자다.
<난 동창 중에 두 놈이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한 놈은 군에 입대해서 만났는데
내게 요것 저것 물어보더니, 휴가 가서 나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돈을 뜯어낸 놈이
하나 있고, 또 한 놈은 고3 때 내 영어책을 훔쳐 다른 반에 넘겨준 놈인데
내가 보고도 주위의 애들이 말려서 책은 찾지 못했다.
그때 영어 선생님이 너무 까다로워서 교재를 책방에서 살 수도 없어서 영어 성적이 시원치
못했다.
짝꿍한테 책을 빌려서 베꼈는데 베끼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나중에는 빌려주지도
않더라.>
이런 사연이었다.

희한하게도 억울하게 당한 일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속담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라는 말이 이래서 생겨난 것 같다.
원수라기보다는 나를 괴롭혔다거나 내게 싫은 소리를 들려주었던 사람 정도만 돼도 알량한
기억력은 악착같이 차곡차곡 기억해 둔다. 그러면서 신세를 졌거나 은혜를 입은 것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기억하는 데 인색하다. 인색하다 못해 금세 잊어버린다.

한번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살던 동창이 뇌졸중으로 죽는 바람에 장례를 치른 일이 있다.
에드먼턴에 사는 동창과 보스턴에 사는 동창에게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으면 참석해 달라고 연락했다. 보스턴에서 사는 친구는 달려왔는데 에드먼턴에서 사는 동창은 오지 않겠단다.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학교에 다닐 때 친하지도 않았었고, 그때 그 친구가 때리려고 하는
바람에 혼난 일이 있어서 참석하기 싫다고 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동창이라고 해서 다 같은 친구는 아니다.
죽은 친구는 학교에 다닐 때 태권도를 배우러 청도관에 들락거리면서 배운 것을 써먹어야
하기에 주먹이 근질근질해서 아무나 붙들고 찝쩍대기를 좋아했다.
나 역시 그 친구에게 붙들려 얻어맞을 뻔한 일이 있었는데 빌다시피 하고 겨우 모면했다.
하지만 나이 들어 미국에서 만났는데 그런 사실을 그 친구가 기억할 리도 없고 구태여
나쁜 기억을 들춰내기도 뭐해서 없던 일로 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 친구도 나이가 든 다음에는 점잖고 오히려 든든한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만 원수 갚겠다고 칼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늙어도 원한은 지워지지 않는다.
하다못해 그렇게까지 원한이 매칠 정도의 나쁜 말도 아니었건만 내게 고깝게 들리는 말은
바다 가운데 섬처럼 뚝 떼어서 기억 속에 남아 맴돌면서 나를 괴롭힌다.
전에는 나도 원한이 있는 친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려서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이럴 때는 기억력 감퇴인지, 인지 능력 저하인지로 인해 지워져 사라지는 기억이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기억력 감퇴라는 게 은혜까지 잊으려 드는 데 문제가 있다.
살면서 신세 진 사람이 여럿인데 신세를 갚지 못하고 죽을까 봐 걱정이다.
그보다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빚진 신세를 갚지 않고 미루는 내가 밉기도 하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