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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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른다. 같은 생김새가 갖는 힘을.

한국 사람들은 같은 생김새 틈바구니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람은 다 그런 줄만 알았다.

머리는 검고, 눈동자는 어두운 갈색에 코가 적당히 작고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키가 고마고마한 게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살았다.

오죽하면 살색, 피부색이라는 단어가 있었겠는가?

사실 지금도 나는 나의 피부색이 무슨 색인지 모른다.

미국에서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다 보면 피부색을 적으라는 난이 있다.

우리는 우리를 황인종이라고 알고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황인종은 피부색이 황갈색인 인종이라고 나와 있다.

황갈색은 또 어떤 색인가? 사전은 누른빛을 띤 갈색이라고 말한다.

영어로 번역하면 누른색 = yellow, 갈색 = brown

내 피부색이 황인종 = 황갈색 = 누른빛을 띤 갈색 = yellowish brown?

글쎄요!

황갈색 피부의 한국인은 햇볕에 그을린 사람들의 피부색 갈색을 말한다. 도시인은 아니다.

나는 피부색 난에 orientate라고 적었다.

동양인이라고 적다가 그것도 석연치 않아서 아예 Korean이라고 적은 일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세상엔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피부색이 아니지 않은가?

고민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여기서 나의 견해를 말하자면 백인이라고 해서 피부가 흰색은 아니다.

하지만 갓난아기나 어른 여자도 속살은 흰색이 맞다.

흑인이라고 해서 피부가 까맣지는 않다.

흑인들도 black이라고 적는 것을 싫어한다. dark brown이라고 적는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red skin이라고 하는데 세상에 빨간 피부가 어디 있는가?

아무튼 지금은 다양한 피부색을 지민 인종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다.

 

말이 좋아서 어울려 산다지만 실은 닮은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게 맞는 말이다.

어쩌다가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을 볼라치면 선 듯 마음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온갖 다른 생김새 사람들로 득실거린다.

 

때로는 딸이 개 쉐이를 우리 집에 맡겨놓고 외출할 때가 있다.

덩치 큰 개가 집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꼴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봐달라니

봐줄 수밖에 없다. ’쉐이는 사람처럼 떡하니 소파에 올라가서 앉아있거나 누워있다.

소파는 늘 제 차지이다. 내가 TV를 보고 있으면 개도 나와 함께 TV를 본다.

한번은 TV에 개들이 등장했다. 여러 마리 개들이 벌판을 달려갔다.

소파에 누워있던 쉐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TV 앞으로 다가가면서 멍멍하고 짖는다.

아예 TV 앞에 앉아서 자기 동료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같이 놀았으면 하는 눈치다.

같은 생김새가 갖는 위대한 힘을 보는 것 같아서 혼자 웃었다.

 

인종이 다양한 미국에서 살다 보면 같은 생김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부부는 닮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같이 오래 살다 보니 닮기도 했겠지만 실은 처음 파트너를 선택할 때 자기 눈에 익은

모습이 편해서 결정 내리는 수가 많다.

사람은 늘 거울로 자신을 보면서 살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얼굴 생김새에 끌리게

되어 있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우리와 생김새가 같은 사람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불리한 면이 있다.

아시아인들이 차별받는 이유도 첫 번째는 숫자 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같은 생김새의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다면 감히 차별하겠는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당하는 동영상을 볼 때마다 같은 생김새라는 이유로

내가 분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른다.

같은 생김새끼리 어울려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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