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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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멀리 오클랜드에 있는 크고 오래된 중앙 도서관에 갔다.

중앙 도서관은 다운타운에 있으니 주차가 문제다.

주차비를 지불 하더라도 주차장에 세울까 하다가 혹시 길거리 틈새 파킹이 있을지도 몰라서

일단은 둘러보기로 했다. 길거리 파킹이라고 해서 거저는 아니고 미터기에 돈을 넣어야

하지만 그래도 찾아보기로 하고 몇 블록을 돌아보는데 빈자리가 눈에 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잘못 본 게 아닌가 하고 다시 훑어보았다.

분명히 차를 댈 수 있는 빈자리다. 그것도 커다란 가로수 밑이어서 그늘진 곳으로…….

돈 한 푼 내지 않아도 되는 빈자리가 남아있다니……

나는 길에 떨어진 임자 없는 돈을 발견한 것처럼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생각에

일단 차를 대고 봤다.

이렇게 훌륭한 자리가 내 차례에 오다니 운수 좋은 날이구나 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랬다고 일단은 차에서 내려 길거리에 세워놓은 주차 사인을 읽어보았다.

시에서 세워놓은 조그마한 사인 두 개가 있는데 첫 번째 사인에는 12AM~3AM 주차 금지다.

두 번째 사인에는 목요일 10AM~1PM 길거리 청소 시간이어서 주차 금지라고 쓰여 있다.

오늘 내게 해당하는 조건은 없다. 2시간 주차가 허용되는 자리다.

이거야말로 횡재 중의 횡재다.

차를 잠그고 그래도 혹시 내가 잘못 본건 없나 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거대한 가로수 밑 인도교며 차도 바닥이 온통 하얗다.

보자니 새똥으로 하얀 것이다. 새들이야 나무에 앉아서 밤을 지새우니까 싸는 짓을 해

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먹이를 찾아서 나다니는 게 아니더냐.

나는 기분이 좋아서 랄라 룰라 신나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앞에는 노숙자가 드러누워 있었다. 다행인 것은 돈 달라고 손을 내밀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다.

입구에 흑인 남성이 지키고 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아차 했다. 나는 마스크 쓰는 걸 깜빡했기 때문이다. 다시 주차해 놓은 곳까지 갔다 오려면

멀기도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돌아갈까 말까 하다가 일단을 물어보기로 했다.

마스크 써야만 하나요?”

저기 새 마스크가 놓여있으니 거저 쓰시오.”

테이블 위에 새 마스크 뭉치가 놓여있다.

이건 또 웬 떡이냐. 운수 좋은 날은 무얼 해도 된다니까?

 

코로나로 문을 닫았던 도서관이 다시 열었으니 사람이 많을 줄 알았다.

2층 열람실은 텅 비어있었다. 넓은 홀에 두세 명이 있을 뿐이다.

리셉션 이스트에게 물어서 1908년 샌프란시스코 클로니클 신문을 보겠다고 물어보았다.

미국 유명한 신문은 모두 있었다.

캐비네트 서랍을 여니 1800년부터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신문들이 차곡차곡 들어있다.

나는 1908328일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거를 찾아 읽었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스티븐스 암살 사건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모니터에 뜨는 옛날 기사들을 사진으로 찍고 넘기기를 반복했다.

 

작업을 마쳤으니 기분 좋게 밖으로 나왔다.

도서관 앞에는 더 많은 노숙자가 모여서 알 수 없는 모의 작당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피해 얼른 인도교로 나섰다.

덜레덜레 주차해 놓은 곳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혹시 티켓이 걸려있는 건 아닌가 해서

앞 유리 윈쇼를 살펴보았으나 주차 티켓은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만족한 기분으로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앞 유리에 동전만 한 희끗희끗한 점들이 많이 있다.

이게 뭔가하고 유심히 보았더니 새똥이 아닌가. 차 옆유리를 살펴보았다.

먹물이 흘러내릴 때처럼 흰 새똥들이 잔뜩 묻어있다.

유리창에 다닥다닥 묻은 새똥들만 보아도 짐작이 갔다.

자동차 바디에는 오죽할까?

그때서야 생각났다.

어쩐지 자리가 비어있더라니! 남들은 그 자리에 차를 세우면 비싼 세차비가 든다는 걸 알고

피해 갔던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새삼 생각나게 하는 한나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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