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90세! 단 하루 병원 계시다가 새 집으로 이사가신 어머니! 몹시 그립습니다.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나면 어머니가 더 많이 그리워집니다.작년 3월31일,90세의 연세지만 노인성 병 하나 없이 건강히 지내시던 친정 어머니께서 복통이 심하셔서 병원 가시고 하루 만에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더 평안하고 좋은 새 집으로 이사하셨습니다.저가 잠들기 전에 항상 전화를 드려서 매일 음성을 듣던 어머니시기에 믿겨 지지가 않았습니다.관절이 안 좋으셔서 걷기가 좀 불편하신 것 외엔 정신도 맑으시고 건강하셨습니다.

안동 고향 시골에서 늘 텃 밭까지 다 손수 일궈 가시며 건강히 잘 지내시고 겨울이면 서울에 올라 오셔서오빠네,언니네 가정에서 주로 지내셨습니다.작년도 이제 시골 내려 가실 기대를 하시며 봄을 기다리셨습니다.연세 드신 분들은 당신이 떠나실 날을 조금은 아신다더니 정말 그래서 였을까요?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고향 집에 가서 봄을 맞을 준비를 좀 하시고 오시고 싶다셔서 형부랑 언니가 모시고 내려 갔습니다.마당에 심어 두고 오셨던 마늘도 싹을 틔운 것을 보시고 마당이랑 주변에 겨우내 비워 둔 집을 일일이 또 정돈을 형부랑 언니랑 함께 하셨다고합니다.그리고 마당 한 켠에 들깨씨랑 다른  씨갑들도 뿌리고 오시면서 박달재에서 구경도 잘 하시고 오셔서 식사도 여전히 잘 하셨다고합니다.그 당시 소화 기능이 좀 약해져 계시긴 하셨습니다.

그런데 올라 오신 그 날 밤에 주무시다가 새벽 녁에 복통이 심하셔서 병원에 가셨는데 검사를 하신 후 천공이라고 의사선생님이 말씀 하셨다고 했고 형제들에게 비상이 걸렸습니다.정말 믿겨지지가 않은 일이었지만 천공이기에 시간이 너무 짧게 남아 계셨습니다.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랑 통화를 했는데 평소처럼 어머니께서 말씀을 직접 잘 하시진 못하셔도 저의 말에 “으응”하시며 대답을 잘 하셨습니다.힘이 없으신 목소리이시긴 했지만요.가장 빠른 비행편이 다음 날 오전 대한항공이어서 예약해 두고 잠들기 전에 엄마랑 통화했습니다.

“엄마! 예수님 꼭 붙드시고 힘내세요.엄마! 예수님 손 놓으시면 안되요,”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 드렸습니다.어머니께서 “으응!”이라고 하시는데 얼마나 가슴 뭉클 눈물이 쏟아지던지요.“엄마! 저가 곧 가서 뵐거니까,힘내세요.엄마 사랑해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저는 전화 마무리할 때 항상 “엄마 ,사랑해요”라고 했습니다.그러면 어머니께선 “오냐,난도 사랑한데이,사랑하고 말고 ,우리 수남이!”라고 하셨습니다.그러면 둘이서 함께 행복하게 웃으면서 수화기를 내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속으로 그 말씀을 그대로 하셨을 어머니 음성이 소리로 들려지지 않을 때 너무도 가슴이 내려 앉았습니다.천공만 아니어도 그리 마음 아프지는 않았을텐데 연세가 많으셔서 수술도 어렵고 그 상황으론 하루 넘기기도 어렵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연세드신 분들은 하루를 정말 모른다고 듣긴 했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정말 너무도 믿겨지지 않았습니다.건강하시기에 100세까지는 정말 사실 줄 알았습니다.엄마한테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옛날 이야기들이 너무너무 많고,엄마가 들려 주시고 챙겨 주시는 이야기들이 여전히 너무 많고  듣고 싶은데…..너무도 슬펐습니다.

다시 이사 가시는 곳이 좋은 곳으로 잘 정해져 있고 그 천국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살기에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저 역시도 없지만 이제 이 땅에서 더 뵐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슬펐습니다.저가 많이 이야기하고 엄마는 그냥”으응”정도의 대답이셨지만 그 짧은 대답 속에 담긴 모든 말씀을 저는 여전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잤습니다.아침에 일어나서 전화를 드린 후, 언니 편에  저가 잠자는 사이 어머니께서 소천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갑자기 당한 일이지만 마음의 준비는 했는데 정말 언니 말을 듣자마자 통곡을 했습니다.비행기를 타고 오는 13시간동안 저는 가져간 컴퓨터를 켜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담았습니다.토론토서 인천공항까지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글로 표현하며 담아 오다보니 한숨에 금방 도착한 느낌이었습니다.

