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園 장승업

출처:http://blog.chosun.com/paikdoo02/6214687

吾園장승업

거지왕초

속치마에그린매화

강아지

소운초상화

부채

수선매작도

삼인문도

녹수선경

추금서지

호응탐시

죽원양계(대나무와닭)

연지쌍압도

오동나무를닦고있는모습

호취도

매화병풍

조선왕조의마지막대화가장승업
장승업(張承業,1843∼1897)은조선시대의수많은빼어난화가들중에서도
3대화가,혹은4대화가중의한사람으로꼽히는사람이다.
3대화가라면안견(安堅),김홍도(金弘道)와장승업을,
4대화가라면정선(鄭敾)을추가하여일컫는다.
그리고장승업은이들중에서도가장현대와시대적으로가까운 19세기후반을살다간인물이다. 위에서든화가들을3대화가,혹은4대화가로지칭하는이유는 그들이남긴거대한예술적업적과영향력때문이다. 조선초기세종(世宗)연간의찬란한문화중회화예술을대표하는안견, 조선후기영조(英祖)·정조대(正祖代)문예부흥이의회화예술을대표하는 김홍도와정선은제각기우리회화사에서크나큰업적을남겼다. 안견은조선초기를풍미한소위안견파화풍의창시자로서그의영향은 일본무로마치시대수묵화에까지미쳤다. 조선후기의김홍도는당시의사실주의적이고진취적인국가기상을반영하는 건강하고화려하며다양한회화적업적을남겼다. 조선후기회화사의주요한업적으로꼽히는진경산수화를대성한정선도 기세가넘치는필법으로우리산천의아름다움을화폭에담아오늘까지 보는사람으로하여금기원한감동을느끼게해준다. 오원장승업은시기적으로이들대가들중현대와가장가까운시기에활약한 화가이다. 그는조선왕조가500년의긴역사를타의에의해마감해가는암울한시대를 살았다. 당시조선왕조는내부의모순도있었지만 그보다는서구열강의제국주의적침략근성을배운일본과 시대적추세를거스른완고한청나라,그리고 러시아의열강의침략속에서,내부개혁의의지를완성시키지못하고비극적으로 몰락해갔다. 그러나조선왕조는500년을지속한문화대국(文化大國)답게 내부적으로는풍부한문화적토양을갖고있었으니, 장승업의회화는바로그런문화대국조선왕조가마지막으로빛을발하듯이배출한 천재화가이다. 오원장승업의회화적업적은누구도무시하지못하지만중국적인소재를많이다룬 점, 그리고새로운시대에대한안목이작품에나타나지않는다는오해등으로인해비판 받기도했다. 그러나당시동아시아문화권에서문학,예술전반의소재는대부분중국에서유래한 것이었으며,또한진정한예술가의성취에서 꼭시사적인성격이가미된정치와철학의풍모가있어야만하는가? 오히려가장최고의예술에서사람들이바라는것은 바로모든현세적인것을초월한진정한아름다움그자체가아닐까? 오원장승업은바로그런진정한동양예술정신의진수를체득한화가였다. 그리고진정한프로정신으로 자신을연마하여무소불위(無所不爲)의기량과넘치는신운(神韻)으로 19세기동아시아회화사상불후의업적을남겼다. 더구나그가활동했던시대는당시조선인에게는암울하기짝이없었으며, 그런속에서피어난예술이기에더욱빛을발하는것이었다. 모든진정한예술가가그렇듯이장승업도금새당시예술계의총아가되었으며, 위로는고종황제와엘리트지배관료로부터아래로는지방의이름없는부호에이르기 까지기꺼이그의후원자가되고자했다.그래서 궁중에서그림을그려바치라는임금의어명을여러차례어기는기행(奇行)에조차 면죄부를준것은세속을초월한진정한예술혼의덕분이었다. 장승업이당대를오불관언(吾不關焉)하고오직술과예술속에살다가뜬구름처럼간 것은어쩌면무너져가는조선왕조와당시대인에대한치열한무언(無言)의거부였는 지도모른다. 그래서1897년무너지기직전의조선왕조가형식적독립을선포하는광무원년(光武元年) 홀연히세상을버렸는지도모른다. 그러나오원장승업의회화는 아직상당수가남아진정한예술이어떠해야하는가를웅변하고있다. 그래서서구미술이념이지배하는현대한국,동양의풍토에서진정한전통을되살리는 길이어떠해야하는가를보여주고있다. 장승업의회화(繪畵)개관(槪觀) 장승업의작품은산수화,인물화,동물화,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등아주 다양하며,이여러종류에서모두뛰어난성취를이루었다. 그런중에서도가장많이그린것이화조화,동물화,기명절지화이며, 산수화와인물화는상대적으로적다. 장승업이많이그린화조화,동물화,기명절지화는형태상병풍으로그려진 경우가많아당시의사회적요구를반영하고있다. 장승업의회화를양식적으로볼때,한마디로전통화법과외래화법을종합· 절충하여자신의세계를이루었다고할수있다. 장승업이활동하기시작했던19세기후반,우리나라에는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이래상당히형식화된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이유행 하고있었다. 이런화풍을대표하는작가들이도화서(圖畵署)화원(畵員) 백은배(白殷培,1820∼1900),이학철(李漢喆,1812∼1893이후), 유숙(劉淑,1827∼1873)등이며,이중유숙은장승업의초년스승이었다고 전하기도한다. 그리고이때에는그이전,즉18세기의중국양주팔괴(楊洲八怪)의화풍이 이미유입되어있었고,또당시중국의신화풍도수입되고있었다. 새로수입된신화풍이란당시번창했던신흥도시상해를중심으로발전했던 조지겸(趙之謙),임백년(任伯年),오창석(吳昌碩)등 소위해상파(海上派)와광동성을중심으로발전했던거소(居巢)와거렴(居廉) 형제등의초기영남학파(嶺南學派)의화풍을말한다. 그러나장승업의화가로서의위대성은어떤한가지유파나기법에얽매이지 않고,그누구와도비교되지않는뛰어난기법과양식적다양성을가진독자적 경지를이룬데있다. 장승업이즐겨사용한기법으로는필선의아름다움을잘드러내는백묘법(白描法), 정묘하고아름다운공필(工筆)채색화법,이와는정반대인 호방한필묵의감필법(減筆法),수묵의깊은맛을보여주는파묵법(破墨法), 근대적감각을보여주는신선한선염담채법, 그리고최후에이룩한깊은정신미가깃든수묵사의화법(寫意畵法)등을들수 있다. 장승업은조선후기의대화가단원김홍도를의식하여 "나도원이다"라는뜻으로오원(五園)으로자기호를지었다. 그리고매번스스로자신의작품에는신운(神韻)이생동(生動)한다고자부하였다고 한다. 이런그의자부심은예술에대한진정한깨달음에서오는내적자신감의표현이며, 이는그의뛰어난작품들이증명하고있다. 그리하여우리는그를안견(安堅),김홍도(金弘道)와함께한국회화사상 진정한대가(大家)의반열에자랑스럽게내세울수있는것이다. 장승업의회화는초월적예술정신의발현이자암울했던시대를밝힌찬란한예술혼 으로서오늘에까지이르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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