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다 보니 뻔찔 안과에 드나든다.
내집 드나들듯 드나들다 보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훤하다.
카이져 병원에 안과가 있기에 망정이지 만일 개인 안과에 드나들었다면 청구서를
어찌 감당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올해 들어서만 여러 번 다녀왔다. 백내장 수술하느라고 검사받으랴, 수술하랴,
수술 결과 확인하랴 다섯 여섯 번은 더 드나들었다.
안경원까지 합치면 열 번도 넘는다.
내가 안과에 예약하고 가는 게 아니라 안과에서 불러댄다.
어제도 눈 검사 하겠다고 오라고 해서 갔다. 시력검사를 이방 저방 드나들면서
자동굴절검사기에 턱과 이마를 대고 고정하게 해 놓고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앞의 글자를 읽어보라고 하는가 하면 어느 글자가 더 진한지 묻기도 한다.
그리고 검안 결과를 안경원에 넘겼다.
노인에게 노안이 온 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노안이 왔다는 것은 젊었을 때처럼 초점을 자유자재로 맞추는 기능이 저하됐다는 의미다.
아닌 게 아니라 고개를 돌려 사물을 볼 때 즉시 초점을 맞추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잠시
판단력을 더듬는 경험을 하곤 한다. 늙으면 빠릿빠릿하지 못한 게 다 이래서다.
동작도 굼뜨고, 판단력도 느리고, 이해력도 더디니 눈의 조절 능력인들 온전하겠는가.
나이가 들어서 조절력이 많이 떨어졌으니 먼 곳을 보는 시력은 비교적 늦게까지 유지가
되지만 글 읽는 시력이 저하된 게 사실이다.
조절력이 저하된 만큼 도수를 더해서 독서용 돋보기를 사용해야 글씨가 잘 보이고 눈도
덜 피로하게 된다.
하지만 내 경우 양쪽 눈의 시력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시력 정도가 낮은 눈이 잘 보일 수
있을 만큼 만 조절을 함으로써 시력 정도가 높은 눈의 경우 항상 선명한 상이 맺히지 않게
된다
오늘은 카이져 병원 안경원에서 안경을 맞췄다.
안경알 중앙에 금을 긋고 윗부분은 일상 시력 렌즈, 아랫부분은 돋보기를 넣어주겠단다.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 건데 이중 렌즈를 끼면 층계 내려갈 때 어질거려서 넘어질 뻔했다.
노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넘어지는 거다. 골절상이라도 입으면 그것은 생명과 직결된다.
나는 책 읽는 렌즈 하나면 된다고 했다.
돋보기 하나로는 안 된단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도로 교통국에서 운전면허 시험 칠 때 운전용 안경이 없으면 면허시험
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단다.
하는 수 없이 안경 2개를 하기로 했다.
하나도 할까 말까 했는데 2개씩이나 하라니 돈 쓰게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테도 가장 저렴한 거로 골랐다.
나는 주머니 사정만 생각하는데 안경원 직원은 좋은 것으로 고르란다.
명품 구찌도 있는데 안경테만 300달러란다.
나는 가외 비용이 안 붙는 기본안경테에서 골랐다.
안경 2개를 맞추고 2주 후에 택배로 보내준단다.
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내 건강보험에서 390달러까지 물어주는데
나는 고작 290달러만 사용했으니 내 주머니에서 나갈 금액은 없단다.
곧바로 안경원 직원의 말을 들을걸.
좀 더 비싼 안경테로 고를 걸 하는 후회가 살짝 일었다.
어쩐지 안경원 직원이 자꾸 비싼 안경테를 추천하더라니.
안경이 내게는 기능만 좋으면 그만이지 안경으로 모양내는 나이는 지났다.
안경을 쓰고 나다닐 것도 아니고 보아줄 사람도 없는데 일만 잘하면 그만이다.
하나도 아닌 두 개씩이나 만들어 주겠다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늙으면 꼭 다녀와야 할 곳은 병원밖에 없다.
부지런히 여러 번 드나들었어도 돈 내라는 소리가 없으니 그것 하나만큼은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병원에 자주 가는 게 좋아서는 아니다.
병원에 안 가면 더 좋겠지만, 요새는 늙은이를 보호해 주는 과학이 발달해서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도와주니 병원에 안 갈 수가 없다.
독감 예방주사도 맞으라는 걸 9월 초는 너무 이른 것 같아서 다음에 맞겠다고 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 건지, 내가 오래 살아서 그런 건지,
이런저런 혜택을 너무 많이 누리는 것 같다.
이것을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