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오늘은 뭘 해 먹나?

몇 달 전 가입한 카페에서 소위‘삼식이’문제로 다툰 적이 있었다. 15년 넘게 알고 지내던(번개팅도 가끔씩…) 여성회원 한 분이 어느 날 부군(신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근무했으며 직접 뵙지는 못 했지만 글을 주고받은 적은 있었다.)의 얘기를 카페에 올렸는데 결론은 그 부군이 정년퇴직 후‘삼식이’가 되었다는 사실과 그런 삼식이 남편을 원망 내지 비하하는 조의 글을 올린 것이다.

20년 가까이 지켜본 그 여성회원은 내가 아는 한 전업주부로 부부애도 지극했을 뿐 아니라 자녀들 교육기도 가끔씩 올리는 말 그대로 요조숙녀였는데 그런 글을 올리기에(내가 아는 한 절대 그럴 양반이 아닌데….)좀 의아하기도 또 아무리 남의 가정사지만 남편을 비하하는 조의 글에 심드렁해지고 오기까지 발동하여 좀은 비딱한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그 댓글이 도화선이 되어 그만 카페의 논쟁이 되고 결국 전쟁(?)으로 치달아 또 다른 여성회원 한 분이 자퇴를 하는 불상사로 번지기 까지 했다. 남의 부부가 다투든 지지고 볶든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오지랖이 넓은 놈이다.

그 후의 동태를 조심히 살펴보니 아내 되는 양반의 불만이 아주 틀린 얘기가 아니며 한 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했다. 부군이 직장에서 건재 했을 때와 은퇴 했을 때의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짜증이 나 게도 생겼을 글(거짓말 할 분은 아니다)을 후속으로 올려 주는데, 나중엔 부군 되는 사람이‘저런 사람이었나?’하는 좀은 한심한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어제 이 시각 조선닷컴 맨 꼭대기 기사가 “[주간조선]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이다. 내용을 다 전재할 수는 없고…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 성공한 CEO가 은퇴한 경우 그리고 혼자 살다가 고독사한 경우 등의 사례를 든 기사다. 기사의 제목이 그러하듯 은퇴 후 대화를 할 상대가 없어 방콕族이 되어 삼식이도 되고 심지어 홀로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를 안타까워하는 기사다.

사람 살아가는 방법이 다 똑 같을 수는 없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이런 산골에 눌러 앉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나 원동력은 무얼까? 참으로 외람되고 건방진 얘기지만,,,,

첫째, 욕심을 버린 것이다. 아직 경제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체력과 능력이 있다고 자부한다. 나는 그것을 내려놓았다.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명멸하는 도시가 왜 그립지 않겠는가? 때론 시오리 먼 길의 면소재지(나는 명동이라고 한다), 명동의 화려하지 않은 불빛에도 충동이 일 때가 있지만 그 또한 참아야지 별 수 있겠는가?

둘째, 죽으면 썩어질 육체를 가급적 혹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움직일 공간 내지 터전을 만들었다는 것과 더하여 괴발개발 또는 중언부언 할 수 있는 이런 게시판을 알고 오늘도 열심히 썰을 풀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 마누라는 나의 이런 썰질을 몹시 싫어하는 축이지만 그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강단 또한 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삼식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며칠 전‘산골일기’에서 집안 사정으로 아내와 주말부부가 되었다고 했지만, 만약 삼식이었다면 주말부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家長)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족 또는 그 집안의 어른을 이름이다. 남자로 태어나 장가를 가 아내를 맞고 아들딸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기에 가장(家長)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남자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가장을 잘못 이해하거나 시대가 바뀐 줄 모르고 그동안 돈 벌여 먹이고 입혔으니 편히 앉아서 대우 받겠다는 가부장적 행태를 보이는 게‘삼식이’인 것이다. 손발이 없다면 모르지만, 마누라 부재 시에 주방에 들어가면 먹다 남은 반찬 있을 터이고 밥만 퍼서 먹으면 될 것을 그것조차도 못하고 삼식이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차라리 접시 물에…그게 아내들을 편하게 해 주는 바른 길이다. 잠깐!!!!!(지금 쌀 씻고 전기밥솥 누르고 왔다)

아이고! 어째 하다 보니 많이 흥분했다. 썰 제와는 달리 한참 핀트가 빗나갔다. 원래 태생적으로 육류나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아내가 없으면 그런 것들 먹을 생각을 않는다 . 손도 많이 가고,  따라서 아내 부재 시에는 주로 야채류로 직접 만들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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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는 노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이를 제 때 따먹지 않아 노각화 한 것들을 나 몰래 버리는 걸 몇 차례 자소리 했지만 그 버릇 못버리는 모양이다. 어제는 아내가 버린 노각을 주워다 소금에 절이고 꼭 짜서 즉석 오이지를 했다. 오돌오돌 식감이 제대로다. 오히려 마누라가 만든 오이지 보다 훨싼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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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채소(?)는 콩나물과 시금치다. 면소재지 농협마트에 가서 시금치를 사렸더니 한 단에 3,850원이다. 에그머니! 깜짝 놀라서 내려 놓고 만만한 콩나물을 사서 무쳤다.  삶아서 찬물에 몇 차례 행구고 파 송송 마늘 몇개 다져 넣고 약간의 소금, 참기름, 고추가루 그리고 나는 특별히 간을 고추장으로 맞춘다. 소금은 밑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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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가 없으면 평소 내가 즐겨먹는 식단이다. 밥이야 당연한 거고, 고구마 줄기와 겉절이 노각무침은 내 작품이다. 접시 하나에 밥과 반찬을 담고(마누라가 있어도…) 먹으면 위생상 좋고 무엇보다 설거지 꺼리가 별로 없다. 이걸 못하고 삼식이 소리를 듣나? 못난 인사들….

 

1 Comment

  1. 데레사

    2016년 8월 24일 at 11:22 오전

    참 잘 하십니다.
    해 놓은 밥도 못 차려 먹는 남자분들도 많은데
    반찬까지 이렇게 맛있게 만들다니, 대단합니다.

    서로 늙어가면서, 서로 어디가 조금씩 아파오는데
    전적으로 여자에게만 맡기면 군소리가 튀어 나오게
    마련입니다.

    친구들이 그래요. 최소한 자기가 먹은 밥그릇이라도 싱크대에
    좀 넣어 주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의외로 차려주는 밥 외는
    안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게 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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