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외출
지겨운장맛비로이번주는거의방안에서맴돈듯하다.이방에서저방으로,그러다지겨우면운무로뒤덮힌천등산을뻘줌히쳐다보고그것도지겨우면날씨악화로나오지않는스카이티브이에게짜증을내기도했던것이다.그런데오늘은쏟아지는햇살이눈부시게화창하다.이대로집안에머물면큰죄라도지은듯한기분이든다.

무엇을할까?며칠올라가보지못한‘축사’와계곡그리고과수나무들을좀살펴봐야겠다.아참!그러고보니오늘이우리마을5일장서는날이지(우리마을5일장은1일6일이다).오늘은장터에무엇이나왔을까?주섬주섬차림을하고먼저‘축사’로올라가보자.그렇게외출은시작되었다.

축사와나만의계곡은여전히제자리에있다.내가이축사를매입하고난후동네사람들은내게칭송이자자하다.우선파리가훨씬줄어들었다는것과계곡상류에서흐르는물을언제든지다시먹을수있을거라는기대감때문이다.향후잘좀정비해달라는부탁과함께.(준비하고축사에가는동안갑자기날씨가회색으로울먹이드만빗줄기가내려친다)어쨌건그냥떠먹어도좋을청정수가폭포되어흐른다.

자두는실하게익어가고,이번비바람에자연낙과된자두.

사과도제법알이굵어졌다.동네분들은제대로먹으려면선과를하며따주라고했지만,어차피오뢔는실기를한만큼그냥달린대로두리라.

주위를둘러보니밤나무의밤송이도뒤질새라모양을갖추었다.기특한녀석들….

축사를둘러본연후에기왕옥수수밭과고구마밭도둘러보았다.며칠전옥수수가웃자라기만하고옥수수가맺히지않아걱정스러웠는데….바야흐로옥수수가열리기시작한다.

저는옥수수만보면가끔씩콧잔등이시큰해진답다.그사연을다시한번올려야겠습니다.

지금은없어졌지만정부종합청사뒤쪽종로구내자동엔자그마한내자호텔이라고있었습니다.9.28수복일중앙청에자랑스런태극기가오르기전인민군마지막잔당은그내자호텔에은폐하여최후의발악을하고있었습니다.당시그곳은놈들의아지트였고마지막발악을하는인민군을그냥둘수없었던국군은그곳을향하여박격포를날렸던것입니다.불행히도그중의한발이내자호텔뒤쪽에자리한저희집으로날아와폭발해버린것입니다.6.25가발발하자미처피난을가지못했던저희가족은인민군치하에서벗어나기만이제나저제나기다렸는데뜻밖에박격포탄이먼저날아와버린것입니다.불행의그한발박격포탄으로어머니는왼팔을,당시수송초등학교(지금의종로구청자리)2년이든형님은오른쪽다리(대퇴부)가잘려나갔습니다.세살이었든저역시척추쪽에파편을맞았다고하는데이날까지아무런이상이나불편없이살아가고있습니다.

저희집안잔혹사를얘기하려는게아닙니다.불행은또다른불행을낳는다죠?그로인해병신이되버린나이어린형님은차치하고라도….불행했던집안얘기좀해야겠습니다.저희조모님께서보통분이넘으셨습니다.왼팔없는며느리를학대하며지독한시집살이를시켰습니다.한쪽팔없는며느리의살림살이는해도해도마음에들지않으셨던거죠.그런데문제는그기에그치지않았습니다.조모님은저희를끔찍이도귀여워하는게아니라미워했습니다.며느리는미워도손자손녀는그렇지않으실텐데저희형제들을뱀보듯냉정하셨습니다.심지어다리없는착하디착한형님에게“그때죽었어야하는데…”를입에달고다녔습니다.

피난지의저희집담장안에는조그만텃밭이있었고그텃밭에는우리가족들이먹을수있을정도의남새가철철이언제나자랐습니다.더불어감나무.돌배나무.호두나무.살구나무.앵두.자두.포도넝쿨등등의유실수도있었고특히여름철이면옥수수를늘심었기에그옥수수대가담장노릇을하기도했었습니다.여기까지는얼마나목가적인분위기입니까.옥수수가익을무렵이면여름방학이시작되었죠.그리고포도도거뭇거뭇익어가기시작합니다.옥수수가익어가고포도가익어가는계절은저와형님은수난의계절이되는겁니다.조모님은어머니를통하여그옥수수와포도에절대손을못대도록엄명을내립니다.그것은연례행사나다름없었고저희형제는어머니의고충을이해하고결코손을대지않았습니다.

