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끝)

지난 금요일은 전국에 흩어진 초등학교동창 20여명이 이곳에서 1박2일로 동창회를 열었다. 몇 달 전부터 기획된 것이다. 다행히 가을걷이도 거의 끝나는 시기라 큰 무리는 없었지만, 아내도 없는 집에 남녀동창 20여명이 혼숙을 했다. 숙소는 따로 정하자고 했건만 총무 되는 친구가 빠득빠득 우긴 탓에 그만…..혹시 이것들이 뭔 사고나 치지 않을까? 좀은 버거웠지만 그나마 하루방과 망구들이라 크게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사실 산골일기: 장모님 편18. 19회를 한꺼번에 내 보낸 것은 그 때문이다.

버스를 대절하여 이곳 명승지를 몇 군데 돌고 돌아오니 웬 택배가 현관 문 앞에 놓여있다. 살펴보니 처제로부터 온 것이다. 가끔 장모님께 드릴‘우황청심원’을 보내기에 그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볍다. 어쨌든 아래채 장모님께 드리기 전 전화를 했다. 물품 내용을 알아야 막내딸로부터 모모한 것이 왔다고 고할 거 아니겠는가. “처제! 택배 받았는데 내용물이 뭐야? 근데 우황청심원은 아닌 거 같은데…??”,“아~! 형부 그거 형부 꺼에요! 육포에요!”당연히 고맙다 그리고 잘 먹겠다고 거듭 치사를 했지만, 참 이상하지? 타이밍이 절묘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육포(사실 아직도 포장은 뜯지 않고 있다.)얘기를 처제에게 하고 옆구리 찔러 절 받은 격이 됐지만…이건 뭐지? 뭔지 모르지만 녹아내리는 기분이 든다. 내가 공무원이 됐으면 뇌물이나 즐기는 오리(汚吏)였을까?

중언부언 괴발개발 밑도 끝도 없는‘장모님’얘기를 끝을 맺어야겠다. 산골은 낮에도 쓸쓸하지만 밤이면 적막하다 못해 무섭기조차 하다. 아내도 없는 이 큰 집을 혼자 지킨다는 건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주위의 이웃이라는 게 뚝뚝 떨어져 있으니 밤이면 잠긴 문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cctv도 설치하고…좀 웃기는 얘기지만 얼마 전부터 손도끼를 베개 밑에 베고 잔다. (크큭큭…울 건너 이PD는 나 보다 더 한다. 그 사람은 정글 도를 베고 잔단다. 사람 때문이 아니고 산돼지 때문에…말은 그렇게 하지만…ㅋㅋㅋ)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왔다. 아주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심심산골에 과부 하나가 살았는데 핏덩이나 다름없는 어린 것을 데리고 산다는…들어 봤음직한 이야기. 과부는 그 험한 곳에서 무슨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문 하고 그 아이라도 없었으면 과부는 산 속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답을 하곤 했다. 비록 핏덩이지만 나 아닌 인간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보상을 받는 기분이 되었을 것이다.

월초 3박4일 중국출장을 가기 위해 아래채 장모님께 고하자“에효~! 그래도 사위가 있으면 든든한데…며칠 간 쓸쓸 하겠구먼 어여! 잘 다녀와요!”

바로 그거다. 나 역시 이 너른 집에 혼자 있기엔 쓸쓸하다 못해 적막하고 무섭기조차 한 것이다. 그래서 이전부터 누군가가 아래채를 채우고 인기척이라도 났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누나와 매형이 이곳에 왔고. 이런저런 사연 때문에 누나와 매형을 이곳에서 떠나보냈었고 그리고 장모님과 두 지붕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게 정답이고 윈윈 하는 것일 게다.

