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행복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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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총 예술 세계에서 장편소설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날.

배달되어온 꽃바구니.

꽃바구니가 일주일이 넘으면서 시든 꽃과 살아남은 꽃이 구분된다.

아직도 살아남아 숨 쉬는 꽃은 추려내서 줄기가 긴 꽃은 맥주 머그잔에 옮겨 담고

줄기가 짧은 꽃은 플라스틱 박스에 물을 담고 꽂아놓았다.

그런대로 꽃의 면모를 유지하면서 버텨간다.

식물이라고 해서 수명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어떻게 가꿔주느냐에 따라서 수명이 달라진다.

 

엄동설한에 꽃보다 귀한 게 있을까?

그보다도 추운 겨울에 녹색 나뭇잎도 꽃이나 매한가지로 신선하다.

꽃이 있음에 방 안이 환하고 향기롭다.

 

나는 한국에 와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슬프다.

동창들과 카톡으로나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슬퍼진다.

과거를 이야기하게 되고 추억 속의 흑백사진을 꺼내 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동생을 만나도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꾸부정한 게 폭삭 늙어 보인다.

갑자기 내가 10년은 더 늙어진 것 같아서 슬프다.

 

미국에서도 친구를 만나지만 한국에서 친구를 만날 때처럼 슬프지 않다.

미국에서 친구를 만나면 먼저 친구가 묵직한 혼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다.

맥도널드에서 친구는 커피를 나는 휘시 버거를 먹으면서 한 시간도 넘게 노닥인다.

나는 글 쓰는 이야기를 하고 친구는 여자 친구와 함께 크루즈에 몸을 싣고 여행 떠날

이야기로 신이 난다. 친구 부인은 수년 전에 저세상으로 갔다.

친구와 미래를 이야기하며 천연색 사진을 그려본다.

 

꽃이 한 바구니에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서 시든 꽃과 싱싱한 꽃이 확연히 드러나듯이

한국에서 만나는 친구와 미국에서 만나는 친구는 구별이 된다.

무엇이 이들을 다르게 하는가?

 

미국에서는 어린아이가 스스로 일어서도록 내버려 두듯이 노인도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스스로 알아서 챙겨 가며 살아야 한다. 자립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나의 누님은 85세인데 스스로 차를 몰고 다닌다.

식료품 가게에도, 교회, 병원에도 간다.

한국에서는 운전을 전혀 하지 못하던 분이었다.

 

한국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가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있디.

이렇게 말하면 무슨 소리냐 하고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탈북민들이 인권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북한에서는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한국에서 묶여 있는 개인의 자유를 예로 들면

전철 내에 노인석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언 듯 보기에 노인을 공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냉정하게 판단하면 노인은 변방으로

비키라는 의미이다. 노인이 개인의 자유에서 배척당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공경받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노인은 전철이 공짜인 것도 문제이다. 공짜로 탄 전철 천대받아도

할 말이 없다. 적어도 반값은 내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한국은 연령차별이 심하다.

공공 서류에 나이를 적시하라는 요구는 나이를 보고 뽑겠다는 의미이다.

사회가 노인은 노인의 나이에 어울리게끔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노인이 젊어지려고 해도 젊어질 수 없는 이유이다.

노인들의 자신감을 막아버리는 요소가 여기저기에 있다.

 

내가 이 나이에 한국예총 예술세계신인문학상에서 장편소설로 당선된 까닭은

내 나이를 잊고 젊게 살기 때문이다.

젊어진다거나 늙어진다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마음을 먹기까지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력 부족을 말하면서 노인을 젊게 만들어 써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길 껏 해야 노인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비, 청소 이따위 일이나 제한해서 내놓는다.

개인 자유를 보장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는 쉽고도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유교적 쇠사슬에 묶여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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