제가성인이되고한가정을꾸려나가는가장이되었을때어머니는가끔씩제게그런말씀을하셨습니다.“너희가참천연덕스럽고일찍철이들었었어…”라고.할머니가그토록매년엄명을내리며아끼든옥수수와포도의쓰임새는다른데있었습니다.제게는저보다한살많은사촌형이있고또한살아래인고종사촌이있습니다.둘다외지에살았기에방학이면저희집으로모두옵니다.사촌형은작은아버지의장남이었고작은아버지는국책은행(산은)의중간간부쯤되셨으니꽤유복한터였고,고종사촌또한유복한집안의4대독자로서금이야옥이야길러지든놈이었습니다.아~!또한인물이있었습니다.시집안간과년한막내고모가있었는데,이여인네가팔없는올케에게시집살이를가중시키는그야말로“때리는시어미보다말리는시누이”역할을단단히하는그런고모가있었답니다.

화제를다른쪽으로돌려보겠습니다.중국의호텔뷔페식단(호텔비에포함된조식)은지방에따라대동소이합니다만어떤호텔의식단이든똑같은게하나있습니다.만두(딤섬포함)종류와삶은옥수수가그것입니다.저는식사를할때마다꼭옥수수한덩이를접시에담습니다.그리곤지난날을회상하며다른어떤음식보다먼저천천히음미하며먹습니다.일종의눈물어린옥수수인셈이죠.한번은사촌형이빠진사촌형식구와저와제마누라와중국을함께간일이있었죠.다음날아침식사때였습니다.우연하게사촌형수가다른맛난(?)것들은제외하고옥수수를몇덩이접시에올려놓고먹는것을보고불현듯지난날할머니와그리고사촌과고모들에대한생각이떠올라사촌형수에게“눈물의옥수수”얘기를해주었답니다.그런사정을듣는형수는처음듣는얘기라며깔깔거리고웃다간종래제눈가의슬픈흔적을발견하고함께눈물을찔끔거리기까지했답니다.그리고제가과일을썩좋아하지는않습니다마는과일중에특히포도를제일싫어한답니다.널브러진옥수수대와마당에흩어져있는포도껍질의잔상이뇌리에아직남아있나봅니다.손수건없이는못볼지난날의얘기를계속하려니자꾸눈물이나려고합니다.아련한어릴적추억입니다마는,며느리밉다고저희형제를박대하시던할머니도,고초당초처럼매운시집살이를하셨던어머니도,때리는시어미보다말리는시누이역할을단단히했던고모도,이런정황에서우유부단(나중에철들고보니….)하셨던아버지도이미이세상분들이아닙니다.그렇게며느리와그자식들을박대하시든할머니가어느날중풍으로쓰러지셨습니다.7년간대소변을받아내시며병간호를하신분은그래도울엄니셨다는얘기를끝으로썰을마치겠습니다.

그런그들이한테모여적당히익은옥수수를찌고포도송이를따는모습을보면저와형님은슬그머니동구밖으로나갑니다.그리곤두어시간놀다가들어와마당에널브러진옥수수대와포도껍질을바라보며입안에고이는침을그들에게들킬까겁내하며조용히삼키곤했답니다.그런광경을목격하는우리어머니의심정이어떠했겠으며먼뒷날제게“너희가참천연덕스럽고일찍철이들었었어…”라는말씀을가끔씩하셨던것입니다.

그원망스린옥수수를올해부턴실컷아니배가터져도좋을만치먹어도말리는사람이없겠지?ㅠㅠㅠ..

아이고!옥수수밭에서지난날의회상을너무오래한것같다.원래외출의목적지인우리마을장터로왔다.사실별로크지않은장터고장날이지만,조영남이노래가사처럼"있을건다있고,없을건없다."더구나오늘은장마뒤끝이라없는게더많다.즉장사꾼들이덜나온모양이다.뻥티기할배도아니보이시고,어묵장사할멈도아니오셨나보다.

평소보다오늘은다른날에비해5일장이조용하다.돌아보고오는길에꽃장사에게무궁화(외국산)한분을샀다.꽃이무척호화롭다.어찌보면접시꽃같기도하고….

이놈은며칠전전주인댁에놀러갔다가내년을기약하고한뿌리얻어온것인데,이장마철에신기하게도꽃을피웠다.무궁화찍어올리는가운데덩달아한컷당한놈이다.

오늘외출끝.그것도외출이라고피곤하다.낮잠이나한잠때려볼까????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