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심통 난 날.

매년 이맘때면 집안의 큰 행사가 있다. 바로 김장이다. 욕심 많고 일 겁 안내는 마누라는 매년 200포기 이상의 김장을 담근다. 3남매에게 그리고 꼭 보내야 할 곳 몇 곳. 그런데 금년엔 장모님 몫까지 더 늘었다. 매년 몇 날 며칠을 김장을 둘이서 한다. 겁 없는 마누라야 일부터 벌여 놓고 보지만 힘 빠진 나는 무슨 죄. 그래도 군말 없이 매년 도왔다. 다듬고 절이고 씻고 채 썰어 주고…. 말이 200포기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건너 이PD네는 20포기를 하루 종일 하는데…

그런데 금년은 마누라가 주말에만 내려오니 앞이 아득하다. 혼자 배추랑 무 그리고 파 등 재료를 뽑고 정리하고….예전 같지 않게 단 하루만 해야 하기 때문에 담글 준비는 혼자 며칠 동안 해 두었다.

수일 전부터 아들 며느리와 둘째(큰 딸아이는 해외에 있기에…) 딸인 쌍둥이 엄마도 도우러 함께 온단다. 음~! 원군이 온다니…처음 있는 일이라 든든한 마음이다. 그리고 그제 저녁 다들 내려왔다. 그런데 둘째 딸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쌍둥이도….

알고 봤더니 김장 날이 겹쳤다. 시집에서야 미리 선약이 된 것이니 오지 않아도 된다며 말씀을 하셨다지만 어찌 그 말씀을 100% 다 믿고 안심을(딸년 입장을 대신 생각해 본다)하고 친정엘 오겠는가? 당연히 딸아이의 결정이 자랑스럽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원군이 왔다지만 초보 원군들이야 허드렛일이나 돕지…. 그리고 워낙 시간이 없기에 장모님 것과 나 먹을 것은 다음 날 하기로 하고 어제는 130포기만 했다. 어쨌든 열심히 한 결과 어둑할 즈음 끝을 내고 서울로 보낼 김치 통을 바리바리 싣고 보니 은근짜로 화가 난다. 손 하나라도 더 있었다면 힘을 덜 수도 있었을 텐데.

근데 우연히 위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사돈어른이 올린 댁의 김장 담그는 장면에서 둘째 딸년이 희희낙락하며 김장 돕는 사진이 올라와 있다. 뭐, 그 기 까진 어차피 지가 자청해서 갔으니 기왕 갔으면 신바람 나게 일하는 게 당연 할 것이다.

암튼 김장담그다 파김치가 된 몸을 끌고 컴 앞에 앉아 휴식을 하며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살피는 가운데 문제의 ‘패러디’ 영상물이 올라와 있다. 솔직하게 원주인이야 무슨 죄가 있을까? 그 밑에 우리 사돈어른의 댓글이 달려 있는데….. 그만 분통이 터진 것이다. 시국이 킬킬 거리고 웃을 시국이 아니다. 나는 이번 사태로 아이들과 손녀들이 걱정 되 잠이 제대로 안 온다. 어쩌면 이 나라가 정말 싫다. 그렇다고 젊은 아이들처럼 헬조선할 나이도 아니고.

사실 내 통장에서 고정적으로 매월 보험사로 이체되는 금액이 있다. 손녀가 넷이라 그 아이들이 태어난 달부터 꼬박꼬박 그 아이들의 미래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기 위해 이채를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UNISEF. 오히려 나를 위한 보험은 운전자 보험밖엔 없다.

나는 아이들과 손녀들을 위한 우국(憂國)을 하고 우국의 정을 썰로 푸는데 사돈어른의 그 모습에 그만 분통이 터진 것이다. 결국 박가(朴哥)가 될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는데 댁에서 재롱 떠는 모습의 사진을 보니 좀 심통이 났던 것이다. 딸년이 시댁의 김장을 도우러 간 것을 자랑스럽고 다행으로 여겼는데.. 그만 그 장면에서 울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망할 년! 김치를 담궜으면 시집 꺼를 가져와 먹지 않고 매년 어미와 제 아비가 담근 건 왜 먹누?? 허긴 내가 젓갈 먹는 것을 안 가르쳤으니 내 죄가 더 큰가???

어쨌든 비상시국에 킬킬거린 일로 괜히 내 심통에 불벼락 맞은 우리 사돈어른께 이 썰로 사과를 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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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로  올라 갈 김치들. 아들 며느리 몫과 쌍둥이네 꺼 구분해 두었다. 큰 딸(사위) 몫은

금년엔 큰 사위가 종합병원에 김치를 납품하는 관계로 필요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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