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 체리

IMG_1-2-2

올해는 늦게까지 추워서 밤이면 솜이불을 덮고 잔다.

이제 겨우 봄볕 같은 햇살과 따스한 기운이 돌아서 창문을 열었다.

새소리가 요란하다.

일 년 내내 뒷마당이 조용했는데 갑자기 새들이 소란을 피우는 것으로 보아

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창 봄이 익어갈 때면 새들의 노래자랑이 벌어진다.

벌새, 울새 할 것 없이 있는 힘을 다해 목청껏 짖어댄다.

짝을 찾기 위한 애절한 연가이다.

뒷마당 울타리 쪽으로 새빨간 야생 체리가 다닥다닥 열려있었는데 지난 몇 주 사이에

새들이 다 먹어치웠다. 나무 밑쪽에 조금 남아있는데 저것도 얼마 가지 못하리다.

 

뒷마당 감나무에 감꽃이 많이 피었건만 감꽃은 꽃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작으면서도

이파리 색과 같은 녹색이어서 꽃인지 잎인지 구분이 안 된다.

싱싱한 이파리들의 득세에 감꽃은 주눅 들어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다.

꽃은 작아도 열매는 크고 실하다.

원래 꽃이라는 종족은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족속인데 감꽃이 존재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까닭은 꺾이지 않으려는 몸가짐이리라. 감꽃이 장미처럼 예쁘다면 사람들이 꺾어가서 어찌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훌륭한 아들 뒤에 훌륭한 어미가 있듯이 훌륭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닐까?

감 꽃말은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란다.

 

뒷마당의 체리가 거의 다 떨어졌다.

새들이 뒷마당에서 재잘대더라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새들이 뒷마당에서 득실거렸던 이유는 야생 체리 다음에 캘리포니아 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어서 체리 따 먹느라고 들끓었던 모양이다.

체리 나무에 체리가 익기도 전에 새들이 신나게 먹고 있다.

새들은 체리를 쪼아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반은 먹고 반은 떨어트린다.

땅에 보면 덜 익은 체리가 널브러져 있다.

아깝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나는 하나도 먹어보지 못해서 아깝지만, 새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 앙증맞고 보기에 좋다.

이 바람에 고귀한 새들이 들락거리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즐길 게 아니냐.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제비를 볼 수 없다.

제비가 없는 까닭은 제비는 곤충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곤충이 별로 없는 산 능선에는 제비가 없다.

제비는 주로 평평한 늪지대, 곤충이 많은 지역에서 산다.

산 능선인 지역은 열매가 많아서 열매를 먹는 새들이 많다.

동물은 먹이 따라 삶이 형성된다. 나도 먹이 따라 미국에 와서 사는 것과 같다.

 

올해는 흰나비가 유별나게 많다.

앞마당에 나가도 흰나비가 잔디밭 위로 갈팡질팡 날아간다.

뒷마당에 나가봐도 흰나비가 오르락내리락한다. 눈길 돌릴 때마다 흰나비다.

어쩌다가 날아온 호랑나비는 치사하게 얼쩡거리지 않고 도도하게 날아가 버리는데

흰나비는 가지도 않고 총망스럽게 엎치락뒤치락 좋아서 춤을 춘다.

나는 생물체치고 똑바로 날지 못하는 생물체는 나비뿐인 것 같다.

나비는 똑바로 날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속력도 없어서 뒤뚱거리는 것 같다.

나비가 두서없이 갈팡질팡 나는 까닭은 천적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는 기만전술일 것이다.

느릿느릿 나는 주제에 똑바로 난다면 쉽게 잡혀 먹힐 것이다.

그나마 엎치락뒤치락 갈팡질팡 정신없이 움직여야 사냥꾼인 새도 겨냥하기가

혼란스러울 게 아니냐.

미물도 자기방어는 타고나는 것이어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날아가는 나비의 모션 하나하나에도 하늘의 심오한 뜻이

숨어있다니!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