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다섯째는 여동생! ,식구가 늘다 (연재 소설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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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온 후 아빠는 매일 새벽 예배를 드리러 가셨다.

앞 길이 막막한 이민 땅이고 부모님도 형제도, 친척도 전혀 없고

잘 아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서

오직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셨다.

엄마는 동생이 어려서 매일은 못 가시고 토요일이면
우리 모두를 데리고 새벽에 예배드리러 가시길 좋아했다.
나도 아빠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길 기도했다.
이민 1주년이 되어 갈 무렵
우리 집에 새로운 경사가 났다.
엄마가 다섯째를 임신하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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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도 신났다.
벌써 3명의 동생이 있지만 나는 내 동생이 더 생기는 것이 진짜 좋았다.
감사하게도 우리 엄마는 2개월,3개월 정도 때 잠시 입 덧을 조금 하신 것 외엔
전혀 힘들어 하시지 않고 오히려 더 펄펄 날아 다니셨다.
배는 불러 오는데 여전히 어린 넷째를 등에 잘도 업으셨다.
엄마는 우리를 이렇게 잘 업어 주셨다.
우리 넷 모두 젖을 다 먹여서 키우셨는데 , 넷째는 1살이 넘도록 젖을 먹었다.
할아버지,할머니께서 다섯째 출산을 앞두고 캐나다를 방문하셨다.
방이 2개인 아파트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온 식구가 정답게 지냈다.
거실이 넓어서 우리들은 거실에서 자리를 깔고 자기도 했다.
동생들은 할아버지,할머니랑 자기도하고 넷째는 늘 아빠,엄마랑 잤다.
이민 온지 20개월만에 다섯째가 태어났다.
예쁜 공주님이 모두의 기다림과 축복 속에 태어났다.
남동생만 3명 있다가 여동생이 생겨서 나는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감사하고 좋았다.
늘 어리광을 부리던 넷째도 어엿한 오빠가 되어서 아가를 너무도 예뻐했다.
나도 동생들 모두도 다섯째의 탄생에 행복해했다.
할머니께선 엄마 산바라지를 하시며 아가를 매일 씻겨 주시며 너무도 예뻐해 주셨다.
우리들은 아가 이름을 뭘로 지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성경에서 나오는 이름부터 예쁜 여자 이름을 여럿 골라 보았다.
최종 결정된 이름은 바로 은샘이었다.
엄마가 다섯째를 임신하시고 늘 기도하실 때 아가를 은샘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은혜의 샘!
낯선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아가를 주셨다고 엄마가 태중의 아가를 늘
은샘이라고 불러 오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 아가 이름으로 은샘이가 너무 예쁘기에 가족  모두가 좋다고했다.
우리 은샘이도 분명 복덩이가 분명하다.
은샘이를 임신하신 엄마는 항상 찬양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이야기도 더 많이 들려 주셨다.
우리들처럼 태어 날 아가 역시 성품이 좋고 하나님 사랑안에 잘 태어나서 잘 자랄 거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고 계셨다.
정말 은샘이는 엄마의 기도대로 너무도 사랑스럽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은샘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 가족은 좋은 가게를 찾으려고
함께 차로 많이 다녔다.그래서  이야기도 더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은샘이는 뱃속에서부터 이미 우리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은 캐나다에서 아가로 인해 우리 가족은 더 화목해지고 행복했다.
아빠 엄마는 더 힘을 낼 수 있는 기회라고 하시며 정말 너무도 좋아하셨다.
남들은 힘든 일이라는데 우리 부모님은 아이가 한 명 더 생기는 것이
오히려 힘이 나는 일이라시니 정말 분명 아주 특별한 백을 가지신 분들이란  감사를 얻었다.
나는 안다.그 든든한 부모님의 뒷 배경에 어떤 분이 든든히 서 계시는지를.
그래서 나도 즐겁게 부모님을 바라보며 함께 소망 가운데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아가로 인해 더욱 힘차게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우리 가족 모두가 얻을 수 있었다.
은샘이는 복덩이가 정말 맞았다.
은샘이가 태어나자마자 아빠는 정말 마음에 드는 가게 하나를 찾게 되셨다.
