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연속 단편 소설(托卵)

IMG_20-2-1

3.

유난히도 맑은 초가을이었다.

현아의 엄마를 만나야 한다는 바람에 은근히 떨리고 초조했지만,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기에 현아를 따라나섰다.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하는 게 싫다.

사람들은 입양아라고 하면 선입견 때문에 그러는지, 별나라에서 온 사람 보듯 쳐다본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눈초리로 훑어보며 얕잡아보려 드는 게 싫다.

현아 엄마가 강남 구의원이라는 것과 체면을 중요시하고 난 척하는 면이 있어서

치켜세워 주든가 비위를 맞춰 주면 좋아한다는 것을 현아가 가르쳐 줘서 알았지만,

비위를 맞춰 줘야 좋아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미숙하기도 했고 마음에 없는 말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고층 아파트들이 겹겹이 서 있는 사이로 햇살이 사선을 그리며 비치고 있었다.

현아 엄마는 강남 ‘라프리모’ 아파트 23층에 산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현아 엄마의

집답게 언뜻 보아도 귀해 보이는 골동품들이 거실 진열대를 메우고 있었다.

벽에는 독일제 뻐꾸기시계가 걸려 있었는데, 짙은 갈색의 앙증맞은 새 집에 뻐꾸기가 앉아

있다가 매시간 튀어나와 “뻐꾹! 뻐꾹!” 울어대며 시간을 알렸다.

현아 엄마는 피부가 거칠어서 화장을 짙게 해서 그런지 영화 속 술집 마담 같기도 했고,

고생을 많이 한 여인 같아 보였다. 목소리도 약간 쉰 듯했다.

처음 만났는데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눈빛에서 업신여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앉으라는 말 한마디에 얼어버린 어항 속 금붕어처럼 소파 귀퉁이에 앉아서 눈치만 살폈다.

입사 면접시험이 이보다 까다롭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 보여야 현아 엄마가 좋아할지, 손은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것투성이인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손잡이가 없는 작은 찻잔에 차를 따라주는데, 어떻게 마셔야 하는 건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현아가 먼저 두 손으로 시범을 보여주며 따라 하란다.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면서

미처 찻잔을 비우기도 전에 현아 엄마는 범인을 심문하듯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것도 예의에 벗어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골적으로 캐물었다.

한국인이라면 번듯한 이름 석 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름도 없으면서 어떻게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못마땅해하는가 하면, 성씨가 있어야 근본을 알 것 아니냐고도 했다.

이름이 마이클 톰슨이라고 해도 가수 이름도 아니고 무슨 이름이 그러냐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 몇 마디 나눠 보지도 않았지만, 천박하다고나 할까, 교양 없는 엄마라는 느낌을 받았다.

― 지금 세상에 누가 출신 성분을 따지느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근본이 있는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 법이에요. 내가 유명한 작명가를 아는데, 이 기회에 좋은 한국 이름이나 짓지 그래요?

현아 엄마는 내 표정을 살피고는 찻잔을 비우면서 말을 이어갔다.

― 이름 석 자로 운명이 바뀌는 건데 남자가 이름도 없이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어요?

그녀는 이름 운세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름도 없는 남자라는 걸 처음 알았다. 운명이나 운세와 같은 말의 뜻도 잘 몰랐지만,

믿고 싶지도 않았다. 궁합을 봐야 하는데 생년월일은 제대로 맞기나 하냐고도 물었다.

나도 내 생년월일을 의심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매우 불편했다.

 

엄마가 무척 실망하더라고 나중에 현아에게서 들었다. 친부모가 없는 데다가 의사나 박사도 아닌

사윗감은 싫다고 하면서 어른을 빤히 쳐다보는 태도가 버릇없어 보인다는 것도 반대

이유 중의 하나라고 했다.

― 여자는 남자 한번 잘 만나면 되는 거야. 이것아, 정신 차려!

현아는 엄마가 말할 때 입을 씰룩대는 흉내를 내보이면서 말했다. 엄마 편이면서도

실은 나를 감싸주는 현아가 고마웠다. 고마워서 현아에게 끌리는 마음은 더욱 짙어져만 갔고

현아를 만나면 즐거웠다. 둘이서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딸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현아 엄마는 서둘러 결혼 날짜를 잡았다.

사윗감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숨기고 미국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라고 소개했다.

현아 엄마는 결혼식장에 돈을 주고 하객을 불러 모았다. 불러 모은 나의 친척이 50여 명은 족히

돼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내 부모님이라고 내세웠다.

살면서 누구를 닮았을지 항상 궁금했고, 그래서 부모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를 떠올려

보곤 했었지만, 막상 부모님이라고 내세운 사람을 보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이름도 유명한 작명가에게 부탁해서 지어 왔다면서 김민수(金敏秀)로 부르라고 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못마땅해하는 내게 현아는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엄마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미국에 가서 살 것 아니냐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예식장에 출현한 생면부지의 내 부모님을 보면서 이게 연기가 아닌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비애를 느꼈다.

