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유령 ‘블루 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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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 예쁘기만 할 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던 시절, 우리는 교회에서 만났다.

구역예배를 위한 모임을 정했는데 멀리 떨어져서 사는 우리가 한 구역으로 묶였다.

알고 보면 인연이란 우연이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해가고, 아이들은 너무 빨리 자라고,

살림에 쫓기면서 시간도 아까워지고, 잊고 살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다 늙은 지금.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노니까 옛일이 생각나서겠지.

아주 오랜만에 만나서 오후 한때를 행복하게 보냈다.

이 집도 딸 둘, 저 집도 딸 둘 우리만 애가 셋이다.

예쁜 아이들로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 애들이 커서 아이를 낳고.

손주가 몇이냐고 묻고 웃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건만 낯설지 않다.

파인 트리 숲속에서 산림욕을 하면서 걸었다.

걸으면서도 밀린 안부를 물으면 돌아오는 건 웃음 한 보따리.

 

소년은 알고 싶다소설이 상을 받으면서 신문에 알려지자 연락이 닿았다.

두어 군데서 축하 저녁이라도 먹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부담스러워서 그랬다.

하지만 하도 오래 못 만났던 인연들은 보고 싶었다.

Hamms Gulch Trail을 서너 시간 걷기로 했다.

걷다가 하프문 베이 모스 비치의 유명한 레스토랑 유령의 집으로 향했다.

 

내가 펴낸 책 샌프란시스코 사람은 이렇게 여행한다에 실린 유령 출현으로 유명한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유령의 집 역시 오래간만에 가보았는데 실내가 변한 것은 없었지만, 손님이 많아졌고

귀신 이야기는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변해갔다.

한국에서 귀신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처럼 변하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데

모스 비치 밀조장유령 이야기는 변혁해갔다.

여러 가지 버전이 재생산되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책에 소개한 버전이 가장 신빙성 있는

이야기 같았다.

이야기가 변하는 까닭은 미국인들은 과학을 좋아해서 귀신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들기 때문이다. CCTV를 설치하고, 식당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적외선으로 탐지하려 드니

귀신이 오다가도 도망가게 생겼다.

 

블루 레이디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레스토랑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모스 비치 레스토랑은 페루 이민자인 프랭크 토레스로부터 시작된다.

1923년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Fell Street에 있는 Waldemar Grill에서 몰래 밀주를 팔았다.

몰래 술을 팔았다는 것은 밀주를 제조해서 팔았다는 이야기이다. 단속반에 걸려서 300달러

벌금을 낸 후, 그는 지금의 모스 비치 레스토랑으로 이사했고 이곳에서 밀주업자들이 모여서

배로 싣고 온 싸구려 캐나다산 위스키 상자를 해변으로 하역한 다음 다시 비싼 짝퉁

위스키로 제조했다.

밤에만 은밀하게 움직이는 비밀스러운 작업이었다. 비밀스러운 작업 뒤에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블루 레이디라고 불리는 유령은 모스 비치 레스토랑을 가장 좋아했다.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원한을 품고 죽은 여인이 블루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는 것은

동일하다.

한 버전에서는 블루 레이디는 레스토랑 피아니스트와 사랑에 빠진 지역 소녀였다고

소개한다.

다른 버전은 피아니스트와 사랑에 빠진 삼각관계 버전이다. 버림받은 남자는 블루 레이디와

피아니스틀 죽였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블루 레이디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화 발전해 나갔는데 그중에서 내 책에 소개한 버전이 오리지널이다.

The Blue Lady가 나타나는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흔한 이야기로는 블루 레이디의 등장에 대한 손님들의 제보다.

식사 도중에 종이 수표가 들어 올려지고, 여자 화장실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 거울에 비친

블루 레이디의 얼굴, 흔들리는 샹들리에, 아무도 없는데 울리는 전화벨, 쾅 닫히는 문,

아이들과 어른들의 목격담 등이 블루 레이디의 존재를 나타낸다.

안개가 낀 날엔 블루 레이디가 비치를 걷는 걸 목격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100년이나 된 모스 비치 레스토랑에 정말 유령이 나타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소문으로 인하여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CBS TV에도 방영되었고 일본 NHK에서 취재 녹화해간 일도 있다.

우리 일행 역시 혹시나 하면서 유령을 기대했다.

유령이 있거나 말거나 레스토랑에 갔으면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지내면 그만이다.

만인을 즐겁게 해 주는 블루 레이디야말로 훌륭한 유령임에는 이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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