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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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지난달 한국에 나가려다가 PCR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미국 메모리얼 공휴일이 끼어있어서 모두 휴가 갔기 때문에 PCR 검사를 독촉할 곳도,

물어볼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참 어이없게도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업친데 겹친다고 여름방학을 맞으면서 탑승객 수요가 늘어나는 바람에 비행기는 만석이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비행기 삯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속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비행기 타지 말라는 뜻이 숨어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생각을 고쳐먹었더니 속은 편했다.

 

때때로 비행기 대형사고가 터지면 기적같은 일을 소개하는 기사를 읽곤 했다.

탑승객이 다 죽었는데 어떤 사람은 추락한 비행기 타러 공항에 가다가 차동차 빵꾸가

나서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살아났다느니, 추락한 비행기를 탔다가 꼭 가져가야 할

물건을 잊고 탔기에 할 수 없이 내렸더니 목숨을 건졌다느니, 비행기 타는 날짜에

어머니가 아프다고 해서 병간호하느라고 스케줄을 변경했더니 결국 어머니 병이 나를

살렸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어떠면 내게도 그런 뜻 깊은 사연이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런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비행기 놓친 것에 불과 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가격으로 치솟은 비행기 삵을 지불하면서까지 덤벼들 내가 아니다.

그냥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 날인가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그때가 가을이 될지 아니면 겨울이 될지는 몰라도 올라간 가격은 내려오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잊고 지내기를 한 달이 넘었다.

뉴스에서 올해 여행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관계로 여권신청이 폭주했단다.

신청하고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아나운서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내 여권 유효기간을

체크해 보았다. 나는 여권이 두 개다. 하나는 미국 여권 다른 하나는 한국 여권이다.

아이고 맙소사 유효기간이 한 달이나 지났다.

깜짝 놀랐다. 한국 여권도 열어보았다 이 것 역시 휴효기간이 지났다.

두 여권 모두 10년 유효기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이다.

세월 참 빨리도 갔다.

달 반전에 이 여권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면 가는 곳마다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입국이 불허될 수도 있는 케이스다.

내가 비행기를 놓친 숨어있는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여권을 갱신하려고 신청서를 받아오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내 생각보다 세상은 빨리 변해간다. 아니 디지털이라는 게 빨리 변한다는 뜻이다.

여권 사진 찍어주는 곳이 거의 다 사라지고 없다.

대부분 본인이 스스로 찍고 프린트만 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서진 프린트 하는 곳도 찾기 어렵다.

예전에는 셀프 사진 찍는 박스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사라지고 없다.

젊은이들은 집에 사진 프린터가 있어서 집에서 해결하는 세상이라 돈벌이가 되지 않는

사진 프린트 비즈니스는 아무도 하려들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스트코에서 사진 프린트를 했었는데 그곳도 사진 프린트 섹션은

걷어치웠다. 페덱스에서도 월마트에서도 더는 안 한다.

옛날에는 포토샵이라는 게 있어서 여행 다녀오면 으레껏 포토샵에 찍어온 필름을 맡기고

현상과 인화를 부탁하고 기다렸다.

2주 후에 찾아온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되새겨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이젠 그런 거 다

사라졌다.

휴대 전화 속에 넣어두고 보다가 싫증나면 지워버리는 디지털 시대다.

 

온종일 여권사진 만드느라고 시간만 허비했다.

겨우 여권사진 찍는 UPS숍 한 곳을 찾아내어 한숨 돌렸다.

신청서 작성에도 변화가 많다.

검정색 잉크만 사용하라느니, 안경 벗고 찍은 사진만 유효하다느니,

그 외에도 주의사항이 많다.

하루하루 사는 게 뒷걸음질 치면서 사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처럼 세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살아본 적이 없다.

죽을 때가 다 됐다는 신호를 이런 식으로 보내주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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