오늘 그리고 이제 몇 시간 후면 처가식솔들이 모두 모일 것이다. 미리 밝혔지만 큰아들이고 작은아들이고 간에 저희 엄마를 죽어도 못 모신다는 얘기 끝에 양로원이나 요양원으로 보내자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저희들 힘들다고 멀쩡한 노인네를 수용소에 감금하듯 보낸다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다. 더불어 경험칙에 의하면 요양원이든 어디든 경비문제가 대두 될 텐데….첨엔 십시일반 하겠다고 하지만 두세 달 지나면….아이고! 그것 때문에 또 속 썩일 일 없다. 사실 10여 년 장모님 월세도 형제들 중 어떤 놈이 땡전 한 닢이라도 보탠 적이 있었던가? 때 거리가 없고 생활비가 없어서 그런다면 까지 꺼…..그런 걸 생각하면 두 형제라는 것들도 정말 싸가지 없는 놈들이다. 오늘은 이 점도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아직 6자회담이 개최되지 않았으니 결과를 미리 예단 할 수 없지만 나름 생각해 둔 게 있다. 그 나름의 생각을 관철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뭐 그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장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이곳에 머무시는 길밖엔 없다. 천방지축 까탈스런 장모님이지만 그래도 내가 인내하고 안고 갈 숙명(ㅋㅋㅋ..내가 너무 거창했나?)으로 알고 살아갈 것이다.

독자 분들께서 기억이 희미하시겠지만, 산골일기: 장모님 편을 시작하며 1부에 이런 얘기를 했다. 그 부분을 다시 옮겨 본다.

 

나는 가끔 부부화합을 위해 아내에게 감동 주는 일을 한다. 노골적인 표현을 하자면 처가에 정성을 다 하는 것이다. 우리 속언에마누라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보고 절 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래서가 아니라 누구이든 남편 되는 자가 처가를 무시하면 그 마누라가 시집식구에 잘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이 말을 뒤집어 표현하면 마누라가 시집식구에게 함부로 한다면 그 남편인들 처가에 정성을 다 할까?

고리타분한 얘기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명심보감 부행편(婦行編)에 이런 대목이 있다. ‘현부화육친 녕부파육친(賢婦和六親 侫婦破六親) , 어진 부인은 육친을 화목하게 하고, 간악한 부인은 육친의 화목을 깨트린다.’라는 것이다.

아내는 세파에 휘둘리며 방어적 본능으로 거칠어(?)지긴 했지만 나와 결혼 할 때부터 다소곳한 요조숙녀 타입이었으며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육친의 화목에 모범을 보였었다. 결국 내가 처가에 정성을 다 하는 것은 아내가 오가(吳哥)네로 시집와서 현부(賢婦)의 역할을 다 했기로 그에 대한 상대적 보상(?)차원이기도 한 것이다.(하략)

 

덧붙인다면 아내와 결혼을 하겠다고 처가에 처음 들렸을 때 장인 영감님“음~! 처자식 굶겨 죽일 상은 아니네”라시며 기꺼이 허락하셨던 걸 처가식솔은 모른다. 왜 그 방엔 장인영감님과 나만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보잘 것, 하잘 것 없는 놈에게 귀한 딸을 거리낌 없이 주신데 대한 보답이고 의리 지키기다. 의리란 좀 괴롭다고 흔들리는 게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 뿐이다.

아내가 나의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도 분명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70이 가까워도 나는 아직도 아내의 사랑에 굶주리고 사랑이 고프다. 어쩌면 지금까지 횡설수설한 장모님 얘기는 아내를 향한 투정인지도 모르겠다. 산골일기 장모님 이야기 부분만 쏙 뽑아 아내에게 편지할 것이다. 것 봐! 투정을 부리니까 육포도 왔잖아……^^*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처가식솔들과의 회담 결과는 기회가 닿는다면 또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2 Comments

  1. 김국원

    2016년 10월 16일 at 10:26 오후

    장편대하소설 삼국지한편을 읽은기분입니다 ㅎㅎㅎ
    가정사에 뭐라말할순없고 장모님 처남처형처제를 그렇게 몰아붙이다
    마나님한데 쫒겨나는것 아닙니까 걱정댑니다

    곧 겨울이닥아옵니다
    돈없는세상도 서럽지만 집없는겨울은 정말많이춥습니다혹독하게
    집쫒겨나서 찬겨울에 갈때없으면 그땐친구로 찾아오이소

    • ss8000

      2016년 10월 17일 at 4:00 오전

      김 형!
      안 쫓겨 날라고 산골일기:장모님 편을 몽땅 복사 해서
      마누라에게 보내 이실직고 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쫓겨나면 생가해 보리다.
      그러나 나는 우리 마느래 믿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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