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5부)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집의 구조가, 터가 꽤 넓고 마당에 30여 평의 농가주택격인 아래채가 하나 있다. 원래 이 아래채를 두고 새롭게 집터를 잡아 집을 지었는데, 비록 아래채는 농가주택이라고는 하지만 넓고 살만하여 부시거나 없애기엔 아까웠다. 새집으로 세간을 옮기고 본 즉 빈 집이 덩그마니 자리하고 있으니 미관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좀 거시기 했다.

누군가… 육친이나 친인척 가운데 지치고 힘든 이가 있으면 다 내려놓고 조용한 산골에서 힐링 겸 여생을 이곳에서 나와 함께 했으면 했다. 처음엔 독거노인으로 지내는 형님께‘내려오십사…’여러 차례 청을 드렸지만 별로 내켜 하지 않은 고로‘평양감사도..’하는 식으로 포기를 했는데, 그런 과정 속에 큰누나 내외가 얼핏 의사를 비치기로 보다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펼친 결과 누나와 매형이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정을 하고 이주를 했던 것이다.

나름 꿈도 야무지게 꾸며 아예 집 구조를 리모델링하여 형님까지 함께 모실 계획으로 말을 맞추었는데 중간에 그만 어떤 가정적 불상사로 인해 누나 내외만 이주한 게 작년5월이었다. 이제 하는 얘기지만 정말 마음이 흡족했고 거주하는 누나 내외도 나만큼 흡족해 했었다. 매형은 이미 백수이고 누나가 서울의 어떤 빌딩청소를 하며 경기도 성남 빈민가 어딘가에 사글세방으로 근근이 살아가다가 대궐 같은 공짜 집에 마냥 흡족했을 것이다.

사실 누나는 위암선고를 받았지만 수술을 하지 않고 기도와 약으로 다스린다며 한 달에 한 번 서울의 병원을 오갔는데 그렇게 맑은 공기 마시며 마음을 다 잡았는지 암세포가 더 자라지 않고 얼굴도 화색이 돌던 어느 날, 도저히 이곳 생활을 할 수 없다며 성남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 도저히 라는 이유가 너무도 황당했다.

즉, 교회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과 면소재지에 소재한 교회는 약5k가 된다. 일요일이든 특별 기도가 있는 날이든 교회의 차량이 집 앞 마당까지 들어와 모셔가고 모셔다 준다. 그러나 누나는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누나의 믿음은 다락방인지 하는 보통교회와는 좀 다른 곳이라고들 한다. 그런 교회를 살림도 팽개치고 30년 가까이 다녔고 매일 새벽기도를 버스를 타고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다고 자랑했는데… 아마도 목사님의 설교나 교리가 마음에 안 찼는지 모르지만 이유는 새벽기도 다닐 수 없어 상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광신도가 된 누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떠나간 누나는 8순이 가까운 매형을 짐짝처럼 버려둔 채 홀로 떠난 것이다. 함께 여생을 재미나게 보내자는 철석같은 약속을 파기하고 홀로 떠나며 그렇게 짐을 남긴 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옛날 다니던 직장에 다시 복직을 했다며 홀로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나는 그때 이미 누나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위암 선배로서 저런 식의 삶(생활)을 사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미리 예견을 하였고, 비록 누나이지만‘저.. 탐욕 고집’이 누나를 망칠 것이라며 저주 비슷한 예견을 했던 것이다.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는(심지어 남편인 매형의 충고도..)고집불통의 누나를 말릴 방법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나는‘산골일기: 누나 이거는 인사가 아니잖아?’라는 썰을 풀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홀로 남은 매형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시 세끼 술로 시작하여 술로 잠이 드는 알콜 중독자나 다름 아닌 매형. 솔직히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드리기엔 나도 7순이 내일인데… 내 부모에게도 그런 효를 해 본 적도 없는데…. 혹시라도 눈에 뜨이지 않으면 밤새 무슨 일인가 하고 아래채로 달려가야 하는… 그야말로 전혀 예기치 않았던 부담100%의 짐짝 같은 존재가 매형이었던 것이다.

사실 누나가 이곳에 함께 할 때부터 매형은 내게 실수를 엄청 했었다. 내가 방황했던 소시 적의 일, 사춘기 소년이 한 번쯤 겪었을 보편적 방황을 가족 누군가에 들었는지 이곳 이웃주민들만 만나면‘내가 쟤를 인간으로 안 봤는데 요즘 저렇게 잘 산다.’며 아예 방송을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나도 나이 70먹은 노인인데 함께 늙어가며‘얘 쟤..’하는 것도 문제지만 술만 입에 들어가고 취기가 돌면 그 따위 소리를 하니 동네가 창피했었다. ‘매형 그 소리 좀 그만 하세요! 동네 창피하게…’호소를 하면 ‘응! 알았어! 미안하이..’하지만 술(이웃들과 막걸리 잔을 나눌 때 꼭 매형도 모셔와 함께 했다)만 들어가면 대중 앞에서‘내가 쟤를….’로 시작하는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 정도는 또 참았다. 한 번은 둘째 딸아이의 시부모 되시는 김포사돈내외가 이곳에서 하룻밤 주무신다며 내려 오셨는데, 그날도 주안상을 마련하고 매형을 초대해 함께 일 배 부 일 배 술잔을 기우리는데 느닷없이 예의 그‘내가 쟤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는데..’라는 원고를 또 읽기에 참고 참았던 분노가 치밀어 올라 큰소리로 매형에게 대 들었다.‘매형이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은 이유나 원인 뭐요!? 내 걱정 말고 평생을 백수로 보낸 매형 걱정이나 하시요!’사돈내외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집이 떠나가라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우리 매형 성질은 있어 가지고 자신이 한 행위는 아랑곳 않고‘들은 얘기다! 왜? 나머지 6남매가 너를 아주 잡놈이라 카더라’라며 그 길로 아래채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9월 24일 at 2:34 오전

    이번에 돌아가신 누나가 이 누나에요?
    위암을 기도로 고칠려고 하시다니, 왜 수술하지 않았을까요?
    요즘은 생존율이 아주 높은데…

    이래저래 심려가 많으십니다.

    • ss8000

      2016년 9월 24일 at 2:27 오전

      아이고! 누님! 여태 안 주무시고???
      저는 어제 고추를 하루종일 땄더니 너무 피곤해 9시도 안 돼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 갑자기 깨 가지고…블로그 질을 합니다마는..
      누님께선 어인 연고로???
      이 야심한 밤에 잠 못이뤄 하시나이까?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을 하신믄지요?
      하긴 나라 걱정에 잠인들 제대로 오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 누나입니다.
      미쳤지요. 한마디로…. 광신도의 말로 이지요.
      믿음도 제대로 믿어야 하는데
      미치도록 믿었으니….

      저는 지금부터 눈을 좀 더 붙여야 겠습니다.
      내일 고추를 마저 따야 합니다.
      그럴려면 체력비축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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