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至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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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서재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나무와 나무 사이로 언덕 밑 집 뒷마당과 나무숲이 우거진

틈새로 드문드문 지붕이 보이면서 멀리 산마루가 길게 이어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언덕 밑 집 뒷마당에 우뚝 선 구척장신 소나무가 가로막고 서 있어서

그 뒤로 전경이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정은 알 수 없으나 뒷집 주인이 소나무를 베어버린 것이 내게는 행운으로 다가왔다.

앞이 탁 트여 시원한 경치가 열린 것이다.

소나무가 사라진 다음부터 나는 창문을 자주 연다. 훤히 트인 전경을 즐기기 위해서다.

창밖을 내다보면 날씨가 좋은지, 바람이 부는지, 얼마나 세게 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흰 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지만, 그런대로 맑은 편이어서 하늘엔 파란색이 더 많은 아침이다.

가끔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바람이 일다마다 하는 모양이다.

 

나는 요새 행복해서 죽겠다.

사람이 행복하면 보이는 것이 모두 사랑스럽게 보인다. 문밖에 나서자마자

앞집 후리오가 “Joe”하고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흔드는 것도,

동네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반갑다고 손을 들어 인사하며 지나가는 것도 모두 나를 즐겁게

해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매일 두리번거린다. 산책하러 나갔다가도 글감이 없을까 찾아보는 거다.

글은 쓰면 재미있고, 완성되면 만족스럽다. 더군다나 쓴 글이 마음에 든다면 이보다 더한

소득은 없는 것처럼, 아니 길에서 금덩어리를 주운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다.

써놓은 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은 추려놓았다가 공모전에 보낸다.

매번 작품을 보내놓고 기다리는 동안의 행복은 무엇으로 표현해도 부족하리만치

긴장되고 행복한 즐거움이다.

이런 행복은 흔치 않은데 공모전에 출품해 놓고 기다리는 행복이 행복 중의 으뜸인 것 같다.

마치 낮 선 여자와 다음 주에 만나기로 데이트 신청을 해 놓고 기다리는 심정과 같은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면 아내는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에 미주 한국일보 문예 공모전에 수필 5편을 보내놓고 매일 밤 상 받으러 가는 꿈을

그렸다.

상을 받으면 상금으로 무엇을 할지 상상해 보는 행복한 시간도 만끽했다.

상 받으러 LA에 가는 길에 손주 녀석도 데리고 가서 시상식 후 샌디에이고 씨월드에 들러

돌고래 쇼를 손주와 같이 즐기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 손주만 할 때 씨월드에 갔었으니까 얼마나 오래됐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때 재미있게 보았던 돌고래쇼가 평생 기억에 남아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이번엔 재미있는 돌고래 쇼를 손주에게 보여주면 손주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꿈은 마음을 들뜨게 하고 행복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7월 말이나 8월 초에는 발표가 있어야 하는데 소식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았다.

당선 결과는 개별적으로 통보했단다. 다만 신문에 발표를 미루는 것은 코비드가 언제 끝날지

몰라서 시상식 날짜가 정해지지 않아서란다.

내게 통보가 없었다는 것은 떨어졌다는 말이다.

그때 가졌던 허탈한 마음과 실망은 일찍이 누렸던 기대와 행복만큼 컸다.

가을에 수필집 참기 어려운, 하고 싶은 말을 내면서 그때 신문사에 보냈던 수필도 실었다.

오늘도 수필을 쓰면서 올해에도 보낼 생각이다.

꿈에 부풀어 글을 쓰면 행복이 저절로 따라온다.

코비드로 집에 갇혀있어도 지루한 줄 모르겠다.

올해에는 꼭 당선해서 그 상금으로 손주와 샌디에이고 돌고래 쇼를 보고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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