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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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미국 뉴욕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뉴스가 세간에 화제가 됐었다.

최근에는 세계 유명 관광지에서 빈대를 경험했다는 뉴스가 종종 눈에 띄더니

프랑스 파리에 빈대가 만연하다는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드디어 서울에서도 빈대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각 자치구에 따르면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실제로 빈대가 발견돼 방역 등 조치에 나선

경우가 8건이다.

한 방역업체 관계자는 “서울, 경기 인천 가릴 것 없이 수도권 곳곳에서 빈대 퇴치 작업

문의가 쇄도하는 중”이라고 했다.

 

빈대는 인간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 해충이다.

납작하며, 길이는 1∼6mm. 인간에게 감염병을 옮기지 않지만, 물릴 경우 붉은 반점과

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매트리스나 카펫 등 섬유 제품뿐 아니라 서랍과 찬장 틈, 전기 콘센트 안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좁은 틈에 숨어 생활한다.

 

내가 실제로 빈대를 처음 경험한 게 1950년 6.25 때다.

강원도 시골로 피난 갔는데 비어 있던 초가집 방에 기거하게 되었다.

낮에는 몰랐는데 밤에 자려고 했더니 빈대가 득실거렸다.

빈대도 오랫동안 굶어서 그랬는지 사생결단으로 덤벼들었다.

온 식구가 등잔불을 켜놓고 빈대사냥으로 밤을 지새웠다.

빈대들도 약삭빨라서 깜깜할 때는 나와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불을 켜면 전속력으로

달아난다. 얼마나 빨리 기어가는지 잽싸게 잡지 않으면 다 놓친다.

 

대구에 피난 갔다가 서울 삼선교쪽 돈암동 외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외할머니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빈대가 득실거렸다. 당시 서울에서 빈대 없는 집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선 시대에는 빈대 때문에 어떻게 살았을까?

 

현대 그룹 정주영 전 회장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인천에서 막노동할 때 노동자 막사에 빈대가 들끓었다. 빈대에게 물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맨날 빈대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정주영 회장이 누구냐? 궁리의 제왕이 아니더냐.

대야에 물을 담아서 침대 4 다리를 대야에 담가 놓았다. 제아무리 날쌘 빈대라고 해도

물을 건너 침대에 기어오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날 밤 편안히 잘 줄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빈대가 천장으로 기어 올라가 천장에서

침대로 떨어지더란다. 빈대도 머리를 쓴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많던 빈대가 어떻게 사라졌나? 이유는 간단했다.

일반 가정집 연료가 장작에서 잠시 조개탄으로 바뀌었다가 구멍탄이 탄생했다.

구멍탄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집 집마다 구멍탄 아궁이로 바꿨다.

구멍탄은 24시간 계속해서 탄다. 구멍탄이 등장하면서 연탄가스로 사망하는 사람이 발생했다.

연탄가스에 사람만 사망하는 게 아니라 빈대도 배겨나지 못했다.

연탄가스는 집 안 구석구석 안 쑤시고 다니는 데가 없으니, 빈대가 숨을 곳이 없다.

정부가 잘해서 빈대 박멸을 한 게 아니라 구멍탄이 빈대를 박멸한 것이다.

 

이렇게 무서운 빈대가 다시 출몰했다니. 큰일 났다는 말도 괜한 말이 아니다.

방역 전문가들은 빈대를 박멸하기 어려운 이유로 질긴 생명력을 꼽았다.

빈대는 인간이나 동물의 피를 먹지 않고도 최대 6개월 가까이 생존할 수 있다 보니 직접

물리거나 눈으로 발견하기 전까지는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피를 먹기 때문에 바퀴벌레처럼 다른 먹이로 유인해 퇴치하기도 힘들다.

야간 활동성 곤충이라 주로 밤이나 이른 새벽 시간대에만 활동하는 것도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이유다.

 

최근 지하철에서도 빈대가 나타나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뉴스도 접했다.

옛날 기차는 좌석이 보드라운 비로드로 감쌌는데 의자 틈새에 빈대가 있었다.

빈대는 야행성이지만 기차에서 서식하는 빈대는 대낮에도 덤벼들어 물었다.

 

현대식 아파트는 옛날 단독주택과 달라서 빈대가 한 아파트에 침범하면 시간이 걸릴 뿐이지

아파트 전체로 번질 것이 아니냐.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반갑지 않은 흡혈 해충 손님이 오시다니!

경험해 보지 않은 세대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빈대 같은 해충에는 디지털 문명은 무용지물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 ‘빈대 퇴치법’ ‘빈대 죽이는 법’ 등의 글을 공유하며

셀프 방역을 시도하고 있다지만 빈대라는 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고온 세탁이나 진공청소기 등을 이용한 방제, 내추럴 피르스인 성분이 포함된 에어로졸이

달린 살충제를 쓰는 방법 등을 추천하고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한국에도 방에 가스를 터트리면 벼룩이 죽는 것처럼 빈대 죽이는 가스가 들어있는 깡통이

나왔으면 한다. 미국에는 깡통을 터트리고 문을 닫아두면 적어도 그 방의 벼룩이나 빈대는

다 죽는 그런 가스가 있다.

마치 연탄가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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