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과 관창 vs 제갈량과 사마의

계백장군이지휘하는황산벌싸움에서신라군은4전4패였다.마침내품일(品日)장군은자신의아들관창에게선봉이되기를독려한다.관창은비록화랑이라고하지만아직16세의어린소년에불과했다.결국백제군에사로잡힌관창은계백의계하에꿇리어졌다.어린관창의용맹함에탄복해죽이지않고돌려보낸다.그러나분기탱천한관창은다시군장을정돈하고백제군에게돌진한다.몇차례좌충우돌했지만중과부적이었다.어리고싸가지없는관창의행동에계백은관창의모가지만말안장에매달아돌려보냈다.관창의주검앞에신라군은광분했고끝내백제군을대파시키고백제는멸망한다.그해가서기660년단기2993년의자왕20년이다.

좀다른경우다.

촉의제갈량과위의사마의가국운을기우려맞장을뜰때,북원과위수의첫번째싸움에서는제갈량이사마의에게패한다.제갈량은그뒤네차례의전투에서4전4승을거두고위나라의젖줄인위수까지손아귀에넣으며마침내오장원(五丈原)에주둔하게된다.그러나연패를당한사마의는진을치고꼼짝을않으며싸울생각을않는다.이때제갈량은사마의가겁을먹고전투에임하지않자,사신을보내전투를벌이기를촉구한다.사자를통해‘여자의치마저고리’를보내며싸울의사가없으면그것을받으라고약을올린다.그러나삼K의는오히려그사신을극진히대접하며제갈량의근황을염탐해보니제갈량이깊은병에빠져있음을알고자신의승리를예감한다.과연얼마후제갈량은오장원의별이되어떨어지고만다.사마의는4전4패를극복하고실지(失地)를회복했다.그해가서기234년(단기2567년,중국위(魏)명제청룡2년,신라조분왕5년,고구려동천왕8년,백제고이왕원년)이다.

뭐야?뭐야?노건호저자는4전4패를한신라군의관창일까아니면제갈량의꼼수를이겨낸사마의일까?계백장군이어리고싸가지없는관창의행동을묵과했으면어땠을까?백제의멸망을좀더연장할수있었을까?아니다.다시생각해본즉,어쩌면김무성이관창이고노건호가계백역할을한것이다.

김무성이죽은노무현의제삿날참석한것은현정권의사신격이다.그것도최고지위의사신.사신을죽이거나망신을주어쫓아내는경우는딱두가지뿐이다.전력이절대적우위거나그반대이다.그런데가끔은이두가지를헷갈려하는띨띨한놈들이있다.

적의사신을죽이지않는것은거의불문율이다.그러나이불문율을깨트리는경우가왕왕있다.설령죽이지않더라도코를베거나귀따위의신체일부를훼손하여망신을주기도한다.따라서절대적우위에있더라도상대를분노케하면된서리맞는경우가허다하다.하물며쥐뿔도없는놈들이순간의감정을억제하지못하고허세를부리며사신의목을친다면그것은섶을지고불속으로뛰어드는격이다.

백제가관창의모가지와몸통을분리시킨것은최악의장면이었다.4전4승에지나치게고무되어있었다.반대로4전4승한적의사신에게개망신을준사실은영원히백기를든미친작태다.

제아비의제삿날나타난김무성의본심이진정한추모행위가아닐지라도조롱을하고면박을준것은계백이관창의목을친결과와다름아니다.4전4패를한사마의는자신을조롱하는제갈량의사신을역으로극진히대접하며기회를엿본것으로최종승리를거두었다.

한마디로전략부재다.4전4패가두려운게아니라이따위행태를보이면40전40패는커녕400전400패….쭈~욱.차기총선그리고대선?ㅋㅋㅋㅋ…(울건너이반장네똥개웃는소리)

앞집이반장똥개가깔깔댈정도의,저따위로전략부재인야당이존재하는한,나라의운명이나국운은쇄락하고마는것이다.건전하고튼실한야당이있음으로대한민국이영원하지않겠어?속이상해서해보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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