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를 생각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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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정오쯤의 인사동 거리는 한산했다.

봄이라고는 해도 쌀쌀해서 두꺼운 외투를 벗지 못하고 움츠리고 다녔다.

종로에서 인사동으로 들어서는데 왼편에 싸구려 국숫집이 있어서 즐겨 먹던 국숫집이

문을 닫았다. 건물을 헐어내고 새로 지을 모양이다.

오전에 인사동으로 걸어 들어가 본 지도 오래돼서 아침 인사동은 어떤지 기억에 없다.

다만 오늘 정오의 인사동 골목길은 무척 한산해 보였다.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오전이어서 그런가 해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코로나로 외국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그렇단다.

아닌 게 아니라 몇 안 되는 사람들일망정 모두 한국인이다.

관광객은 눈을 비비고 찾아보려 해도 없었다.

드문드문 임대 사인이 붙어있는 거로 보아 장사가 안되기는 안 되는 모양이다.

 

한산한 길거리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있는데 바퀴가 달린 납작한 널빤지에 엎드려

기어 다닌다.

서울 시내를 걷다 보면 가끔 엎드려 다니면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측은하다는 마음이

들면서 왜 길에 나와서 구걸을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도와주고 싶다거나 도와줘 본 일도 없다.

오늘 내가 본 엎드려 구걸하는 사람은 특이하게도 맨살 종다리를 다 내놓았다.

아직 맨살을 내놓고 다니기에는 날씨가 쌀쌀한데 종다리를 보는 순간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빈 양재기 하나를 들고 다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을 넣어준다.

동전 떨어지는 딸가닥 소리가 들리는 거로 보아 지전은 없고 동전만 주는 모양이다.

동전 소리에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동전이 있나 하고 찾아보았다.

내 주머니엔 동전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집 싱크대 위에 동전 넣는 그릇을 놓고 거스름돈으로 남겨온 동전은 무조건 꺼내놓는

버릇이 있다.

주머니에서 동전이 덜렁대는 게 싫어서 생긴 버릇이다.

동전이 없어서 지전으로 천원을 넣어주었다.

 

나는 원래 거지에게 돈을 주는 사람은 아니다. 살면서 많은 거지를 보았지만 선 듯 돈을

줘본 일은 극히 드물다.

오면서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돈을 주게끔 마음을 움직였나?

그의 맨살 종다리였다. 맨살 종다리가 추울 것이라는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고 남들이 넣어주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나를 자극했다.

진심 반, 분위기 반으로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거창하게 적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잔돈푼이나마 건네준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 번째는

오래전에 명동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점심때가 돼서 점심을 사 먹으로 항아리 수제빗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주머니에 달랑 5,000원 밖에 없었지만, 수제비 가격이 5,000원이니까 딱 됐다고 생각했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노숙인이 음식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머리는 검부쟁이처럼 뒤엉켜있고 세수를 안 한 얼굴엔 구정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양식집 앞 길거리에 놓아둔 음식 쓰레기 버킷 속에 팔을 넣고 뒤지다가 먹다 버린 피자

쪼가리를 꺼내 들더니 입으로 베어먹는 게 아닌가.

나는 걸어가면서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올각질이 나면서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저거 먹으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벌써 몇 발짝 그를 지나치고 있었다.

갑자기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되돌아서서 주머니에 있던 5,000원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돈을 받아든 그가 아무 말 없이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맙다기보다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눈빛 같았다.

나는 주고 나서도 무안한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도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노숙자는 거지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노숙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 노숙자도 노숙이 부끄럽다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배고픈 게 가장 큰 고통이지만 자존심도 그에 못지않다.

사람들은 노숙자는 자존심도 없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지독한 가난은 자존심을 다 내려놓게 하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자존감은 살아

숨 쉰다.

배가 고파도 천대받기는 싫다. 동정도 싫다. 다만 참기 어려울 뿐이다.

노숙자가 원하는 건 어떻게 하면 배를 채우느냐 뿐이다.

허기만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인간은 꼬박꼬박 먹어야 하니까.

배가 고파 온다는 것은 가장 일차적인 생존 문제이다.

노숙인을 되새겨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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