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원술(袁術)비교론.
원술(袁術).자는공로(公路)로여남여양(지금의하남성尙水)사람으로조상대대로승상의지위를이어온지체높은관리집안의자손이다.원소(袁紹)의사촌동생이기도하다.십상시의난이일어났을때사촌형원소를도와환관들을주살시키고난을평정하는공을세웠다.뒤이어동탁이황제를겁박하여권력을전횡하며그에게후장군(後將軍)이라는높은직책을주었으나이를사양하고남양땅으로달아나그곳에서웅거하였다.

동탁의권력농단을참을수없었던각지방의제후들이군사봉기를일으키자원술역시분연히제일진으로참전을한다.그러나원체의심이많고옹졸한성격의소유자인그는사세삼공(四世三公)의지체높은집안의후손을강조하며사사건건여러제후들과대립각을세운다.

제후들의봉기로동탁을토벌한뒤이번엔사촌형인원소와반목을하자,여러제후들이중재를해보고말리기도해보았으나끝내제똥고집만피우자,이를보다못한조조까지합세하여원술을두들긴다.패잔병을겨우모아구강이라는곳으로달아나양주와수춘지방에할거하며스스로황제라고참칭(僭稱)을한다.

기왕황제가되었으면백성들을잘다스려야했으나황음무도하여굽히지않는절대옹고집을피우고군사들에게가혹하며백성들에게는가렴주구(苛斂誅求)하였다.자연히원술이다스리는지역이었던강소성과안휘성일대는무참히파괴되고황폐해져이즘의북한지역처럼아사자가속출하였다.결국부하도병졸도백성도모두떠나고여포와조조에게연이어패하며피를토하고세상과하직한다.그해가서기199년(단기2532년,漢헌제건안4년,신라내해왕4년,고구려산상왕3년,백제초고왕34년)이다.

오늘의박근혜를보라!어쩌면저리도원술의삶과비슷하거나비슷해지고있지않는지?원술이구국의일념을불태울때는그래도최소한의양심을지니고있었을것이고,사세삼공(四世三公)의지체높은자손으로태어났으니큰힘들이지않고그의주위에는장수와병졸들이자연스럽게모여들었다.이는마치박근혜가대통령의딸로서정치와는전혀무관한삶을살다가갑자기보궐선거로정치에입문하는과정과조금도다르지않고또그런과정을거치며사세삼공(四世三公)의프레미엄을만끽하는과정에서박근혜를주군으로모시는무리들이하나둘형성된과정이거의흡사하다.

물론원술은일부분공을세우는경우도있었다.십상시의난을평정하는것에힘을보태고또동탁의물리치는과정에서도가장먼저군사를몰고와근왕병(勤王兵)을동원하는원동력이되기도했다.박근혜역시지난야당시절당의대표지위까지올라당을지키는역할을해내고민심을얻었던점은높이평가할만하다.

그런데어느정도인심을얻고난뒤원술의옹고집이나박근혜의그것이나난형난제인것이문제이다.그놈의똥고집으로여러제후들과사사건건반목을하며몽니를부리다가결국미움을사게되는과정하며또하나유사한것은,원술이나박근혜나스스로의공있음을앞세우는즉공치사의모순에빠지고집안이나형제간에반목을일으키는것또한빼닮았다.

그러나무엇보다도원술의가장큰실수는제주위에사람이좀있다고스스로황제라고참칭(僭稱)을한것에있다.당시의시대적배경이난세(亂世)인것만은틀림없지만원술보다훨씬뛰어난영웅호걸도도회(都會)를하며힘을키우는때에참람(僭濫)되게도황제라고칭했으니뭇제후들의비난과공격을어리석은놈이어찌당할수있었겠는가.

박근혜는또어떤가?‘박사모’,‘친박’이니하는허접한무리들을동원내지끌고다니며벌써대통령노릇을하고있다.아니대통령보다더위세를떨치고있다.그래봐야겨우경상도(오해하지마라!경상도사람을폄하하고자함이아니다.나도경상도사람이다.)한쪽구석을점령할거하며참람되게도대통령이상의권위와권력을누리고있는것이다.

혹자는나의이런지적을견강부회하다고할것이다.그러나위에서예시했듯못난이원술과박근혜가얼마나흡사한정치적삶을살고있는지놀랍지않은가?이제남은것은원술의결코순탄치않았던말로(末路)만남았다.악담하는게아니다.그길로가느냐마느냐는박근혜자신의몫이고선택인것이다.

명심보감천명편에장자(莊子)왈,약인(若人)이작불선(作不善)하여득현명(得顯名)하면인수불해(人雖不害)나천필육지(天必戮之)니라했으니즉,만일사람이착하지못한일을해서이름을세상에나타낸자는사람이비록해치지않더라도하늘이반드시육(戮)한다고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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