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노느니 염불하기

귀촌 6년 차 아무리 귀촌이라고 하지만, 먹고 놀기만 할 수 없어 용돈벌이라도 해 보겠다고 금년 처음으로 시작했던 게 고추농사였다. 염천 더위를 참아가며 열심히 고추농사를 지은 결과 마을에서 제일 먼저 농협공판장으로 출하를 했고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해 난생처음 영농을 했다는 기념비적인 날을 기리기 위해 입금된 금액의 두 배를 더 들여 마을잔치(?)를 벌였었는데 그 다음날부터 입금된 내역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자‘내가 두 번 다시 영농을 하면….’스스로 개xx라고 다짐을 했던 것은 지난 월초였다.

사실 첫날 입금된 것도 작년(주변 분들의 전언에 따르면…)시세의 60-70%밖에 안 된다고들 했지만 그게 대수일까? 금액의 다소를 막론하고 내가 직접 농사를 지어 푼돈이라도 만들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그 금액에서 다시 대폭 경매가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니 맥이 풀리고 눈동자까지 풀렸던 것이다.

그러나 역지사지라고 당시 조금만 생각을 달리 했다면, 즉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학의 원론을 대입해 보면 아주 성질 낼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매년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모든 작물의 수매가는 풍년일수록 공급과잉이고 반하여 느긋한 소비자의 수요는 줄어드니 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곳 산골만 해도 그렇다. 이 고장의 명물은 한약재이지만 그래도 지을 것은 고추농사밖에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고 그나마 큰 기술이나 재배법 필요 없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바로 고추농사인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공급과잉일밖에…. 더구나 금년은 비도 없이 뙤약볕이(고추와 비는 상극이란다) 고추농사를 더 푸지게 했으니 경매 초기와는 달리 가격이 뚝뚝 떨어졌을 것이다.

지어 놓은 고추농사를 어쩌겠는가. 속으론 불덩이가 치솟지만 그래도 몇 차례 나누어 그렇게 27박스를 경매에 붙였더니 그럭저럭 합계 백만 원 조금 미치지 않는 금액이 입금되었다. 거시기할 때 비하면 하루저녁 이쑤시개 값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내일 70노인에겐 큰 금액이고 더구나 그 금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렸던가.

그런데 그 돈마저도 마누라는 농약이며 모종 값을 따지더니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양 홀랑 챙기며 내게 수고비로 겨우 십만 원을 주며 서울로 떠나간 것이다. 내 비록 엄처시하는 아니로되 모든 경제권을 마누라가 쥐고 있으니 쓰다 달단 얘기 한마디 못하고 양쪽 볼에 아직 여물지도 않은 밤톨을 물은 듯“애개!! 겨우??”라는 볼 맨 소리 딱 한마디밖에.

그렇게 서울로 떠났던 마누라에게 며칠 후 연락이 왔다.‘용돈 벌이 좀 해 보겠느냐?’는 식의….즉 고춧가루 200근을 주문 받았다는 것이다. 고춧가루 200근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고추 40상자(800kg)가 필요하다.

‘노느니 염불 한다’고, 죽으면 썩어질 몸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OK사인을 보내고 작업착수에 들어갔다. 내 소유의 고추밭을 훑어보니 대충 10여 상자는 더 딸 수 있을 만큼의 고추가 매달려 있다. 하지만 3남매 고루 나누어 주고 우리도 먹으려면 안 될 일. 하여 울 건너 이 반장 형님에게 상자 당 3만원에 40상자를 주문하여 지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원가계산:

물고추 40상자 x 3만 =120만원(물고추 20KG 한 상자는 5근의 고추가 나옴)

40상자 x 5근 =200근

고춧가루 1근 =1만원(태양초는 만2.3천원 받아야 한다지만 모두 지인들이니…)

200근 x 1만원 =200만원

200만원 – 120만원 = 8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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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total: 80만원(이익금?)

