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쌍벽을 이루는 풍속화가 ㅡ 김홍도와 신윤복

조선시대쌍벽을이루는풍속화가

김홍도와신윤복

사제지간이자연인으로그려지는’바람의화원’과달리

실제두사람이교류한흔적은역사적으로찾아볼수없다.

모두화원가문출신으로천부적인소질을타고났음에도불구하고,

김홍도는정조의총애를받았던반면
신윤복은당대실력을인정받지는못했던것으로보이고,
역사적기록도찾아보기힘들다.


사극에서김홍도와신윤복

단원김홍도는1745년김해김씨김진창의증손으로양반가에서

태어났다.외가가대대로화원을배출한미술가집안이었기에

어려서부터그림에뛰어났고,일곱살에도화서김응환의제자가됐다.

김응환은당시유명한문인화가인강세황에게

김홍도를소개했으며,도화서에정식으로들어간김홍도는

1771년왕세손인이산의초상화를그릴만큼화원으로재능을인정받았다.

1776년영조에이어이산이정조로보위에오르자,

김홍도는규장각도를바쳤고,1781년정조의초상화를그렸다.

정조는"그림과관계된일이면모두홍도에게하게하라"라고

할정도로김홍도를총애했다.

김홍도는성품또한’군선도’를그린것처럼

호방하고신선과같은풍류를즐기며살았다고전해진다.

조희룡이쓴’호산외사’에따르면김홍도는말년너무가난해

조석으로끼니조차잇기어려웠지만시장에서본매화를보고

사고싶어자기그림을3000냥에팔아2000냥으로매화를샀으며,

나머지돈으로지인을초대해술잔치를벌였다.

김홍도는김응환과함께1788년금강산산수화를,

1789년일본지도를그려오라는어명을받기도했다.

하지만1789년김응환이부산에서병으로죽자

홀로대마도로가서일본의지도를모사해돌아왔다.

1790년에는사도세자를위해지은사찰인용주사대웅전에

삼세여래후불탱화를그렸으며

1795년충청도연풍에서현감으로임명되기도했다.

김홍도는소금장수로부를축적한거상김현태에게

그림을그려주는대신

경제적지원을받아활발히그림활동을할수있었지만

말년에생활이어려웠다.1805년병으로위독했다는기록이있으나,

정확한사망연도는알려지지않았다.

신윤복은화원가문인신한평의장남으로1758년태어났다.

도화서화원으로벼슬이첨절제사에이르렀으나

속화(俗畵)를즐겨그려후에쫓겨났다는이야기만전해질뿐

개인적인생애와사망시기에대해서는기록이전무하다.

다만권력과조정의그늘에서벗어나살았으며,

유교사회로부터도소외당했다고보는학자들도많다.

신윤복은기생과한량,별감이나포졸등하급잡직관료들의모습을

그렸으며,봉건사회와의갈등속에서자신만의예술세계를고집했고

대부분의작품에짤막한찬문(贊文)을담아감각적인글솜씨도발휘했다.

‘기방무사”월하정인”혜원전신도’등이대표작이며

그림속에자주자신을등장시켰다는학설도있다.

그림인물중,주변모습을물끄러미쳐다보는이가바로

신윤복자신이며,이는장난기섞인에로티시즘이자

세상을관조하는풍자적인의미라고학자들은주장한다.’

처네를쓴여인’이1829년그린작품이라,

19세기초까지활동한것으로짐작된다

잘사용되지않았던화려한색을주로사용하여

선정적이면서은근한노골적표현이돋보인다.

성적인남녀의표현이전부가아니라권력의부조리나윤리관에대한

비판의식이담겨있는것을볼수있다.대표작인

〈미인도〉<단오도>을봐도그가표현하는작품의색깔을느낄수있다.


미인도

조선시대의미인상은오늘날의미인상과는많이다르죠?!

얼굴에볼살이통통하게올라와있고작은입술에가는눈매를가진

단아한여인이섬세하게그려져있는데

단조로운그림이지만

노리개를만지는손이며,살짝고개를숙인얼굴이며,

여성스러워보이는한복의매무새까지,

신윤복의뛰어난묘사력을대표해주는작품이될만합니다

신윤복의연인이였던기생을그렸다는설이있지만

정확하지는않습니다.

기다림

누군가를기다리고있는여인의모습입니다.

뒤로하고있는손에는스님의옷과모자가들려있는데,

그로봐서는스님을기다리고있는것이라고추측을

하고있습니다.

신윤복의그림은배경의물체하나하나

의미를가지고있어서주의깊게살펴봐야하는데

드리어진버드나무가고개돌린여인의애타는

마음을나타내고있습니다.

청금상련

벼슬높은양반들과기생들의모습입니다.

가야금을연주하고듣는이들과

남녀가연애를즐기고있는남자등을그린작품,

남녀를바라보며한심하다고느끼는듯한표정의남자는

신윤복자기자신의생각을투영시켰다고보고있습니다.

