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18부)

추석이 지난 며칠 후 아래채 툇마루에 실한 배추 한 망(세 통)과 파, 양파 등 김치 거리가 놓여 있다. 내가 사다드리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상도 하지… 아니 어떻게??? 아침 일찍 밭에 나가는 길이라 문안인사도 여쭐 겸“그런데 웬 배추랑 김치꺼리가..???” 라고 여쭈자“이잉~! 그거 내가 찍어 먹을 게 없어서 큰애(처형)보고 사오라고 했어!” 그리고 연이어“내가 막 GR을 했지… 에미 굶겨 죽일 거냐고… 히히히… 돈은 내가 줬지..한 통에 만원 씩 줬어” 여쭙지도 않은 말까지 속사포로 해 대신다. “그런데 처형은요?”,“이이~! 밤 열한 시가 넘어서 도착해 가지고 잠간 눈 좀 붙이고 새벽 세 시 쯤에 올라갔어!” 큰딸(처형)년이 들으면 이곳에서 제 어미가 굶어 죽어간다고 오해하기 십상이고…. 그런데 돈은 또 왜 주셨을까?

추석날 큰아들 작은아들, 추석 전날 이질녀(처형의 딸과 사위)가 추석이라며 각각 10만원 씩 장모님 용돈을 드리고 갔다는 얘기 들었고 내가 20만 원을 봉투에 또 드렸다. 노인네를 내가 모시고 나가지 않으면 돈을 쓸 수도 쓸 데도 없다. 처형이 배추를 사오고 다녀갔다는 다음 날부터 돈 타령이다. ‘산골일기: 장모님’편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할 얘기가 있다. 여태까지의 모든 장모님의 행동들은 단 하나의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처형은 20대 중반 과부가 된 것이다. 어린 남매가 있었지만 청상이라 할 만큼 일찍 과부가 된 것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지만 처형이야말로 장모님에게는 처가식솔 중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것이다. 방화동의 그 너른 집을 두 사람(하긴 처형 때문이지만…)해 치우고도 지금까지 처형에 대한 원망은 하나 없다. 아픈 손가락을 더 아프게 할 수 없으셨던 게다.

그런데 얼마가 되었든 돈만 생기면 그x 밑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처가식솔들은 정석으로 알고 있다. 처형의 딸(이질녀: 유아원을 운영함)과 사위는 정말 효녀다. 어디서 말썽을 부리고 돈을 요구하면 한 번도 거절을 않고 속이 상하면‘남들은 자식이 부모 속 썩인다는데 나는 엄마가 내 속을 썩인다.’는 푸념인지 하소연을 하곤 또…. 늘 그렇게 자식에게 손을 내민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지금 이곳의 주택도 은행과 채권자에게 근저당이 잡혀 있는…아무리 이해를 하려해도 불가한…. 장모님에게만은 이 가련하고 불쌍한 아픈 손가락에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처남 근처에 사실 때는 돈이 필요하면(충분히 용돈을 줌에도…)아들 가게로 나가 요구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게 문 앞에 드러누워 손님이 오면 지팡이로 쫓으며 다른 가게 가라고 한단다. 그래서 장모님이 저만큼 오는 게 보이면 가게 문을 닫고 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다. 요즘은 그나마 장사도 안 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제발 살려달라는 식으로 통사정(서울만큼은 안 된다는…)을 하기에 더욱 서울로 못 가시게 하고 있다. 이 모든 게 큰딸 년의 아픔을 평생 지니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큰딸만 자식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만큼 뒷바라지 해 주었지만 본인이 저리 미쳐서 나돌아 다니는 것을 나머지 형제자매가 어쩌란 말인가? 한 번은 서울 집에 급히 볼 일 보러 가야할 일이 생겼다. 다음날 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었고 다행히 그날 처형이 이곳에 온다는 얘기를 듣고 기왕 오면 장모님 병원 좀 모시고 다녀오라는 약속을 했다. 서울 볼 일 마치고 내려와“병원 잘 다녀오셨어요?”그런데 의외로“아이고! 걔가 무슨 돈이 있어서…그리고 병원에 안가도 괜찮아,,,”돈도 돈이지만 딸년 앞에서는 안 아픈 우리 장모님 때문에 내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건 무슨 경우냐고 고함을 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가 식솔끼리는 어쩌면 엄마랑 큰딸 xx가 그리도 닮았는지 모른다며 혀를 차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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