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8부)

지난 6월 초 장모님을 모시고 제천시내에 있는 노인병원엘 갔다. 하시는 행동들이 혹시 치매인가 싶어서…. 한 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검사를 마친 의사는‘노인들이 늙어가며 있을 수 있는 기억 퇴보는 있지만 치매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려 준다. 장모님은 어제도 그제도 40년 전의(나와 함께 겪었던 일들..)입에 달고 살았던 욕설이나 생활들을 정확히 기억해 내신다. 보통 치매를 앓는 노인들이 오래 된 것은 기억하지만 최근 것은 기억 못한다고들 하는데 장모님은 신구를 막론하고 기억력이 정확하다. 글자는 몰라도 숫자(전화번호) 특히 금전에 관한 백 원짜리 몇 닢도 정확히 기억하신다. 약 보름 전엔 인근 면의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인근 면의 병원으로 가게 된 것도 거주지의 유일한 병원에서 기피 인물로‘가급적 우리 병원엔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 빙그레 웃으며 내게‘고생 좀 하시겠어요.’란다. 그리곤‘할머니 오래 사시겠습니다.’란다.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고 오갈 데 없는 여인이 혹시 한이라도 맺힐까 내 눈치만 보는 아내에게 통 크게 감동을 선물하리라고 마음먹고 장모님을 문경에서 모시고 온 것은 작년 11월22일 장모님이 문경으로 내려간 지 딱 열흘 만이다.

집과는 300여m 떨어진 곳에 500여 평의 대지를 정확하게 반을 나누어 처형과 처제가 집을 지어 놓고 있다. 처형은 30여 평의 번듯한 집을 지어 놓고 문을 잠근 채,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다 오는지 모르지만 가끔씩 들리고, 처제는 은퇴 후 내려와 정식으로 집을 짓겠다며 현재는 10평의 원룸을 지어 놓고 격주의 주말이면 한 번씩 내려오기에 집이 비어 있는 상태다.

이미 밝혔지만 내 집의 아래채는 누나와 매형이 거주하고 있던 과정에서 누나만 몸을 빼, 앵두나무 우물가의 처녀들처럼 단봇짐 싸서 서울로 올라갔기에 매형더러 방을 비워 달라고 했었고, 이에 매형은 봄(올 봄)이 오면 방을 비우겠다는 약속을 했던 터라 문경서 모시고 온 장모님은 당분간 생활할 수 있는 세간만 챙겨 처제의 원룸에서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그렇게 생활을 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모님에 대한 나의 공경심(자식들과 며느리 욕을 하거나 말 거나…), 애틋한 마음, 더하여 극진한 사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장모님 계시는 곳으로 문안 인사드리고 혹시 보일러가 제대로 가동이 되지는 않을까, 더운물은 제대로 나오는지, 식사는 제대로 드시는지, 날 잡아 병원에도 모시고 가고, 잡숫고 싶은 거 있으면 사다 드리고, 눈이라도 많이 오면 마당 전부는 아니더라도 다닐 수 있는 길 터주기, 재미난 농담도 하다가 자리에 일어나면 찬바람 맞아가며 사위 잘 가라며 방문을 열어 두고 내가 안 보일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배웅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돌아보며‘추운데 어서 들어가시라!’며 소리 지를 정도로 장모님과 나의 관계는 눈물 날 정도로 짠하고 애틋했었다.

그렇게 혹독한(제천 겨울날씨 보통이 아니다.)겨울을 사랑하는 연인 이상으로 짠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매일을 보내자 춘삼월 봄이 온 것이다. 지난 3월 중순경 드디어 매형(사실 갈 곳이 없었다. 누나와 형식상으로 부부로 살았지만 생활도 따로따로…누나도 단칸방에 함께 생활 할 수 없다며 결국 친구의 집으로 간다는 매형이었다)이 집을 비우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고 매형은 매형대로 분주히 갈 곳을 물색하고 있던 어느 날 아내는 나를 조용히 부른다.“아무래도 안 되겠어….매형 말이야…”그렇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꺼낸 아내의 얘기는, 오갈 곳 없는 시누이 남편을 친정 엄마 모시겠다고 쫓아내면 자신의 마음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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