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고갯길(seven hills d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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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한동네에서 산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고도 행복하다.

그동안 다 잊고 살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바쁘게도 만든다.

딸은 아들 하나뿐인데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제 엄마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손주도 다닌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학교 건물은 그대로이지만 선생님들은 모두 바뀌었고

교무실도 다른 건물로 옮겨 앉았다.

그렇지만 주차장이며 학교가 파하면 봉사자들이 나와서 건너가는 길에서 교통 정리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딸이 다니던 때에도 축제가 있어서 온갖 게임도 하고 발표회도 열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바쁜 와중에도 아이를 학교에 실어나르던 추억이 서린 학교다.

 

은퇴한 지금. 나는 손주가 학교 수업을 끝내고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딸네 집에서 손주를 기다리는 일이 나의 업무다.

오후 3시면 손주는 걸어서 집에 온다. 걸어서 오기에는 조금 버거운 거리지만 지 엄마가

애 운동도 시킬 겸 걸어서 오라고 했기 때문에 손주는 힘들어도 걸어서 와야 한다.

걸어오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

손주는 같이 걷는 친구가 있으면 신이 나서 떠들면서 걷느라고 재미있어하지만.

홀로 걷는 건 힘들고 지루해서 싫어한다.

반쯤 걸어오다가 전화해서 빅업해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학교 가는 길로 차를 몰다가 손주 혼자서 걸어오는 걸 보고 차에 태운다.

 

우리 동네에는 일곱 고갯길이라는 좁은 언덕길이 있다.

오래된 길이어서 길은 좁아도 등하교 시간에는 차량이 제법 많다.

한 동네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어서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

도시로부터 산 고개를 하나 넘어야 마을이 있는 지역이 돼서 도시의 한 지역으로

편입하기에는 너무 떨어져 있고, 새 도시로 승격시키기에는 인구가 적고, 경제적 자립도

부족해서 현재로서는 독립된 지역으로 존재하지만, 치안과 소방 같은 업무는 이웃 도시에

의존하는 타운이다. 하지만 행정과 교육은 독립적으로 해 가고 있다.

 

평지가 아닌 산골지역이 돼서 높은 산은 아니지만 야트막한 언덕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중에 주택가를 가로지르는 오래된 길이 있는데 이름하여 일곱 고갯길(seven hills drive)’이다.

길 이름 그대로 야트막한 고개를 일곱 번 넘어간다. 길이 옛길이어서 좁고 인도교도 없다.

하지만 아이들 학교에 바래다주려면 이 길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등하교 시간에는 교통체증이 날 지경이다.

매번 고개를 넘으면 스톱 사인이 있다. 불과 길지도 않은 고개를 넘자마자 스톱해야 하고

다음 고개를 넘자마자 스톱해야 한다.

짧은 거리에 스톱 사인이 연거푸 있어서 짜증이 날만 한 길이다.

예전에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늘 이 길을 다녀봐서 아는데 운전자들이 귀찮기도 하고

아이가 학교에 늦기 때문에 교통법규를 어기고 스톱 사인에서 그냥 지나치는 운전자들이

더러 있다.

교통경찰도 이 꼼수를 알고 미리 숨어 있다가 위반 차량을 적발해서 티켓을 발부한다.

나야 젊었을 때 이미 겪어는 보았지만, 그동안 다 잊고 살다가 요즈음 다시 옛일을 복기한다.

경찰차가 빨간 경고등을 번쩍이면서 앞차를 세웠다.

보나 마나 스톱 사인에 서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늘도 세븐힐을 넘으면서 이번 스톱 사인에는 경찰차가 숨어 있을 터인데 하면서

우측을 살펴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순찰차에 앉아 있는 경찰이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 괜히 통쾌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기대를 어긋나게 해 줘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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