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역속 소설 ‘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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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날씨가 매우 변덕스럽다. 잔뜩 흐린 날씨에 가끔 천둥, 번개가 치곤 했다.

당장 결단이라도 날 것처럼 구름이 내려앉더니 비가 쏟아지다가 뚝 그치면서

언제 비가 왔느냐는 식으로 맑게 개었다.

결국, 현아와 현아 엄마는 철수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스티브는 자기 아이로 치지도 않았다. 현아 엄마는 여전히 헬리콥터 맘 노릇을 톡톡히 했고,

현아는 엄마에게 치사하리만치 질질 끌려다녔다.

떠나기로 한 날을 며칠 앞두고 나는 현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현아는 남고 엄마 혼자 가시라고 하면 안 될까?

어렵게 현아에게 말을 걸었으나 그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설혹, 헤어지더라도 우리는 전과 같이 친구야.

그녀가 듣든지, 말든지 나는 다짐하듯 현아에게 말했다.

현아와 현아 엄마는 짐을 꾸려놓고 철수를 기다렸다.

철수는 엄마와 외할머니를 보고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여느 아이들 같았으면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겠지만,

철수는 엄마에게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외할머니는 더욱더 싫어했다.

현아가 철수를 오라고 해도 톰슨 할머니와 같이 살겠다며 톰슨 할머니 뒤로 숨었다.

할 수 없이 톰슨 할머니가 철수를 껴안았다가 풀어주면서 엄마에게 돌아가라고

타일러 주어도 철수는 울음을 터트리면서 막무가내로 톰슨 할머니에게 매달렸다.

보다 못한 현아가 나서서 강제로 철수 손목을 끌어당겼다.

아이는 뒤로 나자빠지면서 발버둥 치며 안 가겠다고 큰 소리로 울어댔다.

사탕의 달콤함을 맛본 아이는 손에 쥔 사탕을 놓지 않는 법이다.

귀여움을 받아야 할 나이에 얼마나 사랑에 굶주렸으면 톰슨 할머니 품에서 떨어지기

싫어할까? 농촌의 한가로움과 자유로움을 아이는 온몸으로 알아차린 모양이다.

아토피로 흉측했던 피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다 나았다.

지켜보고만 있던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철수는 다음에 데려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이를 강제로 끌려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현아 엄마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 차라리 잘됐다. 그냥 가자.

그녀의 쉰 듯한 목소리와 눈빛에는 증오와 경멸이 번득였다.

칠 년 전처럼 현아와 현아 엄마는 택시에 짐을 실었다.

현아가 먼저 차에 타고 현아 엄마가 차 속으로 몸을 숨기듯 들어가 문을 닫고 떠났다.

나는 아이를 버리고 사라져 가는 모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도덕한 일에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몹쓸 짓을 보고 난 다음의 착잡하고 뒤숭숭함이란.

무엇인가 다 잃어버린 것처럼 심란해서 일할 기분이 아니다.

아이들과 머데스토의 톰슨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뒷마당에서 아이들과 권총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철수가 내 등 뒤에 권총을 들이대면서 손들라고 고함을 지른다.

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 하고 외쳤다.

철수는 신이 나는지 기분이 좋아서 크게 웃으면서 . . .” 하고 총을 쏘아댔다.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스티브가 철수를 제지했다.

그러면서 항복하고 뒤돌아선 사람을 등 뒤에서 쏘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준다.

너는 총을 가지고 있고 아빠는 빈손이잖아. 함부로 총을 쏘면 안 돼.

총을 가진 네가 아빠를 보살펴 줘야 해.

할머니에게서 자란 스티브는 권총잡이의 신사도를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에 따라서 영혼도 닮아간다는 간단하면서도 사실적 진실을 깨달았다.

철수가 무작정 권총을 쏘아댔기 때문에 권총잡이의 신사도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던

것처럼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우거나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톰슨 어머니가 전화가 왔다면서 받으라고 한다.

공항에서 출발하기 전에 현아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철수를 서울로 데려다 달란다.

 

한 달도 넘게 지났다. 철수가 엄마를 그리워할 것 같을 때 즈음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철수는 고개를 저으며 가기 싫단다. 네 살 먹은 아이에게 무슨 올바른 판단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만, 그래도 한 인격체로서 자기 의견이 있는 건데 이를 무시하고 의지를 꺾어버릴

수는 없었다. 가기 싫다는 철수는 데려갈 수 없으니 나만이라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에서 깨져버린 대화를 장소를 옮겨 서울에서 이야기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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