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연속 단편소설 ‘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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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희한하게도 갓난아기의 얼굴에 내 얼굴이 겹쳐 그려졌다.

아기가 나라고 느껴지면서 행복한 것도 같고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도 같았다.

내 아기만큼은 아무런 구김살 없이 자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출산 다음 날 아침에 퇴원하라는 간호사 말에 현아 엄마는 버럭 화를 냈다.

세상에, 간호사라면서 산후조리도 몰라?

현아 엄마는 산모가 병원에 더 입원해 있어야 한다면서 퇴원하는 걸 원치 않았으나

병원 측은 단호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기를 낳고 난 다음 날부터는 샤워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 운동하라고 권했다.

현아 엄마는 몸조리하지 않으면 산후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느냐면서

나를 다그쳤다. 나는 중간에서 어느 말이 맞는지 알지 못했다.

의사에게 산후조리를 문의했으나 그럴 필요 없단다.

현아 엄마에게 문화적 차이라고 설명해 주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자고 했다.

이해가 안 된다는 걸 겨우 애걸하다시피 해명해 주고 현아와 아기를 차에 태웠다.

집이라고 원.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아. 하다못해 미역국을 끓이려고 해도

커다란 냄비가 있어야지.

불만을 토로하던 현아 엄마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자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가?

느닷없이 쏘아붙이는 말에 당황했다. 현아 엄마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내 딸이 고생하는 꼴을 더는 못 봐주겠네. 자네 부모더러 집이라도 사 달라고 하게.

진심인지, 지나가는 말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나에게는 비수처럼 들렸다.

문화 차이를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농촌에서 사는 톰슨 어머니에게 재정적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한국서처럼 자식을 위해 집을 사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좁아터진 아파트에서 매일같이 현아 엄마와 부대끼는 건 견디기 힘든 노릇이었다.

하다못해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도 다 들리는데 들리는 소리가 안 들리는 것처럼 하며

지내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현아와 현아 엄마는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붙어 앉아서 속닥거렸다.

너 이러려고 미국 왔니? 이건 아니다, .

현아 엄마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보나 마나 고생할 게 빤하다면서 현아를 충동질했다.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던 현아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현아는 자신이 낳은 아기인데도 예뻐하거나 귀여워하지 않았다. 애를 낳으면 모성애라는 게

저절로 생겨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산모가 아기를 돌보기보다는 엄마하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아기 우유 먹이는 것이며 기저귀 갈아주는 것, 심지어 목욕시켜 주는 것까지 내게 맡겼다.

내가 아기에 관해서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아기 낳기 전에 병원에서 실시한 출산 교육을

받은 것이 그나마 큰 도움이 됐다.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면 오목조목한 입으로 아귀아귀 빨아댔다. 젖병이 다 빌 때까지

빨아대는 모습에서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도 배가 고프다는 걸 금세 알아차리고 울어 댔다.

젖꼭지를 물려 주면 언제 울었냐는 듯이 금방 행복해한다.

인형 아기처럼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생명이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다.

요것도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아는 내가 아기 우유 먹이랴, 기저귀 갈아 채우랴, 밤새도록 한잠도 못 자 피곤해하는 걸

보고도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뜻밖의 소리를 해댔다.

엄마 따라 한국에 가겠단다. 깜짝 놀랐다.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나불대는 현아가

제정신인가?

놀랍기도 하고 겁도 났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 앞섰다. 진심인지, 아닌지 현아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눠 봤으면 좋으련만 늘 현아 엄마가 지켜보면서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엄마의 그럴듯한 입발림에 넘어가는 현아가 원망스러웠다. 애처롭고 괴로웠다.

내가 나서서 사정도 해 보고 열심히 일해서 잘살아 보겠다고 약속도 해 봤지만, 그때마다

현아 엄마가 끼어들어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면서 냉정하게 거절했다.

여자의 행복은 결혼에 달린 건데, 현아의 미모에 비해서 사는 게 너무 초라해.

앞으로 발버둥 쳐봤자 얼마나 달라지겠어?

현아 엄마가 입을 씰룩이며 속단해 버리는 바람에 나는 속이 타들어 갔다.

속만 타는 게 아니라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늘도 무심하지, 현아는 어느새 가방을 펼쳐놓고 짐을 꾸렸다.

현아를 처음 만날 때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현아 엄마는 현아를 데리고 한국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말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땅이 꺼지는 것 같았고 종말이 온 줄

알았다. 말릴 힘도 없이 원망과 실망으로 뒤엉켜 아기를 안고 우유병을 물린 채로 바라만

보았다.

자책도, 미련도 없이 핏덩이 아기를 버리고 가면서도 두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마치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맛도 보지 않고 보나 마나 맛이 없을 거라며 돈도 내지 않고

나가버리는 손님처럼…….

남들이 보기에 무책임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현아 또한 자신의 인생을 아기 때문에

희생할 수는 없다고 했다. 현아는 자기가 낳은 아기보다 자신의 행복과 미래가 더

소중하다면서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겼다.

택시에 짐을 싣고 떠나는 현아와 현아 엄마를 창밖으로 내다보면서 미혼모만 아기를

버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자괴감을 느꼈다. 오히려 아빠에게 아기를 맡기고 떠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모성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처음에는 현아가 가버렸다는 게 믿기지 않고 어딘가 여행 갔다가 곧 돌아올 것만 같았다.

아기에게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 주느라고 더 열심히 돌봐 주었다.

그러면서 현아에게 뻔질나게 전화질도 하고, 아기 사진과 문자도 보냈다.

한동안 그 짓을 하다가 전화도 없고 받지도 않는 바람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싫증만 나는 게 아니라 기분 나쁜 의심이 들면서 더는 전화도 안 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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