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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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집에서 두 사람이 산지도 오래 됐다.

두 사람만 빼고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바쁜 터라 별일 없는지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다.

오는 사람도 없는 집이라서 남에게 구애받지 않고 우리가 좋은 대로 꾸미고 산다.

페밀리룸 창가를 카페 창가처럼 꾸몄다. 두 사람만 앉는 작은 테이블을 놓았다.

식사는 작은 테이블에서 한다.

카페같은 창가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면 곧바로 텃밭이 보인다.

가지며 방울토마토, 부추에 오이, 호박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사랑스러운 채소들과 늘 눈 맞춤을 즐긴다.

채소를 심어놓고 싹이 트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아는 사람만 아는 쏠쏠한 재미다.

노인이 있는 집안 화초는 다 죽는다고 했다. 할 일없는 노인이 매일 물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집 텃밭의 채소들이야말로 다 죽게 생겼다.

할 일없는 내가 매일 물을 주기 때문이다.

 

탓밭의 채소들도 고달프리라.

주인이라는 작자가 매일 나와서 참견 해 대니 귀찮아할 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에 채소들이 잘 잤나 하고 들여다본다.

흙이 조금만 마른 것 같아도 물이 부족한가 하고 물을 준다.

물을 주면서도 너무 많이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다른 집 텃밭을 보면 채소가 실하게 자랐는데 우리 집 채소는 기지개를 펴지 못하는 게

내가 물을 너무 많이 줘서 그런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다 큰 방울토마토가 맥없이 시들어간다. 속으로 찔끔했다.

빨리 실하게 자라라고 질펀하게 물을 줬더니 물이 많아서 뿌리가 발달하지 못한 모양이다.

물을 주지 말아야겠다. 물을 많이 주면 잘 자랄 줄 알았는데 넘치면 화를 불러온다.

야박하더라도 찔끔 찔끔 줘야겠다.

 

돌이켜 보건대 하늘이 복을 한꺼번에 왕창 주었으면 나도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았을 텐데

그만 찔끔 찔끔 주는 바람에 그저 겨우겨우 살아왔다.

하늘이 복을 찔끔찔끔 주는 까닭은 다 이유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복이 많아서 넘쳐났다면 저 잘나서 얻어진 복인 줄 알고 얼마나 교만하게 나댔겠는가.

하늘에서도 보자 하니 저 사람 인품이면 그에 어울리는 만큼만 줘야겠다고 여겼을 것이다.

찔끔 찔끔 내려진 복이 내게 적당한 복이었고 나를 지금껏 살려낸 복이리라.

나는 살면서 돈 욕심 부리다가 죽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았으며

명예 욕심 부리다가 감옥에 가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하다못해 여자 욕심 부리다가 스스로 목매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온전한 인생을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도 아니다.

무엇이든 찔끔 찔끔 주어진다는 것보다 더 큰 복도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그렇게 내리는 복이 진짜 복이다.

 

텃밭의 채소들도 물을 찔끔 찔끔 줘야 제대로 자라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물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마음은 숨어있는 또 다른 욕심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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