고춧가루 빻기 근/6천원 x 200 =12만원

800,000 – 120,0000 =6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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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total:680,000.-(왕복 운반비 기타 제반 비용 생략)

 

엊그제 일요일 아침, 간밤 이곳에 내려온 마누라 용돈을 벌기 위해 아침 일찍 고추건조장으로 출근하는 나를 보고 측은 했는지“내년부턴 절대 이런 거 하지 맙시다.”란다. 즉 위의 원가 계산은 마누라의 녹슬지 않은 암산에 의거한 계산을 문자로 정리했을 뿐이다. 덧붙여‘겨우 돈 68만원 벌자고 구슬땀을 흘리지 말라’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대기업에서 꽤 잘나가셨다는 우리 김포사돈어른은 70연세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댁 주위의 가구공장엘 다니시며 그 험악한 분진을 뒤집어 쓴 사진이랑 한 달 열심히 일하신 결과물 월급봉투를 자랑스럽게 올리며 젊은 백수들의 귀감이 되시고 우뚝한 사표(師表)도 되신다. 때론 놀토(이전의 반공일)도 없이 열심히 하셨건만 200만원이 채 안 되는 봉투의 겉면을 천하에 공개 하시기를 자랑스러워하신다.

 

200만원과 68만원에 대한 함의와 진실

사람들은 늘 겉에 드러난 결과로만 따지려들고 평가하려 든다. 우리 사돈 가끔 사위 보다 어린 과장이라든가 책임자라는 자가 땍땍거린다며 호소하시는 경우가 있다. 가끔 아파트 경비원들이 젊은 입주민들에게 甲질을 당하거나 행패를 당한다는 보도를 보기도 한다. 같은 맥락이다.

내 말이, 200만원을 벌기 위해 구슬땀은 땀대로 가끔 자식 같은 상사에게 수모나 면박을 받는다고 가정한다면, 68만원의 순수한 땀의 대가는 알토란같은 금액이 아닐까? 사돈어른 200만원을 벌기위해 8시간의 근무 외에 평균2시간의 잔업을 하시는 모양이다. 대충 월/250시간 나누기 200만원=(시급)8,000원이다.

고추말리기는 日/두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까짓 세 시간으로 치자. 그리고 15일이면 충분하다.(비닐하우스) 즉 45시간 투자하면 된다. 680,000 나누기 45=(시급)15,1111…..땀을 흘리며 일 하다가 이웃 친구가 오면 농담 따먹기도 하고, 냉장고의 막걸리나 깡통맥주 꺼내서 건배도 하고, 남는 시간(8시간 기준)김장용 배추나 무도 돌보고, 쪽파도 심고, 멀칭에 걸려 엎어지면 오늘 일진이 사나운 모양이다 하고 쉬기도 하고 쉬다가 졸리면 잘 수도 있고…..어떤 놈이 甲질을 하거나 잔소리 하는 놈(년)도 없고…..이런 게 “노느니 염불”하는 게 아닐까?

나를 긍휼히 여기사“내년부턴 절대 이런 거 하지 맙시다.”라는‘왕비’말씀이 황공하고 망극하기는 하지만, “마마! 그런 하교 거두어 주소서!!! 이런 노동력으로 이만한 벌이(시급)가 어디 있겠나이까? 다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68만원의 홀랑 삼키지 마시고 용돈을 좀 더 주시는 쪽으로 통촉하시옵소서!!! 마~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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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태양초를 열심히 말리고 있다.  다만 마누라가 노력의 대가를 좀 더 올려 주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3 Comments

  1. 북한산 78s

    2016년 9월 8일 at 7:43 오후

    오 선생님 정말 대단 하십니다.
    저도 직장생활 30여년넘게 근무하고 올해정년 퇴직인데 앞으로 무엇을 할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오선생님같이 귀촌을 해서 왕년에 해본 농사를
    조금하면서 살아보고 싶은 아내가 절대로 시골은 안간다고 합니다.
    가려면은 혼자 내려 가라고 합니다.

  2. 바위

    2016년 9월 26일 at 3:12 오전

    훌륭하십니다.
    오 병규 선생님.
    선생은 타고난 이야기꾼입니다.

    열심히 하시고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박문규 선생에 대해선 저도 많은 감동 받고 있습니다.
    오 선생님, 제 전화번호 알고 게시지요.
    다음에 서울 오시면 소주 한 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건강하십시오.

    • ss8000

      2016년 9월 29일 at 4:22 오전

      과찬이십니다. ㅎㅎㅎ..
      박 선생님이야 말로 진정한 이야기꾼이셨지요.
      네, 언제 기회 닿는 대로 일배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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