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을 만든 캐나다 출신 앨리스 샤프 선교사님께 감사!

유관순을 만든 사람들이란 뉴스 칼럼을 아침에 보았다.정말 늘 감사하고 감사했던 앨리스 샤프 선교사님을 다시 뵐 수 있어 감사했다.캐나다에 이민 온 이후 더욱 그렇다.캐나다 출생의 선교사님이란 것이 참으로 가슴 뭉클했다.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과 유관순님을 생각하면 늘  연결되어 감사한 선교사님이다.우리 부부도 예수님을 믿고 삶의 가치관이 바뀐 사람들이다.그래서 평신도 전문인 선교 훈련을 1년 간 받을 수 있었다.가장 편안하고 잘 나가던 때의 한국 생활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선교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캐나다에 이민을 결정할 수 있었다.

 예수님을 믿고 받은 구원의 기쁨은 너무도 크고 놀라웠다.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도 벅차고 아름다운 소식이기에 나누고 싶었다.남편 역시 대학생 때 주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체험 신앙이 있는 사람이기에 나와 마음이 잘 맞았다.우리는 캐나다 이민에 대해 말은 먼저 내가 꺼내었지만 바로 행동으로 움직인 것은 남편이었다.우리는 돈 버는 목적이 분명했다.주님을 만나고부터 나의 경제적인 가치관도 바뀌었다.경제적인 관념 역시 우리 부부는 같았다.참 감사한 일이다

선교가 중요한 목적이지만 우리는 자녀들 교육과 우리 부부의 인생 후반전을 조금 더 보람있게 보내고자하는 이유가 있었다.우리나라보다 여러모로 더 좋은 환경의 선진국인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선교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물론 있지만 우리들 가족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선택한 것이기도하다.

그런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귀한 헌신과 내려 놓음이

계셨던 분들이다.엘리스 샤프 선교사님 역시 그렇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이 말만으로도 가슴 뭉클 눈물이 핑 돌아 나온다.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과 구타를 당하면서 한 유관순의 말이라 생각하니 더욱 가슴 메여진다.

어떻게 17세의 소녀의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할 수 있기까지의 유관순이 되게 한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알 때

더욱 감동과 감격과 감사가 더해진다.

바로 앨리스 샤프 선교사님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즐겨 부르던 노래가 그대로 생각난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속에 갖혀서도 만세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유관순의 삶을 생각해볼 수록  더욱 대단한 사람임을 감사한다.
유관순의 가족은 일찍부터 예수님을 영접한 가정이다.할아버지와 삼촌이 먼저 신앙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 유중권은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우고 사회개혁과 교육사업을 전개한 계몽 운동가였다한다. 유관순은 1919년 3월1일 서울서 만세시위에 참가했다.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그 기간에 충남 천안 고향에  내려가 서울의 상황을 설명했다.

천안에서도 서울의 만세 시위같은 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했다. 드디어 4월1일 아우내 시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유관순은 선두에 섰다가  체포되었다. 이 시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총칼에 맞아 숨졌다고한다. 오빠 유우석 또한 공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 투옥되었고 온가족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쳤던 애국자 집안 사람들이었다.

유관순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아닌 미국인 선교사 앨리스 샤프(Alice Hammond Sharp, 한국이름 사애리시)와의 만남이다. 1871년 캐나다에서 태어 난 선교사님이라는 것이 더욱 감사하다. 1900년에 우리나라 왔다니 더욱 놀랍다.정말 열악하고 어려운 시절이었던 조국에 와서 사랑으로 섬긴 귀한 분의 헌신이 가슴 가득 감사로 전해온다.우리나라에  와 있던 선교사님과 결혼했는데  남편이 장티푸스로 별세한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2년 만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천안과 논산을 거점으로 교회, 육아원, 학교 등 20여개 교육기관을 세우고 여성지도자들을 양성하며 선교와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친 귀한 선교사님이다.
1910년 무렵 앨리스 선교사는 주일학교에서 성경구절을 줄줄 외우고 리더십이 뛰어난 8세의 유관순을 만났다고한다. 선교사님은  가정이 어려운 유관순을 양녀로 삼았고 공주로 데려와 같이 살면서 영명학교에서 2년간 가르친 후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에 교비 장학생으로 편입시켰다고한다. 앨리스 선교사와 함께 살던 시절에 신학문과 기독교서적, 잔다르크 전기를 접한 것이 유관순의 민족정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고 한다. 유관순은 이화학당에서 3년간 공부했으며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고등과 1학년이었다한다.
앨리스 선교사님에 대한 설명을 옮겨 와서 다시 살펴 보면