 

 

4.

샌프란시스코는 주거비가 비싸서 다리 건너 싼 지역 오클랜드에 자리 잡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사진으로 보았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는

없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음, 호흡할 때 걸려드는 특유의 곰팡내, 햇빛이 없는 창문,

이런 건 인터넷으로 알지 못했다. 아파트 세는 마음에 들었으나 지역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파트가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동네라 현아는 싫다고 했지만, 잠시 살면서 돈 좀 벌면

좋은 곳으로 이사하자고 다독여 주었다. 방 하나에 작은 거실과 부엌이 달린 1층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차렸다. 살림이라고는 작은 것, 큰 것 합쳐서 여행 가방 네 개가 전부였다.

낯선 지역은 아는 사람도 없고 모든 게 새로웠다.

아파트 매니저를 찾아갔다. 매니저는 자신을 ‘해리’라고 소개했다.

― 해리, 미안하지만 자동차 좀 빌려줄 수 있겠어요?

안 된다고 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물어보았다.

― 뭐라고요? 차를요?

해리는 뜻밖의 요구에 놀라면서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커다란 눈동자를 굴려댔다.

― 네. 초면에 무례하다는 건 알지만, 사정이 딱해서요.

― 얼마를 주시겠어요?

해리는 웃으면서 거절을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예상치 못한 농담에 긴장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렸다.

농담이 섞여 있다는 것은 긍정이란 의미도 된다.

― 돈보다도 뒷마당 잔디밭에 물 주는 건 제가 책임지고 해 드리겠습니다.

― 그래요? 얼마 동안 책임지겠다는 거요?

― 내가 이 아파트에 사는 한은 알아서 해 드리지요.

그리고 아내가 임신 팔 개월이라는 것도 말해 주었다. 사정이 딱해 보였던지 해리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자동차 키를 꺼내 준다.

현아와 함께 쇼핑센터로 향했다. 스마트폰을 개통하고 인터넷을 신청했다.

스마트폰을 받자마자 톰슨 어머니에게 사는 곳을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보고 싶다면서 곧 오겠다고 했다.

 

아파트 매니저와 약속한 대로 매일 오후 한 차례씩 뒷마당 잔디에 물을 주었다.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 끝에 조리를 끼고 들고 서 있으면 물이 분수처럼 뻗어 나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목마른 헬레나벌새가 조리에서 쏟아지는 분수에 기다란 주둥이를 대고

물을 마신다.

엄지손가락만 한 몸통에 두 날개를 어찌나 빨리 흔들어 대는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마치 헬리콥터가 허공을 날다 말고 정지해 있는 것 같았다.

현아 엄마는 헬리콥터 맘이다. 딸 하나뿐이어서도 그렇겠지만 매사에 쫓아다니면서

참견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기를 바랐다.

헬레나벌새처럼 욕심도 많아서 딸이 자기 생각에 역행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출산일을 보름쯤 남겨놓고 현아 엄마가 왔다. 방이 하나짜리 좁아빠진 아파트여서

몇 발짝만 걸어도 벽에 부딪혔다. 현아와 현아 엄마는 방에서 자고 나는 홀로 거실에서 잤다.

현아도 그렇고 현아 엄마도 미국은 부자 나라여서 호화로운 생활만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현아 엄마는 가난하고 초라한 아파트로 들어서면서 실망이 컸는지 코를 널름거리며

냄새를 맡고 다녔다. 먼동이 트기도 전, 꼭두새벽에 잠이 안 온다면서 거실로 나왔다.

거실과 붙어 있는 부엌에서 불을 환하게 켜놓고 맥스웰 인스턴트커피를 타느라고

달가닥거리는 소리에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커피 향이 코를 자극했다.

할 수 없이 일어나 “나도 한 잔 주세요.”라고 말했다.

현아 엄마는 쓰디쓴 한약 한 대접을 마신 것처럼 찌푸린 얼굴을 펼 줄 몰랐다.

원두커피만 마시다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자니 왜 이리도 맛이 없느냐며 불평을 늘어놓아

듣기에 거북했지만, 못 들은 척하고 넘겼다.

현아 엄마가 못마땅해하는 게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속을 풀어드릴까 하고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불평은 커피 맛만이 아니었다. 좁아터진 주방이며 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위층에서 쿵쿵대는 소음까지 불만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었다.

현아 엄마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이야기를 구태여

끄집어내는가 하면 대답을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겠다는 심산인

것처럼 입을 씰룩이며 거침없이 나무라듯 말했다.

듣고 있기에 민망했고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치욕감마저 느꼈지만, 꾹 참았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