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개의 항아리 (연재 소설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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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시작하는 날부터 우리 집 안방에는 3개의 항아리가 예쁘게 장식되었다.

이 항아리는 엄마가 시집 오실 때 가져 오신 거라고했다.
신혼 여행 다녀오셔서 친정에 들리셨다가 처음 시댁으로 가실 때
외할머니께서 반찬을 만들어서 넣어 주셨던  항아리라고 했다.
이바지 음식이라고도 한다고 엄마가 말해 주셨다.
우리나라 시골의 아름다운 산과 강과 집이 평화롭게 그려져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한문도 몇 자 쓰여져 있는
뚜껑까지도 예쁜 항아리다.
외할머니의 맛있게 잘 만들어 주시던 좋은 음식 솜씨가 생각났다.
엄마가 아직 요리를 잘 못하시니까 시집가서 시댁 어르신들 밥상 차릴 때 사용하게 준비해 주신 거라고 했다.
이 항아리 가득 반찬을 만들어 보내 주신 외할머니 사랑이 느껴져서 외할머니가 더 보고 싶어졌다.
크기가 어느 정도 되나? 싶어서 내가 마시는 물 컵으로 물을 넣어보니 5컵하고도 조금 더 들어가는 작지도,크지도 않은 알맞은 크기의 정말 예쁜 상아빛 사랑스런 항아리이다.
이 항아리는 내게 너무도 가슴 따뜻한 그리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우리 아빠,엄마의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그 항아리에 엄마는
믿음,소망,사랑이라고 써 두셨다.
그리고 매일 가게 마무리하고 자정이 가까와 집에 오셔서는
하루 매상의 십일조부터 선교 헌금과 한국에 할아버지,할머니와 외할머니께 보내드릴 용돈을 구별해서 넣으셨다.
믿음!이라고 쓰인 항아리에는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를
소망!이라고 쓰인 항아리에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선교 헌금을
사랑!이라고 쓰인 항아리에는 한국의 부모님께 보내드릴 용돈을 넣으셨다.
그리고 주일마다 믿음과 소망의 항아리 돈은 꺼내서 교회 헌금으로 드리셨다.
아빠는 말씀하셨다.
한국서는 직장 생활하면서 월급을 받았기에 매 달 한번씩 드리던 십일조를
이민와서 가게 운영하니까 매 주일 십일조를 구별해서 드릴 수가 있어서 너무너무 좋다고 하셨다.
나는 돈을 더 자주 ,더 많이 헌금으로 드리는 것이 너무 좋다는 아빠가 참 이상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보통 사람과는 정말 생각이나 행동이 정말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나는 이런 우리 아빠가 너무 존경스럽고 좋았다.
아빠가 드리면서도 기뻐하실 그 일들에 대해 나도 관심이 더 생겼다.
그런 마음이 저절로 생겨가는 지점까지  나도 속히 도달해 지길 기대했다.
그리고 사랑 항아리 돈은 매 달 한번씩 데니엘 오빠에게 교회서 직접 캐나다 돈으로 전해 주셨다.
유학와 있는 데니엘 오빠의 아빠께서 한국에서 우리 삼촌한테 한국돈으로  송금을 해 주면
삼촌이 찾아서 할아버지,할머니께는 직접 전해 드리고 시골 외할머니께는 우체국 통장으로 대신 송금해 준다고했다.
나는 이 항아리에 넣는 돈이 무슨 용도에 쓰시려나? 싶어서 여쭤보았는데 이와 같이 사용됨을 알고부터
아빠,엄마의 그 모습이 너무도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아침 7시 30분에 가게 문을 여시고
밤 11시 30분까지 일을 하시고 문을 닫고 2층 집에 올라 오시면 늘 자정이 넘었다.
많이 피곤하고 힘드신데도 아빠,엄마는 그 한 밤 중에 항상 그 항아리에 정성껏 구별해서 넣으시고 나머지는
바로 밑 서랍장에 넣으셨다.
그 다음 날 또 시장을 보실 돈이랑 그리고 은행에 저금하실 돈이랑 또 잘 구별하셨다.
아빠는 한국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육체 노동이 심한 가게 일을 하셨지만 엄마께도 우리들에게도 항상
환한 미소를 띄어 주셔서 나는 아빠가 행복하게 이 일을 하신다는 감사로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가게에 하루 종일 매여 계시고  조금 더 저렴하게 좋은 상품을 사시려고
온 토론토 시내를 누비며 도매상을 찾고 물건을 구해 오시는 아빠의 발걸음을 축복하며 기도하며
마음이 또 아프기도했다.
엄마도 어린 동생 챙겨가시면서 가게 카운터에 오랜 시간 일을 하시고 집안 일까지 다 하시는 수고를 뵈면서
아빠,엄마가 고생하시는 이 일에서 속히 해방되게 내가 어떻게 해야될 지를 많이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내가 잘 되어서 부모님도 동생들에게도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아빠,엄마를 내가 속히 호강 시켜 드릴거야’라고 다짐을 했다.
‘나도 앞으로 직접 돈을 벌면 꼭 아빠,엄마처럼 저런 3개의 항아리를 마련할거야’라는 다짐을 했다.
아빠,엄마께선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는 말씀을 절대 하시지 않으셨다.
그냥 몸소 실천하시는 그 모습이 내겐 정말 아름다운 거울이 되었다.
그대로 비춰졌기에 나도 또 그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이것이 바로 교육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빠,엄마는 정말 우리들에게 사랑으로 실천하시면서 보여 주시는 것으로 우리 스스로 깨닫고 배우게 해 주시는
삶의 영역이 너무도 많았다.
무엇보다 가장 감사한 것은
