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가 가져오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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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은 여러 가지다.

여러 가지 증상 중에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코로나에 걸릴까 봐 그러겠으나, 결국은 죽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두려움을 물리치는 해답은 희망인데 희망은 어디서 오나?

종교가 두려움 극복에 큰 역할을 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다음으로 과학자나 전문가의 지식에 희망을 걸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거리두기와 대면 접촉 금지 같은 여러 가지 제약은 사람을 더욱더

두렵게 만든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이다.

코로나 전염을 피하고자 스스로 자가격리를 선택하거나,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 한다.

둘 다 완벽한 방어 수단은 아니지만 도움은 되고도 남는다.

 

LA에서 사는 동생이 아들과 함께 우리 집에 오겠다고 했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가까운 동생이다.

동생의 아들이 나에게는 조카 아이지만, 말이 조카 아이지 나이가 40이니 아이가 아니다.

아틀란타 조지아에서 일하다가 휴가를 얻어 한국에 나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르겠다는 거다.

처음 오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반가워야 할 텐데…….

코로나 시대가 돼서 동생일망정 들른다는 게 개운치는 않다.

모두 백신을 맞았다고는 하지만 백신 맞은 사람도 코로나바이러스를 옮길 수는 있는 거다.

아내는 왜 하필 이런 시즌에 들르겠다고 하느냐면서 못마땅한 표정이다.

동생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우리 집 근처에다가 호텔 방을 얻어놓고 우리 집에 들르겠단다.

그래도 그렇지 내 집을 놔두고 집 근처에서 외박하겠다는 게 말이나 되나?

나는 염려 말고 오라고 했다.

아래층 손님방을 치워놨으니 거기서 기숙하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아내만 께름칙해 하는 게 아니다. 누님도 그렇고 형님네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점심이나 저녁으로 때우겠다는 식이다.

참으로 시국이 이상하다 보니 평상시 같으면 이집 저집에서 환영할 일을

지금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니 딱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아들을 데리고 들르겠다는 까닭은 아들 장가보내는 일이

시급해서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어떻게 해서라도 결혼을 해야 하는데

어찌 된 세상이 한국에서 알던 여자는 미국에 가서 고생하며 살기 싫다고 틀어졌단다.

한국 여자들이 똑똑해서 미국에서의 삶이 어떠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짧은 인생 외롭고 답답하게 고생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요즈음 한국 젊은 여자들의

생각이다. 참 희한한 세상도 다 있다.

동생은 미국에 있는 여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데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문을 닫았으니.

다시 열었다고 해도 오랫동안 불출석하던 교인들은 불출석으로 굳어져서 출석하지 않는다.

사람 만나기도 어려운데 배필감을 어찌 구할 수 있겠는가?

 

내게 들른다고 좋은 소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누가 아는가.

병은 광고해야 낳는다고 했으니…….

 

자유롭지 못한 삶 속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다.

그중에서 가장 큰 상실은 기회의 실종이다. 젊은이들에게 취직의 기회가 사라졌고,

여행의 기회가 사라졌고, 도전의 기회도 사라졌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하다못해 애인을 만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캘리포니아의 산불은 그칠 줄 모른다.

4년 연속 가뭄에 산불마저 무섭게 타오른다. 별게 다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휴양지 타호 호수 근처의 울창한 산림이 산불 속으로 잠적해 들어간다.

자연재해가 인간이 저지른 환경오염 때문이란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말했다던가?

신은 언제나 용서하고 인간은 때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산불은 자연재해로 연결되지만, 코로나도 자연재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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