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님도 승지라는 놈도 도낀개낀

첫 번째 이야기,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도덕시간에 동래부사 송상현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정발장군이 사수하던 부산진성이 함락되자 왜구들은 다음 목적지 동래성으로 짓 쳐들어 왔지만 성문은 견고히 닫혀있고 송상현이 진두지휘하는 군관민들은 굳건히 지킬 뿐 싸울 생각을 않는다.

그때 왜구들은“‘전즉전의 부전즉가도(戰則戰矣 不戰則假道)’즉 싸울 테면 싸우고 싸우지 않겠으면 길을 비켜라”는 플랜카드를 성문 앞에 세우자, 그것을 내려다 본 송상현은“‘전사이가도난 결사항전(戰死易假道難 決死抗戰)’즉,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키기는 어렵고 죽기를 다해 싸울 것이다”라는 피킷을 들고 시위를 한다. 약이 바짝 오른 왜구가 총공격을 해 오니 오래지 않아 동래성은 깨지고, 사태의 심각성을 안 송 부사는 관복으로 갈아입고 성의 문루에 단정히 앉아 왜구들의 칼날을 온 몸으로 받아 낸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그랬던 임진왜란이 끝나고 10년 뒤 쯤 광해군이 15대 임금으로 등극하고 얼마 뒤 명나라가 후금(後金)을 치기 위해 조선에 원병을 요청한다. 조정 내부에서는 원군파병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온 사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병을 결정하게 되었고 이때 도원수로 임명되어 출정한 이가 강홍립(姜弘立)장군이다. 그러나 조명(朝明) 연합군은 부차(富車) 전투에서 대패하고, 강홍립은 조선군의 출병이 부득이한 사실을 통고한 후 후금에 항복하였다. 투항한 얼마 후 후금에 억류된 조선군 포로들은 석방되어 귀국하였으나, 강홍립은 부원수 김경서(金景瑞) 등과 계속 억류되었다.

몇 년 뒤 국내에서는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실각을 하였고,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강홍립은 후금군의 선도가 되어 입국한다. 난중에 그는 유창한 되국 말로 강화도에서 조산과 후금의 강화(講和)를 주선한 공을 세운다. 그러나 조정 내에서는 적지에서 포로로 잡혀 고생한 강홍립을 옹호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조정에서는 그를 후금에 투항한 역신으로 몰았고 모든 관직을 삭탈하였다.

세 번째 이야기,

따끈따끈한 조선일보 기사 한 토막. 교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으로 꼽히던 강남·서초권 소위 8학군 내의 학교 선호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 학교로 배정받기 위해 교사들이 수년씩 대기하거나 다른 지역을 돌다가 겨우 부임했는데 최근상황이 달라졌다.

교사들이 강남권 학교를 피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지역의 일부 극성 학부모들 때문이라고 한다. 서초구 한 중학교 교사인 C(29)씨는 “치마를 입으면 치마를 입었다고, 바지를 입으면 바지를 입었다고 항의 전화와 메시지가 온다”며 “마치 시어머니 20명에게 감시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고, 심지어 어떤 학부형은 시험점수까지 올려라 내려라 간섭을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적과의 전쟁 중에 죽음을 두려워 않고 싸우는 게 백성(국민)의 도리고 충성이다. 더구나 나라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신료(관리)라면 일반백성과는 달리 그 충성도가 더욱 공고해야 할 것이다. 이미 승부가 빤한 전쟁에서 결사항전이라며 버티는 것은 어쩌면 미련한 짓이다. 충신이라면 그 미련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충성도 살아 있음에 해야 하는 것이지 죽고지면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동래성에서 송상현이 왜구의 칼날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고 왜란의 억지력에 얼마만한 보탬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송 부사는 주군(나라님)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고 후세 사람들은 그를 충신으로 모시고 지난날 도덕책에까지 기리고 있는 것이다.

강홍립 장군은 동래부사 송상현과는 달리 실리를 택했다. 물론 전쟁에 패하기도 했겠지만 우선 살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살아있어야 주군에게 진충갈력할 게 아닌가. 그가 살아 있었기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전쟁 막바지에 강화(講和)를 끌어내는 공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강홍립이 적에게 투항한 것은 광해군으로부터 그린카드(야구용어, 알아서 도루 하라는…)를 발급받아 두었던 것이며 형세에 따라 판단하라는 밀명을 받은 터였고 오히려 적진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적의 동정을 주군에게 보고해 왔던 것이다. 나라에서 훗날 그 사실을 알고 그 명예를 복원 시켜 준다.

동래부사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강홍립의 선택에 점수를 줄 것인지? 헤아리기 힘들다. 아니면 누가 더 뻘 짓을 했는지도…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사람 다 주군을 위해 충성을 다 한 것이다.

 

극성, 극성 그런 극성 없었다. 오죽했으면‘치맛바람’이라고 했을까. 이 단어가 근간 들리지 않기에‘치맛바람’이 없어진 줄 알았다. 8학군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일종의 롯또 당첨이나 다름 아니었다. 그곳 출신이면 원하는 대학 다가는 것으로 알만큼 알찬 교육을 받는 지역으로 알고 있었다. 어디 학생뿐이겠는가? 그곳에 부임하는 교사들도 그랬던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우수교사였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데 회피지역이라니….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8학군 교육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다. 자업자득이다.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지나친 의욕을 발휘한 것이다. 과유불급이 이런 사태를 몰고 온 것이다. 아무리 고슴도치도 제 새낀 함함하다지만 자신의 치마폭에 감싸고 있으면 어쩌자는 얘긴가. 저렇게 과보호로 키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꼭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나라님이 승지더러 의금부의 감찰을 착실히 받으라고 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죄가 있건 없건 나라님이 친국하자는 것도 아닌데 명색 나라님을 가장 지근에서 모시는 신료 중 한 사람이라면 나라가 이토록 시끄러우면 결사항전 했던 송상현의 심정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정말 죄가 없다면 강홍립 장군처럼 오히려 적정을 살피며 주군에게 충성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라가 승지 한 사람 때문에 이토록 시끄러운데 저걸 언제까지 치마폭에 주려 끼고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로 키우시려는지? 아무리 개인적으로 능력 있고 귀엽다지만 나라(국민)살림이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닐까? 더구나 제 한 목숨 잃는 게 두려워 나라님의 치마폭으로 숨어드는 저런 자의 행태가 나라님에게는 충신으로 보이는가? 저 하나만 희생하면 온 나라가 조용할 텐데…. 나라님의 치마 속도 승지의 속내도 정말 뭔 속인지 모르겠다. 그래서,,,“나라님도 승지라는 놈도 도낀개낀”이라고 해 보는 것이다.

1 Comment

  1. 데레사

    2016년 8월 21일 at 11:16 오전

    비단 학교선생님들만이 아니에요.
    이미 퇴직한지 16년째 접어들고 있는 저도 강남쪽에서 근무할
    때는 하루에도 모가지가 열두번도 더 떨어졌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남편에게 일러서 너 모가지 떼
    버리겠다는 아줌마들 무척 많았어요.

    좀 산다고, 돈 좀 있다고 갑질하는 인간들, 모조리 귀신이
    잡아 갔으면 합니다.

    요즘은 죄지은 사람이 더 고개를 쳐드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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