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망국병(6부)
어제일기에어머니를너무나쁜쪽으로만묘사했나보다.그러나아시는분은아신다.당시부모님들은대다수그렇게새끼들을길렀다.오죽했으면미운놈떡하나더주고귀여운놈매한대더때린다고했을까.다만각가정마다정도의차이가좀있을뿐이지.그렇게훈육(린치)을당했어도요즘처럼부모에게시해를가하는패륜아는없었다.새삼공맹을비롯한성현들의말씀을빌리지않더라도,이웃에울음소리가새나가지못하게입을틀어막고팼을지라도어머니돌아가시자사모곡이절로나오는게자식된도리고인지상정이다.다른이보다는훈육을모질게하셨던어머니는2005년추석을열흘앞둔그날멀리떠나셨다.사업이랍시고중국에상주할때꿈에가끔어머니가보였다.그런어느날꿈에서깨어나엉엉울고만다.그날의사모곡이아직도남아있다.

제목:어머니!어머니!

2001/08/25

지난새벽에당신을보았습니다.

매무새좋은치마저고리를곱게

차려입으시고어딜그리급히가시는지요.

어머니!어머니!몇번을불러도대답도

아니하시고뒤도돌아보지않던당신을

보았습니다.

깨어보니꿈이었습니다.가슴이덜컹내려

앉았습니다.쉰새벽아이들에미에게

전화를했습니다.당신에게어떤변고가

있으시냐고따지듯전화를했습니다.

가계신곳으로당장전화해보라는명령을

내린뒤20여분후에미로부터전화가왔답니다.

당신께서평안히계시다는전갈과함께…

초조해하던마음을안정시키자눈물이쏟아

졌습니다.한참을당신생각에꺼이꺼이울었답니다.

어머니!정말평안하시지요?오래오래사세요.

올들어당신께서여든셋이되시는군요.

남들은그런당신을두고장수하셨다고하겠지만

그럴지라도오래오래사세요.

3-4년전부터제가잠시귀국하면몇달만에보시는

자식놈을너어제어디갔다왔느냐고말씀하실때

저는당신께서농담하시는줄로만알고퉁명스럽게

대해드리곤했었지요.

점점도가지나치시며하신말씀또하시고,거리를

헤매시기시작하셨고,마치어릴적제게달아주셨든

미아방지용명찰같은,목걸이와명찰을상의에

달아드린후종로는차치하고라도천안,포천,수원

가평등지에서연락이오면투덜거리며그곳으로당신을

모시러갔던기억들이새삼스럽군요.

그래도그때엔당신을사랑하셨던,한갑자를넘게해로

하시며금슬지정을나누셨던아버지가살아계셨었지요.

그분께서금년초에밭은기침이자꾸나오신다며병원을

찾았을때폐암말기라는사형선고를받으시고2달여남짓

투병을하시다가지난3월돌아가시기전당신을먼저

여위고죽어야한다며한걱정하시다가눈도제대로

못감으시고영면하셨을때,돌아가신분이누군지도모르시고

문상객들에게헤식은웃음과농으로시간을보내시던당신을

보고돌아가신아버지의슬픔보다더큰억장이무너짐이

있었답니다.

육십년을넘게두분이서해로를하셨으면무엇하나요.

정작사랑했던낭군님께서돌아가셨어도슬퍼하실줄

모르시고희희낙락(?)해하시던,가이없는당신을뵙고

전그날세상에서가장무서운병은치매라고단정지었답니다.

아버지를선산에모시고전일을빙자삼아이곳으로급히

떠나오고가족회의에서당신을요양원으로모신다고전갈

받은뒤수일만에그쪽으로가셨다는에미의전화를받고

전그날눈이붓도록울었었답니다.

저는그날에미와울면서약속을강요했습지요.아무리

바쁘더라도한달에3번은직접찾아뵈라구요.

그약속이제대로지켜지는지는잘모르겠습니다마는,

그래도다녀와서당신께서편히계신다는얘기에또눈물을

찔끔거린답니다.

금년추석때는꼭귀국하여당신을찾아뵙겠습니다.

당신의두손을부여잡고실컷울어볼까합니다.

어머니!어머니!그때뵙기로하겠습니다.

그리고오래오래사셔야합니다.또눈물이나는군요.

독자여러분!전결코효자가아닙니다.오히려불효가

크지요.그러나간밤꿈에어머니를뵙고하루종일심기가

불편하여몇자올렸습니다.

孝於親이면子亦孝之,身旣不孝면子何孝焉이랍니다.

(효어친이면자역효지요,신기불효면자하효언)

내스스로가어버이에게효도한다면내자식이또한나에게효도를하지만,

내가어버이에게효도않는다면자식이어찌내게효도하기를바라리요.

효도합시다!!!!!!여러분!!!!

어제신문에난기사를보고울분을참지못하고그만어머니께행패(?)를부린게너무죄스러워반성문비스무리올려본다.각설하고….

요즘이야재주가있으면무슨엔터테이먼트회사에서모셔다가가수로길러주지만,당시로는막연히(설령재주가있다고해도…)가수가되겠다고하여되는것은아니었다.돈이많아스스로LP판을만들고이방속국저방송국에광고하는경우도있지만,비록알바일지라도무대에서려면예총산하‘가수분과위’의코르위붕겐(Chorübungen)시험을치고실기테스트를거쳐자격증을득한후에활동을해야했었다.그때가수분과위원장으로계셨던분이명가수‘최희준’선생이었다.당연히나자신도절차를거치고자격증도득했던것인데그사실을아신아버지는절연을선언하리만큼극심한반대를했던것이다.이차저차갈등을느끼던그때그런사건이벌어졌고…무대에서는자신감마저도상실하고만것이다.

학문도포기하고이제부터내가할수있는것은무엇일까?고민에빠지게되었다.내가근무할당시의‘동립산업’이라는회사는지금의삼성이나현대가범접하지못할만큼큰회사였다.또당시로는현대자동차라는간판도없었고오류동근처에‘하동환자동차’라는,드럼통을펴서조각을댄후버스차체를만드는회사정도였으니말해무엇하겠는가.

내가근무하는부서는‘자재부’였다.비록고졸에말단사원의하나였으나‘자재부’라는데가참재미있는부서였다.솔직히월급보다부수입이더많은부서였다.나이가좀더들었거나세상물정(?)을좀더알았더라면아마도쇠고랑을찼을지도모를엉성한비리가많은그런부서였다.그럼에도나는그회사를그만둔다.가회동에서구로동까지출근을하려면새벽6여섯시에출발하여버스를(지하철이없었던시절)세번이상갈아타고다시20분을걸어야출근도장을찍을만큼고된생활이었다.어쩌다전날술이라도한잔한날이면도대체지각을피할수가없었다.상사는상사대로나는나대로스트레스가쌓이던어느날사직서를내고조용히물러났다.

그럴수있었던것은우선집안의형편이그나마풀려서절박감같은게없었기때문이다.내가가족을부양해야했다면그렇게쉽게직장을그만두지못했을것이다.3-4개월을무위도식하며세월을보냈고다시직장을잡은것은대한민국굴지의도자기회사였다.물론‘동립산업’의자재부경험을살려내가발령받은부서는배운도둑질이라고역시‘자재파트’였다.

지금이야모든게전자시스템이지만그땐은행의통장마저도수기로만들어지던원시시대(?)인만큼비리들이정말많았다.솔직하게그시류에편승아니할수없었다.월급보다많은부수입,술,접대,???등등…..어린나이가감당하기에는도가넘는환락적(?)요소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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