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층 할머니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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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이 사는 노인 아파트 아래층에 살던 한국인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팔팔하던 할머니였다.

독거노인이어서 병원에 갈 때면 누님이 차에 태워주기도 하고 병원에서 통역사 역할도

해 주던 할머니였다.

 

사람의 마음에는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늘 양심과의 싸움 속에서 살아간다.

양심이란 원숭이 낯짝 같아서 조석으로 변한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기도 하고 참된 나와

거짓된 나 사이에서 갈등도 한다.

양심이 너무 연하면 테레사 수녀와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양심이 너무 무디면 철면피가 된다.

양심의 균형을 잘 맞추면서 사는 게 중요한데 균형을 맞추는 기본적 능력은 어려서

집안 어른들을 보면서 배우게 된다.

성인이 된 후에는 어울려 사는 사람들로부터 물들기도 하고 종교나 학문을 통해서

터득하고 정화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곱게 늙기를 바라는 줄 알았는데 아닌 사람도 있다.

죽는 순간까지 거짓말하다가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으면서도 욕심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내가 젊었을 때 현대문학에서 단편을 읽었는데 작가나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가난한 동네에서 사는데 시어머니가 운명하면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한 번만 끼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옆집에 가서 다이아반지를

빌려다가 시어머니 손가락에 끼어드렸다. 시어머니는 반지를 다시 빼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서 받아 든 다이아반지를 입에 물더니 꿀꺽 삼켜버렸다.

하늘나라로 가져가겠다는 심보였다. 며느리는 당황했다.

빌려온 다이아반지를 어쩌겠는가. 죽은 시어머니 배를 가를 수도 없고.

결국 화장하기로 했다. 화장한 재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으려 했으나 뜨거운 열기에 반지는

다 녹아 없어졌고 다이아몬드는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누님 아파트 아래층에서 살던 할머니 역시 살아온 삶이 험난했던지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았다.

하다못해 의사의 말까지 믿으려 들지 않았다. 누님이 통역해주고 나면 의사보다 본인이 더

많이 아는 척했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

결국 투석으로 들어가서 누님이 병원에 차로 태워다 주고 태워 오곤 했다.

그러기를 몇 달. 드디어 뇌졸중이 왔다.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머니를

병문안 다녀온 누님은 참으로 비참해 보이더라고 했다.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는데 말도 못 하고 눈에서 눈물을 흘리더란다.

뇌졸중은 연거푸 오기 마련이다. 다음 날 갑자기 죽었다.

친척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누구 하나 시신을 걷으러 들지 않았다.

누님이 병원에 가서 병원 관계자에게 갈아입힐 옷이라도 한 벌 가져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병원 측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냥 행려병자 시체와 함께 무더기로

사라진다는 것 같았다.

 

누님은 그만 충격을 금치 못했다. 옷도 못 입고 가다니!

할머니가 죽은 다음 LA에서 사촌 동생인가 하는 여자가 와서 아파트 방을 비웠다.

한국에서 아들인가 하는 남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혹시 엄마가 남겨놓은 돈이라도 있나 해서…….

 

누님은 며칠 동안 잠도 자지 못했다. 불안하고 겁도 났다.

누님은 궁리 끝에 장례 준비도 해놓고 보험도 들겠다고 했다.

86세이지만 자동차도 쌩쌩 몰고 다니는 누님이 갑자기 죽을 리도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은 작심하고 같이 가자고 했다.

할 수 없이 인터넷을 들춰보았다. 우리 동네에 장례식장이 여섯 군데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중의 한 곳은 장례식장과 화장장을 겸하고 있었다.

 

미국은 화장장이 시내 중심가에 있는가 하면 상업지역에도 있다.

나는 몇십 년을 장례식장 앞을 지나다니면서 저 장례식장이 화장장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고 봤더니 화장장도 일종의 비즈니스이고 비즈니스가 잘될 것 같으면 화장장을 여는

것이다.

보통 작은 도시에 화장장이 하나 정도 있고 장례식장은 여러 개가 있다.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하려면 화장장이 있는 곳에 위탁한다.

 

누님은 화장으로 하겠다고 해서 가까운 동네 장례식장에 가보았다.

우리가 오늘 들른 장례식장 겸 화장장은 시내에 있는 단층 건물이다.

지름이 30cm 정도의 굴뚝 두 개가 지붕 위로 조금 높게 솟아있을 뿐 여느 건물과 다를

게 없다. 굴뚝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직원과 함께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한 시간도 넘게 장례 준비에서 화장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새로운 정보를 얻어들었다.

 

화장하고 남은 재를 항아리에 담아 납골당에 모실 것이냐.

아니면 집에 가져다가 집 어느 곳에 모셔둘 것이냐.

아니면 배를 타고 연안에서 3마일 밖에 나가 바다에 뿌릴 것이냐.

아니면 소형 비행기로 태평양 바다에 나가 하늘에 뿌릴 것이냐 하는 선택도 해야 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으면 시신을 모셔오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별도로 내야 한다고 했다.

정상적인 근무시간이 아닌 밤이나 주말에 죽으면 특별히 동원된 직원들 별도 수당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정해진 규정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별도로 가격을 먹였다.

 

관도 종류가 많아서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관 없이 화장할 것이냐?

화장하는 데 쓰이는 관이 따로 있는데 시신이 누워있는 관 체로 화장할 것이냐?

관 체로 화장할 경우 관의 종류도 가격별로 다양했다.

멋지고 훌륭한 관에 누웠다가 화장할 때는 훌륭한 관은 그냥 놔두고 시신만 화장할 수도

있다. 아무튼 선택은 끝없이 이어졌다.

 

장례식장에 며칠간 묶으면서 하객을 맞이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있었다.

누님은 간단하게 고별 예배를 보고 곧바로 화장하기로 했다.

고별 예배를 보는 동안 관 뚜껑을 열어놓고 하객들에게 보여줄 것이냐

아니면 관 뚜껑을 닫아놓을 것이냐도 선택해야 했다.

누님은 관 뚜껑을 열어놓고 교인들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관 뚜껑을 열어 놓을 경우 관 위에 올려놓는 장식용 꽃도 선택해야 한다.

시신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방부제 처리도 해야 하고 곱게 얼굴 화장도 해야 한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선택에 따라서 가격이 부과되었다.

 

화장한 후에 유골은 경비행기에 싣고 멀리 태평양 바다에 나가 하늘에 뿌리기로 했다.

하늘에 뿌린다고 재가 하늘로 날아갈 리는 없겠으나 그래도 하늘나라로 가는 것 같았다.

 

사후 처리까지 다 해 준다고 했다.

사망 신고도 해 주고, 운전면허도 중지시켜 주고, 사회보장국에 신고며 은행 업무

종료까지 산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권한을 포기시켜 주는 대행 업무다.

알고 봤더니 산다는 게 거저 가 아니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여기저기 등록하고 알게 모르게 얽매여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동안 우리가 무감각하게 대했던 사회 혜택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다.

 

조촐하지만 짭짤하게 선택했는데 7천 달러가 조금 넘었다.

보험금을 지불하고 나면 앞으로 언제 죽어도 계약한 대로 장례는 치러진다고 했다.

10년 후에 죽는다고 해도 계약대로 이행한단다.

 

겁먹은 누님은 서둘러서 장례 보험에 가입했다.

곁에 있기만 해도 힘이 되는 누님이 당연한 것처럼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착각일지 몰라도 설마 그런 일이하는 반신반의의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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