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의 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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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이발소는 가정집 뒷마당에 조그맣게 창고처럼 지어놓고 머리 깎는 집이다.

이발소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영업하지는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뒷마당으로 밀려 나온 이발소이다.

어쨌거나 이발사가 머리를 잘 깎으면 됐지 그까짓 건물이 무슨 대수냐.

집에서 매일 할 일 없이 놀다 보니 이발소 가는 것도 나들이라면 나들이다.

가는 길에 한국 식품점도 들리기 때문에 아내와 함께 움직이는 게 일상이다.

이발사 부인은 남편 자랑이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여자다.

나는 이발사 부인한테서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이번에는 내 아내에게

신이 나서 말해 주는 모양이다.

이발사 부인의 이야기는 이렇다.

자기 남편이 이발을 잘해서 한국에서 이발할 때는 호텔에 불려 다녔다는 둥.

고객 중에는 ‘고원’ 시인도 있었다는 둥. 한국에서 돈을 잘 벌어서 큰 집에서 살았다는

식의 주로 자기 남편 자랑이다.

심지어 남편의 나이며 자신의 나이까지 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시골 촌부의 모습

그대로이다. 하나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남들도 다 내 식구처럼 대하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어떻게 미국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까지 다 털어놓는다.

메인주의 닭 잡는 공장에서 2년 일하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해서 자기가 먼저 와서

영주권 받고, 아이들이면 남편도 불러왔다고 했다.

 

그 집 뒷마당은 잔디를 다 걷어내고 텃밭으로 일궜다.

심은 채소 종류도 많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많이 심은 것은 아니고

조금씩 없는 게 없다. 대파, 실파, 배추, 시금치, 쑥갓, 상추, 고추, 가지, 부추, 하여간에

없는 게 없다.

나는 오늘 그 집 뒷마당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뒷마당에 그릇이란 그릇은 다 내다 놓고 그릇에는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드럼통 반만 한 큰 그릇이 있는가 하면 함지박에 양은 다라이, 바켓츠, 세숫대야, 커다란 냄비

서너 개, 하다못해 양재기까지 꺼내놓고 물을 받아 놓았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부인의 말로는 빗물을 받아 놓은 거란다.

아니 지금 세상에 빗물을 받아 쓰는 집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빗물 받아 쓰는 풍경이 낯설지는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비 오는 날이면 빗물을 받아서 썼으니까.

나의 어머니는 빗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보드랍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엊그제 탈북자들이 떠드는 유튜브를 보았는데 두 여자가 하는 말도 우리네 옛일과 같았다.

북한에서 살 때 장마당에서 몰래 남한 샴푸를 사다가 썼단다.

남한 샴푸가 어찌나 좋은지 안 쓸 수가 없었단다.

남한 샴푸로 머리를 감고 나가면 머리가 바람에 날리면서 반짝반짝 빛났다.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으스대며 걸었다고 한다.

탈북해서 남한에 정착하면서 지금은 당당하게 남한 샴푸를 쓰는데 머리에 윤기가 없는 게

오래전에 북한에서 쓸 때와 영 다르다는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북한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머리를 감아서 머리에 윤기가 있었던 가 보다. 남한에서는

매일 샤워를 해서 머리에 윤기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여자가 맞받아 주었다.

“그게 아니라 북한 양강도 물이 좋아서 그래. 빗물로 머리 감으면 보드랍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거 알지? 물 때문이야.”

 

이발사 부인은 빗물의 효능과 가치를 터득하고 있었다.

‘채소도 물맛을 알아서 수돗물보다는 빗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녀의 눈에는 빗물을 주면 텃밭의 채소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때문에 빗물을 보물처럼 아껴가면서 채소에 주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게 관찰력이다.

이발사 부인은 눈과 관찰력을 더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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