이민 온 이후 매일 새벽 예배에 가서 기도를 하시는 아버지 마음에 건물째 사면 좋겠다는
마음이 많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그냥 가게만 찾는 것이 아니고 건물까지 있는 가게를 찾아야겠다는 결정을 하시고
그 방향으로 기도하며 찾았는데
마침 그런 가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셨다.
한국인 주인이신데 마침 본인들이 계획하시는 다른 일이 계셔서 건물을 파실 계획이셨다.
아빠는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셨고 엄마도 알뜰하게 살림을 하셨다.
조금씩 저축도 하셨고,집을 판 것과 퇴직금과 회사에서 매 년 주던 주식을 그대로 모아 두었기에
꽤 큰 돈이 되어 있었다.
은행 도움을 조금 받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아빠가 마음에 들어 하니까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건물 값을 올리셨다.
그리고는 갑자기 또 안 팔겠다고 했다.
아빠는 4거리 코너에 있는 이 가게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은샘이 산바라지로 와 계시는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고도 가 보셨다.
사업을 해 보신 할아버지께서도 몫이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빠는 가정 예배 드리면서 작정 기도를 하자셨다.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성 돌기를 우리도 해보자고하셨다.
우리의 간절한 마음의 소원을 그렇게라도 하나님께 나타내 보이자셨다.
여리고성을 일주일동안 6일은 매일 한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에 일곱바퀴를 돌아서 성이 무너졌던 것처럼
우리도 건물 주인의 마음이 무너져 내려서
우리에게 팔게되길 기도하자고 하셨다.
아빠는 일주일간 우리 온 식구가 같이 새벽 예배드리고 건물을 돌고 오자셨다.
우리는 모두 아빠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할아버지,할머니와 아빠,엄마와 한달이 갓 지난 은샘이까지 우리 5남매는
새벽 일찍 깨어 새벽 예배를 드리고 바로 20분 정도 걸리는
아빠가 마음에 들어 하는 가게 건물을 한바퀴 돌고 왔다.
너무 재미 있었다.
동생들은 영문도 몰랐지만 새벽 일찍 할아버지 할머니 손잡고 교회서 예배 드린 후
추운 새벽 공기를 뚫고
차를 함께 타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덜 깬 잠 속에서도 재미 있어 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정말 6일을 계속 우리는 매일 같은 방법으로 새벽 예배드리고 건물 주변을 한 번
돌면서 저 분들이 가게를 우리에게 팔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는 정말 일곱번을 돌고
우리 모두 차  안에서 크게 소리 높여 ” 할렐루야!”라고 외치면서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 왔다.
새벽 일찍 온 가족이 9명이 정원인 포드 윈드스타 우리 차에 가득 타고
다녀 올 때의 즐거움은 정말 새롭고 좋았다.
가게가 힘든 일이긴 하지만
아빠,엄마께서 새론 일을 시작하시게 될 것에 대한 기대가 나는 참 크고 좋았다.
그리고 그 날 오전에 아빠가 그 가게 주인을 다시 찾아 가셨다.
건물채 사고 싶어하고 매일매일 관심 있게 와 보시던 아빠께서
한 일주일 나타나지 않으시니까 그 분들도 여러 마음이 계셨던 것 같다.
가게만 사려는 사람은 많아도 건물째 사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기에
건물째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 났을 때 파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아빠가 들리시지 않은 그 일주일 사이에 이 분들 마음을
기도한 우리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셨다고 믿는다.
아빠는 기도의 능력을 믿으셨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셨기에
우리 가족 9명이 합심해서 기도한 이후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셨다.
“김선생님께서 주인이 되시려나 봅니다.건물 팔겠습니다.”라고 하셨다셨다.
대신 값은 본인들이 달라는대로 다 달라고 하셨다신다.
시세보다 훨씬 더 많은 가격이었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다.
좋은 몫의 가게이기 때문이라셨다.
몇 달 더 걸려서도 여기처럼 마음에 드는 좋은 가게가 나올지도 확실하지 않기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더 비싸게 사지만
지금 속히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돈버는 것이고 더 낫겠다고 판단하신 때문이다.