하나님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시며 부모님께도 형제들에게도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지금 이 자리에서 하실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신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부모님께 도움이 될 일들을 최대한 도와 드리고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4명의 동생들에게도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 생활은 점점 더 즐거웠고 공부 역시 두각을 나타내며 잘 해내게되었다.
엄마는 자주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1884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외과 의사셨던 알렌 선교사님을 통해 복음이 전해 지고
그 열악한 환경의 우리나라에 와 주셔서
목숨을 다해 순교하시면서도 복음을 전해 주셨던 분들을 생각하니 감사 그 자체였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가정으로 주님 은혜 안에 소망을 가지고 믿음 안에 잘 살 수 있는 것이
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헌금해 주며 또 직접 와서 복음을 전해 주신 선교사님들 덕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그래서 선교 헌금을 드리는 것의 중요함을 가르쳐 주셨다.
엄마의 이야기 중에 나는 선교사님들께 다시 한번 더 감사한 마음을 깊이 느꼈다.
우리나라에 오신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와서 처음에 어려웠던 것이
3S 때문이었다고 한다.
첫째 S는 Smoke 라고 했다.우리나라 아궁이 시설이 좋지 않아서 생나무를 때면서 나는 그 연기가 힘들었다고한다.
둘째 S는 Smell 이라고 했다.하수도 시설도 안되었고 화장실도 재래식이어서 거기서 나오는 냄새,그리고 메주 뜨는 냄새도 그렇게 힘들었다고 한다.
셋째 S는 Sounds 라고 했다.밤에 자려고 하면 다듬이 소리가 다다다닥 나고 또 무당 굿소리가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셨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정말 말로만 들어도 너무도 힘들었을 황무지 같은 우리 나라 땅에 오셔서 목숨을 바쳐서 복음을 전해 주신
분들의 수고와 사랑이 가까이 느껴졌다.
그 사랑을 아시는 우리 아빠셔서 이렇게 매일 십일조도 선교 헌금도 준비하시고 또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랑의 실천을 부모님 용돈을 챙겨 드리면서 하신다는 감사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내게서도 피어 올랐다.그리고 바쁜 중에도 단기 선교도 직접 참여하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내 가슴도 찡해졌다.
엄마는 성경 암송을 우리들에게 잘 훈련 시키셨다.
우리들에게 말씀 하시기 전에 엄마가 먼저 암송하신 후 권면하시거나  때론 함께 암송해 보자고 하시기도 했다.
나는 로마서 10장 12절로 15절 말씀을 잘 기억하고 암송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께 같으니라.”아멘.
나는 하나님께 늘 감사를 드린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정말 너무도 좋은 부모님을 만나게 하셨다는 감사다.
3개의 항아리!
나도 사랑하는 우리 아빠,엄마의 그 사랑과 그 정신을 잘 기억하고 꼬옥 본받아 실천할 생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가는 선교사,보내는 선교사,우리 모두 선교사!라는 말씀을 자주 들려 주셨다.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 책꽂이에 있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나도 새롭게 가슴에 품은 꿈이 생겼다.
할아버지,할머니,외할머니께 늘 용돈도 보내드리고 ,자주 전화드리며 우리들도 직접 통화하게 늘 바꾸어 주시는
부모님을 통해 나는 낯선 땅 캐나다에서도 가족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며 항상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음을 감사한다.
엄마 말씀처럼 정말 나도 이젠 그렇게 고백이 된다
“모든 것이 정말 다아~~하나님 은혜!”라는 것을.
(계속)

2 Comments

  1. 데레사

    2017년 3월 1일 at 1:40 오전

    다듬잇 소리가 우리에게는 정다운 소리인데 선교사분들께는
    소음으로 들렸나 봅니다. 문화가 다르니까요.
    그분들 덕으로 우리가 많이 개화되고 또 믿음도 갖게되고
    교육도 받을수 있게 되었지요.
    참 감사한 분들이지요.

    이민생활에서 모든게 어렵지 않게 잘 풀려 나가신것 같아서
    글을 읽으면서 마음 훈훈함을 느낍니다.

    • 김 수남

      2017년 3월 1일 at 11:30 오후

      네,언니! 감사합니다.정말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죠이네 이야기가 저희 가정의 이민 이야기의
      대부분 그대로이에요.특히 이 3개의 항아리는 사실 그대로 저희 가정의 이야기이고요.정말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언니도 늘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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