‘앨리스 선교사는 일제가 미국 선교사들을 추방하던 1939년, 68세까지 조선에서 사역했다. 은퇴 후엔 LA의 선교사 양로원에서 지내다 1972년 101세로 영면했으며 현재 패사디나의 납골묘원에 안치되어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앨리스 샤프 선교사 기념사업회’가 출범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유관순과 샤프 선교사 부부의 동상이 공주 영명고에서 1일 제막식을 갖고, ‘선교사 사애리시 전기’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또 LA에 있는 그의 유해를 한국으로 이장해 남편과 합장하여 선교유적지로 조성하는 일도 추진 중이다.
한편 3인의 동상은 재미동포 출신 조각가 심재현의 작품이다. 심재현씨는 1980~90년대 LA에서 시몬손 화랑과 LACA 갤러리를 운영하다가 영주 귀국, 조각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참으로 반가운 기사이고 감사이다.

 토론토에서도 100년 전 그 날처럼 목터져라 외치는 대한 독립 만세 운동이 재현되었다.

눈폭풍이 와서 바깥 외출도 어려운 날이었지만 많은 동포들이 함께 동참했다.

오늘 캐나다 토론토에서 이런 만세 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내 조국이 든든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 때의 감사와 감격을 100년이 지난 타국에서도 재연하며 그 때 만세 운동을 펼쳤던

모든 선조들께 감사하고 있다

특별히 유관순님의 그 귀한 헌신과 몸바쳐 나라 위해 희생한 그 나라 사랑을 감사하며 감격한다.

유관순애국자님께 감사!

이런 대단한 애국자가 되게 영향력을 끼쳐주신

앨리스 샤프 선교사님께 감사!

그리고 선교사님처럼 유관순을 돕고 또 다른 유관순을 많이 만들어 주신

모든 선교사님들과 나라 위해 몸바친 모든 애국지사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동과 감사를 드린다.

내가 오늘 이렇게 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내가 할 수 있는 조국 사랑은 무엇일까? 깊이 되새겨본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임해야겠다

무엇보다 조국과 민족 위해 내가 잘 할 수 있는 기도는

더욱 간절히 해야겠다.

유관순을 만든 캐나다 출신 앨리스 샤프 선교사님께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캐나다에 와서 사는 사람으로서 더욱 이 땅에도 도움이 될 일을

잘 찾아서 해야겠다.

양로원 봉사가 작은 섬김이지만 이 나라를 위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하고 있음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직 모르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많은 민족과 사람들 위해

내가 캐나다에 와서 사는 목적을 더욱 깊이 되새기며

나를 이 땅에 보내 주신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2019,3,5,조국 대한민국의 지금이 있기 위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유관순님의 나라 사랑과

유관순 곁에 사랑으로 함께 한 앨리슨 샤프 선교사님께 큰 감사를 전해 드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조국 사랑을 찾아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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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토론토 한인들이 배너와 태극기를 들고 영 스트릿을 따라 행진하고 있다. 사진 안휘승 기자님 사진 옮겨 옴,사진 감사합니다 )

 

2 Comments

  1. 데레사

    2019년 3월 6일 at 4:45 오전

    어디에 살던 우리는 3,1절과 유관순 열사를 생각 안할수가 없죠.
    같은 겨레라는것이 끈끈한 정이거든요.
    눈이 내리는데도 기념행사를 한 캐나다 교민들께 감사드려요.

    • 김 수남

      2019년 3월 8일 at 12:05 오전

      네,언니! 감사합니다.가슴이 뜨거워짐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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