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4부)

큰딸아이 어릴 적 친손녀 거들떠보지 않고 정성을 다 해 보살펴 주시든 장모님을 뵐 때마다 외람(시 건방지게도)되게도 나중 나이 들면 장모님을 내가 모시겠다고 공공연히 약속 아닌 약속을 했던 적이 있었다. 솔직히 그 당시는 그 마음 100% 믿어도 좋을 만큼 처가 식솔이나 아내도 은근히 반겼었다.(이미 그 때부터 장모님은 자식 며느리들과의 관계에 틈이 크게 벌어져 있었고, 나는 제대로 사정도 모른 채 그런 장담을 했던 것이다.) 장모님 역시도 ‘나는 사위한테서 죽을껴!!!’라며 후일 당신을 돌봐줄 후원자가 있음을 자랑스러워했었다.

인천에서 조그만 제조업을 하다가 결국 몽땅 말아 먹었던 적이 있었다. 말아먹기 얼마 전 거래처에서 수령한 꽤 큰 금액의 어음을 작은처남에게 할인한 게 있었다. 그런데 그 어음이 부도가 났고, 처남은 일손을 놓고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신 장모님은 사흘밤낮을 우리 집에 죽치시며 당신 아들 빚부터 갚으라며 생떼를 쓰시는데….(지금 그때를 생각해도 억장이 무너지고 눈물이 찔끔 난다) 집도, 절도, 공장과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이미 은행과 채권자에 넘어가고, 방안의 세간이나 기물엔 빨간딱지가 붙어 있고, 체불 노임에 노동청에 고발당하고 부정수표단속법 위반혐의로 경찰에 쫓기는 신세임을 아시고도 그 아끼고 극진히 돌보던 어린 외손녀(자)들이 치켜보는 가운데 오로지 당신 아들 빚 갚으라고 호통을 치고 생떼를 쓸 때 장모가 아니라 지옥에서 온 사자나 야차 같은 기분이 들었고,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린 생각을 하면 장모님을 다시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훗날 이자는 주지 않았지만 그 금액을 깨끗이 갚았고 대신 집안의 가구와 3남매 결혼 혼수 가구 및 친인척 지인들에게 가구점 선전을 하고 하다못해 서랍장 하나라도 사라며 은근짜로 압력(?)을 넣으며 월급 없는 영업사원으로 큰 공을 세운 것은 나중 이야기며…그래서 작은 처남은 날 더 경외(敬畏)하는지도 모른다.)

지난 월요일 이런저런 썰을 게시판에 올리고 미명(未明)에 영농준비를 한 뒤 고추밭에 나가 찬이슬에 옷을 적셔가며 고추를 땄다. 그렇게 아침식사도 거르고 네댓 시간 작업을 하고 늦은 아점(브런치)을 먹기 전, 전화 온 곳(혹시 서울 집의 마누라에게서 온 것이 있는지…)이 있나 확인을 해 보니, 밭에 나간 새벽녘에 큰 매형에게서 온 흔적이 있다. 순간적으로 집히는 데가 있다. 매형과는 그런 신 새벽에 전화를 할 일이나 할 만큼 인간적 관계가 돈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새벽 전화와 한밤의 전화는 괜히 불길한 전화가 더 많기에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새벽과 한 밤중 전화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가급적 피하라고 충고해 준다.

어쨌든 이미 마음을 다잡았지만 가슴은 쿵쾅거리며 뛴다. “전화를 주셨네요!”라는 나의 첫마디에 전화기 저 너머에서‘하하하’ 인지 ‘흐흐흐’인지 구분이 안 되는 울부짖음이 공명되어 울린다. 어떤 공간 속의, 그것도 큰 공간에서 울려오는….순간 그곳이 틀림없는 장례식장일 것이라는 생각과 동시‘아! 그예 떴구나.’하는 생각이 교차 될 때“자네 누이가 오늘 새벽에 갔어!”란다. 이미 모든 사실을 유추하고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급히 서울의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누나가 누워있는 곳을 다녀왔고 그렇게 누나를 멀리 떠나 보냈다.

3남4녀 중 즉, 7남매의 둘째 큰누나였다. 아직 살만한 나인데….이제 일흔넷. 부모님을 제외한 육친 중 제일 먼저 간 누나다. 누나의 죽음을 확인한 후 정신을 차려보니 누나의 죽음이 슬프고 불쌍하기보다 분노가 치민다. 출판업을 한다고, 때론 농어촌 관계 신문사를 한다고 큰 소리 쳤지만 평생 무위도식한 거나 다름없이 酒태백으로 한 세상 보내며 지금은 간경화까지 얻어 골골거리는 매형에 대한 분노. 나아가 남편이라는 존재에 믿음을 갖지 못하고 대신 이단 교회의 믿음에 빠져 광신도가 된 누나의 욕심과 고집이 결국 자신의 명을 단축하는 원인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덧붙임,

장모님이라는 산골일기를 쓰다가 쌩뚱 맞게 누나 얘기는…??? 그러나 이 또한 인과가 있기로 잠시 썰의 핵심을 빗겨나 본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9월 23일 at 9:15 오전

    아니, 누님을 보내셨군요.
    정말 아직은 사실 나이인데 안타깝네요.
    형제를 잃으면 다음은 내차례 같아서 마음이 더 서글퍼지더라구요.
    명복을 빕니다.

  2. eahemni

    2016년 9월 25일 at 6: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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