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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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창문을 통해 텃밭을 내다보면 흐뭇하다.

더디기는 해도 가지가 달렸다. 오이도 여러 개 따 먹었는데 앞으로도 따 먹을 만한

오이가 줄줄이 차례를 기다린다.

어제 호박 세 개를 따냈다. 내일 두 개 따면 그다음엔 뜸할 것이다.

토마토도 달렸다. 방울토마토가 아직은 파랗지만, 곧 많이 달렸다.

나는 호박, 오이, 가지, 토마토를 따면서 내 자신 야박하다는 마음이 든다.

각각 식물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종자를 많이 번식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 겨우

익어갈 만하면 내가 싹둑 따버리니 헛수고만 한 게 된다.

다시 새롭게 시작해서 열심히 종자 만들기에 전념한다. 열매를 따면서도 미안한 이유이다.

그런가 하면 식물이라고 해서 바보가 아니다.

내 딴에는 매일 들춰보고 어디에 딸만 한 과실이 있는지 눈여겨보다가 어김없이 따버리는데도

한참 지나고 나서 보면 잎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뒷면에 늙어가는 호박을 보게 된다.

호박만 그러는 게 아니라 가지도 그렇고 하다못해 빨간 토마토도 줄기 깊숙한 곳에서 빨갛게

다 익은 토마토를 발견하곤 한다. 숨어서일망정 하나라도 씨를 남기겠다는 심산이다.

 

나는 물밖에 주는 게 없는데 풍성한 열매를 돌려주다니 고맙기만 하다.

보배 같은 농작물들이 커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이런 뿌듯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작은 행복을 대신할까?

 

아침에 한 번 뒷마당에 나가 하나하나 살펴본다.

호박꽃이 몇이나 피었는지 살펴보고 암꽃을 챙겨준다.

꿀벌이 귀해서 일일이 사람 손으로 접을 붙여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호박이며 오이 넝쿨손이 허공에다 손을 뻗고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댄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디를 잡아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해 괴로워한다.

넝쿨손이 잡고 늘어질 만한 줄에다가 넝쿨손을 걸어준다.

넝쿨손도 지능이 있어서 한 번 잡은 줄은 절대 놓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도 붙들고 늘어지는 넝쿨손의 아귀가 마치 힘센 게 발처럼 물면 놓지 않는다.

가냘픈 식물일지언정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점심때 다시 뒷마당에 나가 한 바퀴 돌아본다.

호박이며 오이 잎이 까불어지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목이 마른다는 호소다.

물을 골고루 준다. 하지만 토마토에는 물을 듬뿍 준다. 토마토는 물을 많이 먹는 식물이다.

오이꽃은 가지꽃만 한 크기에 노란색이다. 노란색 중에서도 연한 노란색이다.

호박꽃의 노란색은 짙은 노란색으로 늠름하고 씩씩해 보여서 어찌 보면 당당하다.

하지만 오이꽃은 꽃의 크기도 작지만 연한 노란색으로 여리 여린 게 만지면 곧 떨어질

것 같다.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을 유도해 내는 힘이 있다.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행복은 마치 커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행복과 같다.

작지만 이런 행복을 나 혼자서만 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저녁 먹고 뒷마당에 나가 텃밭을 챙긴다.

굵직한 오이도 두세 개 따고 호박도 더 커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조금 작다 싶을 때

두어 개 딴다. 가지는 많이 달렸다. 살이 통통하게 찐 녀석으로 듬뿍 땄다.

열매를 따는 행복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

마치 상 받는 기분이어서 넝쿨과 줄기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는다.

밭일을 하다 보면 모든 초점이 농사에 맞춰져 있다.

일주일씩 날이 흐리면 왜 해가 나지 않느냐고 날씨 타령을 한다.

TV에서 원예 프로그램을 보여주면 열심히 지켜본다.

밖에 나갔다가도 맥없이 종묘상인지 묘목상에 들러서 지금 철에는 어떤 식물을 기르나

살펴본다.

호박인지 오이인지 아니면 가지인지가 실은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텃밭에서 군상들이 지지고 볶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다가 열매를 맺고 겨우 매단

열매를 잃고 갈등과 연민의 세계가 소설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 창작열을 걷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점화시키는 것은 기억인가 현실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아니면 둘이 만나 서로 간섭하고 갈등하고 마찰할 때일 것이다.

마치 텃밭의 치열한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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