신윤복의작품에서배경물체들의의미가매우중요한데

담넘어들어온나뭇가지가남녀의모습을훔쳐보고

싶어한다고보고있습니다.

계변가화

개울가에서빨래하는여인들의모습과그옆을지나는

젊은사내의아슬아슬한감정을표현했습니다.

청루소일

방안에여유로운양반이앉아있고마루에는

생황을든여인이있으며전모를쓴기생이

마당을들어서고있는

적막한오후한때의기방풍경을그렸습니다.

주유청강

산대신강으로나간소풍이라할수있겠다.

수염이긴늙은선비는점잖게뒷짐을지고있는데비해,

젊은선비는기생의마음을끌기위해뭔가속삭이고있습니다.

단오풍정

신윤복의그림중가장빼어난수작중하나.

단오를맞아개울가에서머리를감고몸을씻는

여인들의모습을그렸습니다.

주사거배

이그림의술집은선술집입니다.왜선술집인가?

선술집이란이름은지금도드물게쓰이고있습니다.

대개부담없이’쌈직한술집’이란뜻입니다.

그러나의외로정확한뜻을아는사람은드물니다.

선술집은주당들이모두서서술을마시기때문에

그렇게부릅니다.

선술집에서는백잔을마셔도꼭서서마시고

앉지못하였다고합니다.

만약앉아서마시는사람이있다면,다른술꾼패거리가

"점잖은여러손님이서서마시는데,버르장머리없이

주저앉았담.그발칙한놈을집어내라"고하면서

시비를걸었고,이때문에큰싸움이벌어지기도했다고합니다.

그래서이그림에서도앉아있는사람은아무도없습니다.

유곽쟁웅

기방문앞에서대판벌어진싸움모습입니다.

장죽을문기생은구경을하고붉은옷을입은

별감이싸움을말리고있습니다.

야금모행

늦은겨울밤기생이동침을원하는양반을따라

어디론가가는모습.

옛날이나지금이나남자들은다그렇고그랬나보다.

붉은옷을입은별감이양반과기생의성매매를

중개하고있습니다.

연소답청

‘연소답청’이란젊은선비들이푸른새싹을밟는다는뜻으로

조선후기의양반들의유한놀이문화인

들놀이를말합니다.

젊고늙은양반들이종과기생을앞세워

풍취좋은산천을찾아즐기고돌아오는모습을

섬세한필치로그렸습니다.

상춘야흥

진달래꽃이피기시작한어느봄날,양반가의

후원에서벌어진연회의흥취를그렸습니다.

음악에흠뻑취한주빈의표정이이날의

연회가아주성공적이었음을말해줍니다.

정변야화

어스름봄밤에우물가에서일어난일을그린것으로

물을길러온두여인이춘홍이오른듯보름달

아래서무언가이야기를나누고,돌담뒤에서

음흉한양반이두여인을몰래훔쳐보고있습니다.

월야밀회

인적이끊어진골목길보름달이비치는담그늘아래에서

한남자가여인을위압적으로감싸안고있습니다.

담모퉁이에비켜서서조마조마하게이들을지켜보는

여인은그림속의긴장을고조시킵니다.

무녀신무

조선말기에유행했던민간의굿하는장면을그렸습니다.

붉은옷을입은무녀와여인들이마당에옹기종기앉아있고

담너머에서한사내가여인들을훔쳐보고있습니다.

삼추가연

어린기생의’머리를얹어주는’초야권을사고파는장면.

뚜쟁이라할수있는늙은할미가기생과초야권을사는

사내의중간에서중개를하고있습니다.

쌍검대무-(국보135호)

넓은마당한가운데서쌍검을들고춤을추는

두검녀의아슬아슬한대결을정방향구도와

인물들의회전운동으로그려정중동의

운동감을세련되게표현했습니다.

이부탐춘

이부는과부를뜻하니소복을입은여인이

마당에서짝짓기하는개와참새를보고웃음을머금고

몸종이나무라듯그허벅지를꼬집는장면입니다.

해학적이면서도여필종부를강요하는남존여비

사상에대한날카로운풍자를읽을수있습니다.


월하정인

달빛아래에서두남녀가안타까운정을나누는

장면을숨막힐듯섬세한필치로묘사했습니다.

안타까운두사람의가슴이두근거리는

소리까지들리는듯합니다.

기방무사

기생이외출했다가돌아오고있는데,그사이왠사내와

몸종이방안에서무슨일을벌이고있었던것입니다.

왼쪽나무잎이무성한걸보니계절은더운여름.

날이더우니기생도전모를썼을것입니다.

그런데남자는한여름에이불을덮고있을까?

방안의두남녀는이상한짓(?)을하다가갑자기

주인기생이찾아오자누비이불을덮은것은아닐까?

알수없는일이다.

전모를쓴여인

배경도없는단순한화폭위에가늘고뚜렷한선묘로그려낸

아름다운여인의모습.

조심스럽고세심한묘사를통해

숨막히는듯한긴장감을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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