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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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대표작 <키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카피로 나도는 그림.

 

망막 전막전문의 진단을 받으러 가는 날이 수요일 오전 930분으로 예약되어있었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준비해서 허겁지겁하는 일 없이 늦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월요일 오후에 전화가 와서 수요일 예약을 앞당겨 내일 화요일은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나야 할 일 없이 노는 노인인데 아무 날이면 어떠랴 싶어서 그러라고 했다.

화요일 오전 930분으로 변경해 주었다. 제시간에 맞춰서 갔다.

 

약속했던 의사가 수술하러 갔다면서 다른 의사를 찾느라고 열심히 검색하더니

빈자리를 찾은 모양이다. 진료표를 떼주면서 3층으로 올라가란다.

3층에 올라가서 진료표를 보여줬더니 2층에서 시력검사부터 하고 오란다.

지난주에 다 받았는데 또? 그게 아니라 다른 검사란다.

2층으로 내려가서 기다렸다. 젊은 간호사가 쪼르르 다가오더니 나를 데리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앞에 보이는 선이 직선이냐 곡선이냐 하는 검사만 하고 다시 3층으로 가란다.

신중치 못하게 환자를 이리저리 헛걸음 질시키는 때부터 알아봤다.

 

305실 간호사 역시 지난주처럼 눈에 산동제를 넣고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약을 꺼내 들고 달려들었다. 나는 잠깐 저지하고 지난번 경험을 말해주려고 몇 마디

하려는데 간호사는 뭐가 그리 급한지 내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행동이 앞섰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면서 시간 없으니 빨리 끝내야 한다는 식이다.

하는 수 없이 또 당했다. 이제부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대기실 분위기를 관찰하는 일밖엔 없었다.

대기실은 여유라고는 없이 좁은 편이었고 의자는 시외버스 대합실처럼 줄을 지어

앉게 되어있다. 공간은 좁고 사람은 많아서 저 사람이 숨 쉬고 난 공기를 내가 마시는 것

같아서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젊은 간호사들이 무엇이 그리 바쁜지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매사 빨리 빨리라는 말이 어울린다.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주변을 살펴보면서 벽에 붙어있는 광고란 광고는 모두 읽어보았다.

자기 PR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자.

<새빛안과병원이 대학병원보다 좋은 세 가지 이유.

대학병원 포함 경기도에서 1

첫째 스케일이 다르다.- 명문대학병원 교수 출신 중심 의료진 20

둘째 실력이 다르다.- 수술 환자 15, 600, 외래환자 179,499

백내장 수술 연 4,000건 이상

망막 수술 연 2,000건 이상

셋째 서비스가 다르다.- 중복 안질환 원스톱 토탈케어. 내과/마취통증의학과 협진>

대단한 안과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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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을 둘러보던 중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딱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림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자세히 보니 유화다. 그림 밑에 새겨진 동판을 보았다.

아뿔싸! 그 유명한 키스를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가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이 귀한 그림이 진품인가 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진품 같아 보였다.

이 그림을 가격으로 치면 엄청날 텐데…….

보안도 없이 허술하게 대기실 벽에 걸어놓았다고?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화가로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멀리 오스트리아까지 가야

하는 건데 일산 안과 병원에서 만나다니. 이게 웬 횡재냐.

오늘 아침 안과에 왔다가 가는 시간은 절대 낭비가 아니다. 본전은 다 뽑고도 남았다.

 

진료받고 531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진료받는 내내 간호사가 옆에서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의사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 까다로운 간호사가 따라 나오더니 내게 보충 설명을

해 준다. 보충 설명이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들어갈 수술 경비를 알려주는 거였다.

명함만 한 종이를 건네주면서 백내장 수술비가 양쪽 눈 다 하면 27만 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그 명함만 한 종이에 써 달라고 했다.

동공에 산동제를 넣었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글씨는 읽을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물이 제대로 보인다.

나는 작은 명함만 한 종이를 꺼내 들고 뭐라고 쓰여있는지 자세히 보았다.

간호사가 한 말을 내가 잘못 들었다. 백내장 수술이 27만 원이 아니라 67만 원이다.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알기로는 망막 전막 수술을 하면서 백내장 수술도 함께 한다고 했는데,

더군다나 하루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는데,

치료비는 오로지 백내장 수술비만 적혀 있다. 의문이 들었다.

나처럼 인지 능력이 떨어진 노인은 67만 원이라는 금액만 보고 덜레덜레 수술받으러

갔다가는 낭패를 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후에 다시 안과 병원으로 향했다.

3층에 올라갔는데 오전에 복작대던 환자는 다 어디로 갔는지 없고 대기실이 텅 비어있다.

05실 문 앞에서 간호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잡아 세웠다.

간호사는 명함만 한 종이 뒷면에다가 망막 전막 수술 한쪽에 80~90만 원이라고 적는다.

그러면 백내장 수술과 망막 점막 수술을 합치면 얼마냐고 따져 물었다.

간호사는 마치 공부 못하는 아이를 가르칠 때처럼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2백 잡으면

될 거예요하고는 가버렸다.

 

가만있자, 2백만 원이 아니다. 병원에 하루 입원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입원료를 살펴보니 1인실, 2~3인실, 4인실이 있다. 식대도 따로 받는다.

이럭저럭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더군다나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얼마나 받아낼까?

연간 수천 명씩 수술한다면서 왜 예상되는 경비를 투명하게 말해주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돈벌이가 되는 수술 환자를 유인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자기 PR에서 보았듯이 일류 안과 병원이 환자 중심이 아니라 비지니스 중심은 아닌가?

어떠면 3층 대기실 벽에 걸려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도 진품과 똑같지만,

진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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