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잠실 롯데월드 13층 삼우정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 앉았다.
우리란 나와 내 처와 이종사촌 누님이다.
이종사촌 누님은 얼굴만 젊어 보이는 게 아니라 자세도 그렇고 걸음걸이도 나보다
힘차게 걷는다. 인지능력 속도도 나보다 빨리 돌아간다.
나는 이종사촌 누님보다 10년도 더 젊지만, 누님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세상 물정도 나보다 더 빠꿉히 알고 있다.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연예계에, 의료 상황도 모르는 게 없다.
나는 이종사촌 누님을 만날 때마다 혀를 내두른다.
기억력은 얼마나 또렸한지 나는 누님에게 내가 잘 모르는 친척 이야기를 묻곤 한다.
나보다 10년도 넘게 먼저 살았으니 누님은 집안 대소사에 관해서 아는 게 많다.
나는 누님을 보면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묻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어느 정도는 굼뜨거나 아물거리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다. 나 같은 건 댈 게 못 된다.
내가 어릴 때 일을 이야기하면 누님이 자초지종을 고쳐준다.
6.25 전쟁이 나던 날, 우리 집은 춘천 조양동 골목에 있는 적산가옥이었고 이종사촌 누님은
우리 집에서 몇 집 떨어진 외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이종사촌 누님은 쌍둥이에다가 여동생이 하나 있어서 세 자매다.
오늘 만난 누님은 세 자매 중에서 가장 몸이 약해서 맨날 골골하면서 어디서나 자리에
누워야 했던 누님이다.
건강하던 동생들은 일찌감치 죽고 비리비리하던 누님만 늙어가면서 팔팔해진다.
부모가 삼척에서 개업의를 했기 때문에 딸들은 외할머니 집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우리 집이나 외할머니 집이나 붙어있다시피 해서 함께 살다가 피난도 같이 나갔다.
지금은 세상이 개벽하면서 온국민이 서울에서 산다.
이종사촌 누님은 한 달에 한 번씩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다고 했다.
이종사촌 누님 동창 중에는 나의 외사촌 누님도 있다. 그러니까 친척이지만 동창이다.
이종사촌 누님은 고등학교 시절을 말할 때면 외사촌 누님 이야기 먼저 꺼낸다.
외사촌 누님은 학창 시절 6년 내내 1등을 놓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를 잘했으니 인기도 좋았지. 그러면 뭘 하니. 지금은 어릿어릿하고 걷지도 못해.
사회복지사의 도움 없이는 꼼짝도 못 한단다.”
나만 빠릿빠릿하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다.
아닌 게 아니라 자랑도 할 만하다. 십 년도 더 젊은 나보다 또렷하니 어쩌겠는가?
이종사촌 누님은 동창들이 만나면 죽는 이야기만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91세 노인들이 모였으니 죽는 이야기밖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앞날이라든가, 희망적인 이야기는 없다며 웃는다.
누님은 끼고 사는 질병도 없다.
골다공증으로 고생했는데 지금은 서울대 병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주사 맞고 거뜬하다고
했다. 나는 주사에 관심이 없어서 약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나 골다공증이 있다고
해서 맞는 주사는 아니라고 했다.
골다공증 검사를 철저히 해서 맞아야 할 사람에게만 놔주는데, 어떤 사람은 6개월에
한 번씩 맞는 사람도 있고, 누님은 한 달에 한 번씩 맞는단다.
가격이 비싸다면서 건강보험 커버도 없이 한 번 맞는데 260,000원이란다.
참 별난 주사가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건강한 것 같다가도 노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니, 이번 만남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해서 웃었다.
죽기 전에 같이 사진이나 찍자고해서 찍기는 찍었지만 별로 실감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5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사진 찍었으니까.
누님은 앞으로 5년만 더 살다가 갑자기 죽었으면 좋겠단다.
죽으면 화장해서 아무 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면서 시댁인 양평에 마련한 묫자리를
없애려고 했더니 딸이 왜 죽은 다음 일까지 참견하려느냐면서
“엄마 죽은 다음에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참견하지 말라”더라며 행복해했다.
세상에 올 때 준비 없이 왔듯이 죽는 사람도 준비 없이 그냥 죽으면 되는 거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주름살도 없는 게 보톡스를 맞았겠지?”
“그럼. 그냥 어떻게 젊어져,”
나도 그렇지만, 젊어지려고 애쓰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나이에 어울리게 사는 게 가장 잘 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