병원으로 도착하니 영안실 입구에서 반갑게  맞아 준  셋째  오빠가 저의 손을 잡고 어느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어머니께서 곱게 옷을 갈아 입으시고 누워계셨는데 관에 들어가실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형제들이 둘러선 그곳에서 저는 목놓아 크게 울지도 못했습니다.어머니를 맡아 일을 하시는 처음 보는 분이 어머니한테 눈물이 떨어지면 안된다며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했습니다.눈물을 닦고 흘리지 않게 하면서 어머니를 만져 보았습니다.정말 참으로 맑고 고으셨습니다.그냥 주무시듯이 누워계시는데 그런 중에도 참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어머니께서 가실 곳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더 평안히 쉬실 너무도 좋은 곳에서 다시 사실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며 진실하게 착하게 베풀면서 잘 사신 덕분에 저희 7남매가 모두 성실히 이 땅에서의 삶에서 복 받으며 행복하게 가정을 다 잘 세우며 잘 살고 있음이 감사했습니다.3일 장이기에 저가 도착한 날이 벌써 둘째 날 저녁 이어서 어머니 영정을 모신 방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이미 다녀 가셨고,계속 오시고 계셨습니다.

저의 초등,중등,고등,대학,사회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연락을 해서 제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한 둘씩 셋씩 만나서 오고 있었습니다.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은 병원으로 왔고 고향에 사는 친구들은 산소를 쓰는 산으로 찾아 왔습니다.오랫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모두  어찌나 반갑고 또 고맙던지요.시간이 안되어 못오는 친구들은 또 오는 친구편에 조의금을 챙겨서 보냈습니다.모두의 마음이 참 따뜻하게 전해와서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안동 시골에서 모두 태어 났고, 자랄 땐 가난한 농부의 자녀들이었는데,  정말 부모님의 사랑과 성실한 삶의 본으로 그리고 도와 주시는 신실하신 주님 은혜로 저희 7남매가 든든히 성장했고 어머니의 천국 환송을 함께 마음 모아 잘 해 드린 것이 감사했습니다.화환이 38개,기 8개,조문객이 1026명,서로서로  갚음이지만 조의금도 꽤나 컸습니다.시골 동네 선산에서 뵌 저희 동네와 이웃 동네 분들까지 합하면 조문객 수는 또 더 많은데 어머니 가시는 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었음이 감사합니다.오빠가 시골에 부탁을 해서 꽃상여를 했습니다.시골에서 어릴적에 보았던 그 꽃상여를 어머니께서 타고 가시는데 얼마나 뵙기 좋던지요.저희 형제들은 울었다가 또 웃었다가 정말 어머니께서 천국 가시는 날 고향 동네 분들이 해 주시는 어머니 이야기에 함께 기뻐하면서 또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어머니를 “복 노인”이라셨습니다.복노인으로 사시다가 아름답게 떠나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저도 복노인 어머니처럼 최소한 90까지는 영육 건강하게 잘 살게 되길 기도합니다.어머니,아버지 아래 7남매를 통해 더해진 가족이  증손주들까지 다해서 54명이 되었습니다.이제 점점 더 큰 가족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조카들이 계속 결혼을 하고 있고 ,임신을 했고,저희 자녀들도 나이가 차 가니 앞으로 또 가정을 잘 이뤄갈 것이기에요.7남매 형제들이 각각 이제 우리나라 여러 영역에서 사회와 이웃들에게 영향력이 있고 보탬이 되는 건강하고 성실한 일을 해 나감이 감사합니다.

오늘은 문득 “오냐,난도 사랑한데이,사랑하고 말고,우리 수남이!”라며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이 말씀과, 그 목소리가 귀에 쟁쟁히 들려 와서 막내를 등교 시키고 가슴 메이는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불러 봅니다.

“엄마!!!~~~!”

“어머니!,사랑합니다,정말 많이많이 그립습니다,그리고 낳아 주신 것부터 하나하나 모든 것 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제작년 여름 막내 데리고 어머니 뵙고 오길 너무도 잘했다싶어 감사합니다.건강하시지만 어르신들 건강은 또 혹시 모르기에 작년으로 미루려다가 작년에 또 가게 되더라도 어머니  더 건강하실 때 뵙고 온다고 제작년 여름에 방문했습니다.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감사하신 선생님 가족 분들이 어머니랑 저와 막내에게 맛있는 점심도 사 주시고 안동댐 앞 월령교에서 사진도 찍어 주셨습니다.

내년에 간다하고 제작년에 가지 않았더라면  막내가 3살 때 외할머니 80회 생신 잔치에서 뵈서 아주 어렴풋한 기억 밖에 없었을텐데 ,12살에 다시  다녀 온 덕분에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기억을 더 많이 담아 올 수 있었기에 감사합니다.

연세 드신 부모님 뵙는 것은 결코  미루어서는 안되겠습니다.오늘 당장 해 드릴 수 있는 사랑 표현과 감사 표현을 해야되는 것이 맞다 싶습니다.제작년 여름에 막네랑 함께 다녀 온 그 때의 기억이 저에게도 엄마의 살아 생전의 모습과 함께 한 마지막이었기에 더욱 감사한 방문이 되었습니다.

-89세이신 어머니와 넷째와  함께,안동댐의 월령교 앞에서 ,2014년 8월-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그 이름을 저가 또 누리고 사용하고 있음을 감사합니다.저가 어머니에 대해서 느끼는 이런 사랑과 감사와 그리움이 저희 아이들 가운데도  담겨져 있어지는 어머니 닮은 어머니가 되어져가길 기도 하며  몸소 삶으로 보이셨던 어머니를 거울로 삼을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2016,1,21,목요일 아침에,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머니가 되고서야 더 제대로 깨닫고 알게 되는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와 감사!,많이 그리운 어머니 모습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어머니의 모습을 더 많이 닮아가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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