가격을 더 올려서 팔겠다시기에
아빠는 은행 도움이 더욱 필요하기에 보통으로 다가가선 안되시겠다 싶으셨다.
그래서 아빠는 주변 상황과 가게의 매상과 앞으로의 전망과 여러가지 시장 조사를 해서
은행 담당자에게 우리가 꼭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됨을 준비한 자료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아직 신용이 없는 이민자이기에 은행이  많은 돈을 빌려 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것 또한 우리 가족의 기도 제목이었다.
은행에서 건물을 사는데 필요한 나머지 돈을 빌려 줄 수 있게 되길 기도했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들을 잘 해온 아빠시기에 자료들을 잘 모으시고 준비를 잘 해서
프리젠테이션을 모기지담당자에게 잘 하기도 했지만
아빠의 간절한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담당자의 마음을 열게 해 주셨다고 믿었다.
그 담당자는 여러 나라 많은 이민자들이 있지만
아빠처럼 이렇게 정성껏 자료를 준비하고 프리젠테이션까지 해서 자기들에게 다가온 사람은  아빠가 처음이었다면서 돈을 빌려 주겠다고 하신 확답을 받고 오셨다.
은샘이가 태어나니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아빠께서
낯선 땅에서도 5명을 키워 나갈 수 있게 가게를 그것도 건물째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너무도 놀라웠다.
우리 아빠,엄마는 정말 남다르신 생각을 늘 갖으셨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또 지혜를 주시는 것 같다.
믿음대로 된다는 말을 나도 많이 들었다.
모두들 하나도 힘들다는 자녀를
이렇게 다섯까지도 낳으실 수 있으실까? 싶어서 아빠,엄마가 더욱 존경스러웠다.
정말 아빠,엄마는 믿음도 좋으시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아빠는 거의 매일 바쁘게 움직이시면서 건물을 사시는 일을 추진해 나가셨다.
그러는 중에 마침 캐나다 공무원들이 파업을 했다.
3월에 오픈 예정인 가게가 서류가 제 때 진행되지 않아서 계속 미뤄졌다.
이제 가게를 시작하면 정말 메여 있게 되기에 여행 하기도 한동안 쉽지 않을 거라면서
아빠께서 가족 여행을 추진하셨다.
마침 할아버지,할머니도 와 계실 때 좋은 기회였다.
할아버지,할머니 모시고 어린 은샘이까지 우리 가족 9명은 우리 차로
퀘백과 몬트리얼 오타와 등등 동부 지역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엄마는 전기 밥솥과 쌀도 넣고 김과 마른 반찬들을 준비하셨다.
여행 중에도 역시 우리는 밥을 먹을 때가 좋았다.
특히 할아버지,할머니께선 햄버거나 빵 종류를 잘 안드시기에 호텔에서 밥을 해 먹는
즐거움도 너무 새로왔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정말 선하게 인도하심을 믿는다.
캐나다 공무원이 2달이나 파업해서 늦어지는 동안
봄방학을 이용해서 우리 가족 여행도 할 수 있었다.
가게 주인 아저씨께서 우리에게 건물을 인수하기 전에 마무리해야될
수리랑 문공사까지 다 마쳐 주셨다.
문을 고치려고 시작해 두셨는데 기다리는 2달 사이 그 분들이 깨끗이 다 마무리해  두셨다.
미리 우리가 인수했으면 그것도 우리가 해야될텐데 경험없이 새로 일할 사람 찾아서 해야되는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미리 다 예방해 주셨다 싶어서 너무도 감사했다.
은샘이가 6개월이 된 따뜻한 봄 날이었다.
아름다운 봄 꽃들로  향기가 가득한 좋은 동네로 이사를 왔다.
교회에서 30분 이내의 거리에 좋은 가게를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 우리 가족들은
20분 밖에 안걸리는 곳에 이사 오면서 기도 응답이라는 감사를 크게 얻었다.
새론 캐나다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빠가 가게 사장님이 되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장님은 큰 회사이고 양복을 늘 입고 있는 그런 사람지만
작은 가게이고 옷도 일하기 편한 복장을 입은 우리 아빠가
정말 진짜 멋진 사장님으로 보였다.
