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에..

나어릴적에..

나는어릴때시골에서자란적이있어자연이나동물과는

늘친화적이었던것같습니다.

집에는마당의큰개와실내에는고양이가있었고,

마구간에는태산같이큰소가,마당에는사방에방목한닭이

수십마리는되었습니다.

담위로어슬렁거리며작은집까지넘나드는장닭이있어

그장닭은닭중에서는힘이드세고암탉만보면짓누르고

윽박지르는모양이아주천하에짓궂은몹쓸놈으로보이기도

했습니다.

암탉만보면죽일것처럼대장노릇을하는그모양이결국은

사랑하는모습이며장닭끼리피가흘리도록싸우는모양이

서로암탉을차지하려는우위다툼이라는것을어른이된

한참뒤에나알수있었습니다.

시골에는화장실도왜그리제일먼마당구석에있는지요.

겨울밤에화장실에라도가고싶으면너무도무서워

꼭누군가를데리고가야했는데,

그럴때마다버릇(습관)이나쁘다며엄마는닭장앞에

꼭가서절을하며고(告)하고오라는것입니다.

닭에게절하며고하는내용은항상,

"닭이밤똥누지,사람이밤똥누나."였는데

아무리추운밤에도세번씩복창을하곤했습니다.

아마도지금생각하니오줌을싸면키를뒤집어씌워

이웃에소금을얻어오게하는것처럼,

창피함을짐승인닭에게스스로고백하게하여

낮에화장실에다니는습관을기르기위한주술적인

의미인것같기도합니다.

나는그때닭장밖에서벌벌떨며그런소리로빌때도

‘닭은어떤모양으로잘까’몹씨궁금하곤했습니다.

가져간손전등으로안을비춰보면닭은이미사람

소리에깨어있어,닭이자는모습을보기는커녕

반짝반짝하는눈으로자칫푸드득거릴기세라얼른방으로

뛰어오곤했습니다.

방으로오는길엔마루밑엔송아지만한개’메리’가

늘집을지키고있었습니다.

그추운겨울밤메리는또얼마나추울까마음이편하지

못했습니다.

세찬바람은얼마나차가운지,너무나추워도한마디

말도못하고웅크리고있는그개가늘불쌍했습니다.

암캐거나수캐거나대대로우리집개이름은’메리’였습니다.

이른봄이면병아리들을서너배씩이나까서닭들은

한마당이나가까이되었습니다.

스무마리에서스물다섯마리나되는한배의병아리들은

크면서매에게채여가기도하고,개들이나살쾡이들에게

잡혀가고1년동안식구들의보양식으로잡혀겨울쯤으로

접어들면그수가삼분의일쯤으로확줄어듭니다.

늘무거운짐을지거나밭이나논을가는소를보면불쌍한

생각이들어나는크면절대로소에게일을시키지않을

것이라고결심을하기도했습니다.

그것도입에머구리와멍에를쓰고한마디말도못하고

큰눈만껌벅이는소에게사람은아주몹쓸짓을하고있는

것처럼보여서입니다.

집에애완견’봉신’이를키우며이들에게못했던것을

모자람없이해주려고애를썼습니다.

어릴때우리집’메리’에겐명태대가리를던져주면

흙이묻은명태대가리를허겁지겁입이돌아가도록

깨물어먹느라정신없었지만,

우리봉신이는그런거줘도거들떠보지도않았습니다.

나어릴때우리메리에비하면우리봉신이는호강을

하였습니다.

나라의GNP성장은개들에게도영향이있었던가봅니다.

간식이며때맞춘예방접종도그렇고위생이그렇습니다.

그래도가끔미안했던건본래야생동물을집안에만

가두어하나도자유를줄수없었다는것이미안했습니다.

내가게을러늘운동부족과실내에길들여졌던게미안했습니다.

본래야생동물은산야에있어야제격이며자유롭습니다.

‘봉신’이도잘때보면코를골아집안이떠나가고,

자면서도짓는시늉을하며잠꼬대까지하였습니다.

재채기도하고토하기도하였습니다.

종일이가도한마디말도못해얼마나답답할까안타까웠습니다.

‘봉신’이는큰불이날뻔한걸알려주기도했습니다.

그런데도변치송으로성가실때면

‘넌귀찮게만하고언제은혜를갚겠냐’며맨날다그쳤습니다.

그런봉신이를지난해이맘때여의었습니다.

17년을살았습니다.

너무너무슬퍼하는나를보고짝은

"고마됐다.봉신이는그만하만호강했네."

그러면서도얼마전까지도눈가가축축해보였습니다.

매우슬펐지만갈수록잊어집니다.

보고싶지만안귀찮아가끔은치송할일없으니편하다는

못땐생각도합니다.

*이것도오래된것이지만한번더올린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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