나는 우리 아빠가 즐거워하시고 하실 일이 있고 또 우리 가게라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가게 옆 창고에서 2층 집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는데 나와 동생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 계단을 오르내리며 신이났다.
동생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과자며 초코렛이 가득한 가게라서 더욱 좋아했다.
엄마는 6개월밖에 안된 은샘이를 포대기로 업고 전주인한테 2주일 정도 배우신 것으로
아직은 익숙하시지 않은 계산대 숫자를 잘도  두드리셨다.
그 숫자를 많이 찍을 수록 더욱 기뻐하시면서 엄마는 가게 일 역시 적성에 맞다셨다.
엄마는 항상 어떤 일이시든
적성에 맞춰어가시는 능력도 계셨다.
나는 여러 자녀들을 키우시려고 애쓰시는 우리 아빠,엄마시기에 속히 잘 적응하신다는 생각에 더욱 감사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해 본 일이었다.
무엇보다 아빠,엄마는 기쁘게 즐겁게 행복하게 가게 일을 시작하셨다.
이 일이 우리 가족들을 캐나다에서 든든히 서 가게 할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샘터라시면서 복덩이라고 하셨다.
나는 아빠,엄마의 그런 긍정의 표현이 너무 좋았다.
새로 전학온 학교도 가깝고 걸어서 5분 거리였다.
1학년부터는 종일 반이라 오후 3시 30분까지는 학교에 있는데
캐나다가 우리나라와 다른 것이 1학년부터 12학년 즉 우리의 고3까지 모든 학생들이
오후 3시 30분이면 학교 수업이 다 끝난다.
1학년이 늦게까지 있는 것과 12학년이 일찍 끝나는 것이
한국에서와 달라서 처음 이민와서는 신기했다.
가게 2층에 살기에 엄마는 수시로 가게에 내려 와 일을 챙겨 보실 수도 있고
어린 은샘이 챙기시면서 우리 넷에다 가게까지 도우시면서도 한번도 힘들다고 하시지 않았다.
은샘이도 6개월밖에 안되었고 동생들 모두 아직은 어리기에
교회 집사님이 소개해 주신 헬퍼를 가게 시작 첫날부터 매일 쓰게 되었다.
경험이 많고 일을 잘 하는 착한 헬퍼아주머니께서
가게 일을 하루에 7시간씩 도와 주셔서 아빠,엄마께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새론 학교라 모든 것이 낯설긴 했지만
이미 영어도 잘하고 캐나다 학교 시스템에 대해 잘 알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11시 30분에 점심 시간이 되면 나는 집으로 달려와서
엄마가 준비해 둔 따뜻한 밥을 먹고 ,  은샘이를 보는 즐거움도 너무 컸다.
헬퍼아주머니도 나를 예뻐해주시고 가게 일도 잘해 주셨다.
동네 사람들도 참 좋았다.
다 백인인데 우리 가족만 아시안이고 학교에서도 한국 사람이 나 혼자였다.
학교엔 중국 학생이 1명 있었다.
반갑게도 새 학교에서도 단짝 친구 이름이 에마였다.
7학년이라 우리나라의 중1인데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3시 30분이면 수업이 다 끝났다.
나는 아빠 엄마가 가게 일 하시는 것이 많이 고생하신다 싶어서 내 나름대로 새론 다짐과 각오를 했다.
내 각오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빠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오면
엄마는 우리 5명을 모두 챙겨서 집에서 200미터 정도에 있는
가까운 동네 도서관으로 잘 데리고 가셨다.
1시간 정도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꺼내 읽다가 은샘이를 태운 유모차를 서로 밀겠다는
동생들과 함께 나는 엄마랑 행복한 산책을 늘 했다.
엄마가 하시는 말씀 중에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 은혜!”라는 것이었다.나도 엄마의 그 말씀의 의미를 잘 알기에
나 역시도 정말 하나님 은혜라는 고백을 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엄마도 농사지으시면서 연세도 많으신 외할아버지,외할머니께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
일찍 철이 나셨다는데 나도 정말 하나님 은혜로 캐나다에 와서 여러 동생들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단 일찍 철이 난 것 같아서 감사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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